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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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20-12-24 15: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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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10:40-42 
설교일 2020-12-25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복음서 10:40-42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축하도 하고 미역국도 먹어야 하는데, 시절이 이래서 안타깝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우울한 성탄절이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전쟁 중일 때도 온 나라가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머리 위로 포탄이 휙휙 날아다니면서 뻥뻥 터져도 다른 한쪽에서는 함께 모여서 찬송을 부르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위기를 잘 이겨내기만 하면, 두고두고 우리는 2020년에 겪었던 일을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정을 이해하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사한 일은, 예수님은 우리가 꼭 대면해서 만나야만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크신 은혜를 내려주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오늘 태어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장기려 박사 이야기

 

1950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터졌지요. 다 아시는 것처럼, 625일에 삼팔선이 뚫리고 불과 며칠 만인 628일에 서울이 함락되었습니다. 그 뒤 한 달여 만에 인민군은 칠곡 북삼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게 7월 말 8월 초였습니다. 그렇지만 미군의 도움으로 928일에 서울이 수복되었지요. 이번에는 국방군과 유엔군이 북으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한 달쯤 뒤인 1026일에는 압록강 근처까지 밀고 올라갔습니다. 여름에는 남쪽이 낙동강까지 밀렸지만, 가을에는 북쪽이 압록강까지 밀린 겁니다. 남쪽 끝에서부터 북쪽 끝까지, 전쟁이 온 나라를 훑고 지나간 거지요. 그러다가 중공군이 내려오면서 국방군이 후퇴를 시작합니다. 흥남철수작전을 마무리한 게 그해 1224일이었습니다. 이 혹독한 겨울에 남으로 내려오는 피난민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게 14 후퇴입니다. 다시 서울이 넘어갔지요. 이번에는 평택까지 밀려 내려왔습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간 게 19513월이고요. 그리고 그해 7월부터 휴전협정이 시작됐습니다. 2년 만에 정전이 돼서 지금까지 이렇게 분단상태로 있지요.

 

예수님의 생신날, 전쟁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만, 오늘의 주제가 전쟁은 아닙니다. , 이렇게 온 나라가 풍비박산 난 가운데 이산가족이 대단히 많이 생겼습니다. 그 가운데에 장기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의사였어요. 이분은 625 난리 통에 부인과 여러 자녀들을 북에 남겨둔 채, 아들 하나만 데리고 황급히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팔십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북에 아내가 있는데 어찌 또 새 아내를 얻겠느냐, 그런 거지요. 남으로 내려온 장 박사는 한평생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로 진료를 해주며 살았습니다. 부산에 가면 대학병원 가운데 고신대 병원이라고 있지요. 복음병원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병원이 이분이 세운 겁니다. 어떤 인터뷰 기사였을 거예요. 기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재산 모을 생각은 추호도 가지지 않고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의술을 바치셨는데, 어째서 그런 삶을 사신 겁니까?” 그랬더니 장기려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정성껏 도우면, 북에 남은 가족들도 고비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살면서 어려움 겪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여기서 선행을 베풀어야 북에 남은 가족들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산다는 거예요. 박완서, 빈 방(도서출판 열림원, 2016), 전자책 166/631쪽 참고.

 

길 떠난 자식 귀인 만나라고

 

우리 선조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남의 귀인이 돼주지 않고 어떻게 길 떠난 내 자식이 귀인을 만나기를 바라랴!” 요즘이야 집을 떠나 길을 나서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고속열차나 고속버스, 또는 승용차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든지 몇 시간 안에 도착합니다. 가는 데마다 음식점 천지고요, 돈만 있으면 밤에도 좋은 곳에서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옛날에는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게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귀인을 만나야 하는 거예요. 길동무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주막에서도 귀인을 만나야 합니다. 이래서, 내가 남의 귀인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야 길 떠난 내 자식도 귀인을 만날 테니까요. 내가 귀인이 돼야 세상에 귀인이 존재하게 되잖습니까? 그런데 이게,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곳곳에서 귀인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귀인일까요?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분명히 귀인이 있습니다. 아닐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지지리 복이 없어서 귀인 하나도 못 만나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귀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귀인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귀인이, “나 귀인이오!” 하면서 명찰을 달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요. 이미 귀인이 여러분의 옷깃을 슬쩍 스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안 수많은 귀인을 만났지만, 그 사람이 귀인인지 몰라보고 지나쳐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악연으로 만난 것 같은데, 원수 같아 보였는데, 그 사람이 진짜 귀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무심코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그 누구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이 성탄일이지요. 유대 땅 촌구석에서 가난한 집안에 아기가 하나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아기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요셉이 아버지라고 적혀 있기는 하지만, 그 아기가 자기 친자가 아니라는 건 그 누구보다도 요셉이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마리아하고 같이 잔 적이 없는데,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어요. 이거 참 보통 낭패가 아닙니다.

 

귀인 중의 귀인

 

그렇지만 요셉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만 눈감으면 그냥 자기 아들이 되는 거잖아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요셉은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총각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약혼한 여자가 있습니다. 결혼 전이라 그 여자한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아기를 가졌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대요. 지금 우리야 성경에 쓰여 있으니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그렇게 믿고 고백하지만, 당사자라고 생각할 때, 그 말 믿을 남자가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요셉은 그 아기를 자기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어려운 결단을 요셉이 했어요. 이게 귀인이 될 아기 아버지의 위용입니다. 엄청난 포스(force) 아닙니까? 요즘 말로 쩌는 일입니다. 레벨이 다른 사람이에요. 그 정도 되니까 성인이란 소리를 듣는 겁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예수님을 귀인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물론 동방박사들과 목자들 일부가 그런 암시를 받았고, 실제 아기 예수님께 경배도 했지만,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귀인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변변하기를 합니까, 어머니가 변변하기를 합니까? 그렇다고 재산이 많습니까? 보통 사람이, 동네 사람들이 귀인을 못 알아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예수님만 한 귀인이 어디 있습니까? 귀인 중의 귀인이지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어도 귀인은 귀인입니다. 그 레벨은 어디 안 가지요. 마태복음서 10:40-42에 보면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맺는 말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 그런 사람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 그것은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게 또한 하나님을 대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귀인은 명찰을 달고 다니지 않습니다. 어깨띠에, 나 귀인이오, 하고 써서 다니지도 않습니다. 귀인은 우리 가운데 숨어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 주위에서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함께 사는 사람 가운데에 귀인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누구를 상대하든지 예수님 모시듯이, 예수님 섬기듯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집 떠난 내 자식이 귀인으로부터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 세상 모든 사람을 예수님인 듯이 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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