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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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2-07-08 1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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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야고보서 1:2-4 
설교일 2012-07-08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보서 1:2-4>


■ 들어가는 이야기

가물었던 대지에 흡족하게 비가 내렸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머지않아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이런 여름이 있어야 곡식도 영글고 사람도 성숙해집니다. 푹푹 찌는 이 계절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삶이 더욱 튼실해지기를 기원합니다. OECD 나라들 가운데서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도대체 자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나 싶어 찾아봤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에 대한 통계를 봤더니 2010년 우리나라 사람들은 10만 명당 31.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OECD 평균이 11명쯤 되니까 거의 세 배나 되지요. 우리 구미에서도 하루건너 한 명씩 자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이 정도니,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통계에서도 보지만, 사실 이렇게 자살을 많이 하는 것은 개인적인 사정보다는 사회적인 원인이 더 큽니다. 사회구조가 뭔가 잘못 돼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정치인들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선 내가 살아야지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야 그럴 리가 없겠지만, 앞으로라도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 기뻐하십시오!

사람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힘든 상황을 어찌 견디어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힘든 순간을 모면하는 수단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피할 수 없는 시련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새총을 쏘아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새총을 쏠 때 고무줄을 대충 당기면 어떻습니까? 총알이 멀리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당기면 고무줄이 끊어져버리고 맙니다. 드라마나 영화 작가들이 갈등구조를 만들 때 끊어지지 않을 정도까지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고, 그 긴장이 시원하게 해소될 때 관객은 쾌감을 얻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장이 없는 삶, 곧 시련이 없는 삶은 당겨지지 않은 새총 고무줄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세게 당기면 끊어져버립니다. 고린도전서 10:13의 말씀이 바로 그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적의 상태로 긴장을 유지하도록 조절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비된 환경에서는 삶의 탄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거친 환경이 있어야 긴장이 더 탱탱해지고, 그것이 해소될 때의 기쁨이 더 큰 법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생기는 것은,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우리가 완전하고 성숙한 인생을 누리도록 해주는 필수조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이 있을 때, 시련이 올 때,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 도끼를 가십시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나무꾼이 나무를 베고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톱질을 하고 있었지만 나무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톱날이 무디어져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전혀 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봐요, 나무꾼 아저씨! 잠깐 쉬면서 땀도 좀 닦고, 그 톱날도 날카롭게 벼리세요. 그러면 훨씬 쉽게 벨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무꾼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습니다. “괜히 말 시키지 말고 저리 가세요. 난 지금 바쁘단 말입니다. 그럴 틈이 없어요. 오늘 이 나무를 다 베어야 하니, 남의 일 방해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시지요.” ―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주)쌤앤파커스, 2011), 70-71쪽.

저렇게 미련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 생각이 드시지요?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쉬는 날 없이 공부만 하는 수험생들이 그렇습니다. 주일날도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예배드리는 시간을 아까워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건 대단히 비효율적인 방식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조금이라도 더 성과를 내보겠다고, 쉬는 날 없이 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그랬다고 하지요? “나는 보통 때는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한다. 그러나 바쁠 때는 하루에 세 시간 기도한다.” 바쁠수록 더 정성스럽게 도끼를 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자기 도끼날이 얼마나 무딘지는 모릅니다. 바보스럽게도, 자기가 성실하지 못해서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자책하고, 더 열심히 도끼질을 합니다. 무딘 날을 가지고 아무리 애를 써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나무를 벨 시간이 여덟 시간 주어진다면, 그중 여섯 시간은 도끼를 가는 데 쓰겠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묵상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도끼를 가는 일입니다. 죽어서 천당 가려고 보험 들어놓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 시간은 우리 일상 가운데서 귀하디귀한 시간입니다.

■ 끈을 놓으십시오!

인터넷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강풀이라는 만화가를 아실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만화가이지요. 트위터 팔로우어 수만 50만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도 처음부터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강풀 씨는 처음에 만화잡지의 문을 숱하게 두드렸습니다. 제발 자기 만화를 좀 실어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 당시는 만화잡지가 아니면 만화를 발표할 매체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만화를 제출할 때마다 퇴짜를 당하니까, 그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처음으로 만화를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성공을 거머쥡니다. 만일 이 사람이 미련하게 만화잡지에만 집착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성과는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잡지사의 끈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끈을 놓은 뒤부터 훨훨 나는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주)쌤앤파커스, 2011), 102쪽.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는지를 말하는 경험담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시기에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으로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절벽에 겨우 발붙여 선 나를 [그분은]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셨습니다. 그 절벽 아래로 나는 떨어졌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로버트 슐러 이야기. 신현림 편,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주)웅진씽크빅, 2011), 120쪽.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까지, 그는 자기에게 날개가 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막장 순간까지 갔을 때, 비로소 그는 날개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전에 한번 말씀드린 이야기입니다만, 한강에서 월동하는 청둥오리는 시베리아에서 날아와서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면 다시 머나먼 창공을 날아 시베리아로 날아가는 새입니다. 날개가 견고하기로 유명하고, 지치지 않는 새, 하면 떠오르는 새가 바로 청둥오리입니다. 그러나 청둥오리를, 부화될 당시부터 땅에다 놓아서 기르면, 땅에서 달리는 것은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죽을 때까지 날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자신이 드넓은 창공으로 날 수 있는 선천적 기량을 지닌 새라는 것을 스스로 망각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 김주영, ≪아라리 난장 ①≫(문이당, 2000), 140쪽.

■ 맺는 이야기

삶이 힘들어서, 시련이 커서, 일이 잘 안 풀려서 낙심하는 분들을 위해서 저는 오늘 세 가지 당부를 드렸습니다. ▶첫째, 시련이 있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골이 깊을수록 산이 높기 때문입니다. 밤이 길고 추울수록 아침은 더 찬란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심할수록 승리 이후의 쾌감은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시련이 왔다고 생각되거든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둘째, 바쁠수록 도끼를 갈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뭔가를 부지런히 하는데도 일에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게으름 탓이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도끼가 무디면 아무리 열심히 나무를 패도 힘만 들뿐 성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먼저 도끼날을 갈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시간, 그 시간이 여러분의 인생의 도끼날을 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셋째,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끈을 놓아버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끈을 놓아버리라는 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벼랑 끝에 와 있을 때 비로소 여러분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은 벼랑 끝으로 몰고 가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시련을 통하여 여러분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3 슬픈 기다림, 복된 기다림
222 고난이 오기 전에 아직 기도는 시작되지 않는다!
221 탐욕에 대하여
220 하나님의 손수건
219 ‘하나 됨’의 기쁨
218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시간
217 돈에 대하여
216 작은 씨, 큰 나무
» 삶이 힘든 그대에게
214 무난하게 먹고 살기
213 쥐 세상, 개미 세상
212 "남에게 주어라!"
211 쉬면서 숨 돌리기
210 부자에 대하여
209 '하나'에 대하여
208 바벨탑 이야기
207 복을 생산하라!
206 무엇 때문입니까?
205 함께 누리십시오!
204 그물을 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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