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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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04-08 14: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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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25:6-9 
설교일 2007-04-0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부활절 


■ 성서 본문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또 주님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이사야서 25:6-9)


■ 들어가는 말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처참하게 살해당하셨지만, 돌무덤을 열고 유유히 걸어 나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시던 날,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세상이 캄캄하게 되었지만, 부활의 아침에 온 세상은 새로운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이천 년 전 부활의 아침에 온 누리에 가득 찼던 생명력과 능력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가운데도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꿨습니다. 쫄딱 망해서 다 허물어진 시온 성의 부활을 노래했습니다. 오늘 구약성경 본문 말씀인 이사야서 25장 6절부터 9절까지가 그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회복의 날, 곧 부활의 날에 세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모든 민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깨끗이 없애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오늘 우리는 부활의 날이 어떤 날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첫째, 부활의 날은 모든 민족이 죽음을 극복하는 날입니다.

이사야서 25장 7절에서 8절 사이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이 때 이사야가 말한 것이,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잠들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실 것을 생각하고 한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이사야가 꿈꾼 이 날은 정말 대단한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잠든 사람들’이란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죽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다 일어날 터인데, 그 가운데서 가장 먼저 일어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부터 17절까지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구름 속으로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어떻게 해서 구름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인지,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날 죽은 사람들이 동시에 다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음에서 일어난 사람들과 합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사람이 죽은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심판 받은 대로 천국행, 또는 지옥행으로 갈려서 살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성경의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양의 염라대왕 사상과 비슷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들은 모두 잠든 상태라는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깨우실 때, 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이나 백 년 전에 죽은 사람이나 일 년 전에 죽은 사람이나, 한꺼번에 다 일어날 것입니다. 이 날이 주님께서 모든 백성, 모든 민족의 수의를 벗기시는 날입니다.

그 날, 주님께서는 아마도 잔치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사야도 그런 꿈을 꿨습니다(이사야서 25:6).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얼굴도 뵙지 못한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도 뵙고, 먼저 가신 부모님도 뵙고, 제 명을 살지 못하고 요절하신 일가친지들도 만나고, 무엇보다 예수님까지 뵙게 될 테니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꿈은 그냥 꿈이 아니고 현실이 될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 둘째, 부활의 날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릴 일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노동이 괴로워서 울고, 실연을 당해서 울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답답해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신세가 처량해서 울고, 외로워서 울고, 아파서 울고,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서 울기도 합니다. 또한 남편 때문에 울고, 아내 때문에 울고, 자식 때문에 울고, 부모 때문에 울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울기도 합니다.

전라남도 목포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당초 꽃이 맵다하나
시집살이 더욱 매워
행주치마 눈물 젖어
하루하루 보냅니다.”

―김명희 외, 《문학으로 읽는 옛 여성들의 삶》(이화문화사, 2005), 239쪽.


요즘은 시집살이 눈물보다 며느리 살이 눈물이 더 많다고 하기는 합니다만, 사람 사는 세상에 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런 눈물들을 그대로 두면, 그게 다 한이 되어서, 세상에 원귀가 들끓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닦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용운 시인의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 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유지현 편),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사랑의 노래》(웅동, 1999), 42쪽.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미소만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까지 사랑하십니다.

이사야는 부활의 날에, 회복의 날에, 이런 모든 눈물을 주님께서 말끔히 닦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26편 6절에 보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라고 했는데,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사람들뿐만 아니라, 눈물이 앞을 가려 씨조차 뿌리지 못한 사람들까지,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 셋째, 부활의 날은 사람들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주님께서 깨끗이 없애주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대세’(大勢)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만, 이거 상당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신 이후, 대세는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뭔가 바보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 때 예수님께서 인기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서 예수님을 띄웠습니다. 임금 삼으려고 한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아마 여론조사를 했으면 적어도 80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지지율이 나왔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신 다음, 지지율은 바닥을 칩니다. 예전에 예수님을 지지했던 구름떼 군중이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고관대작들조차도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빌라도의 졸개들까지 나서서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너,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이런 등신아!” 하면서 쥐어박습니다. “네가 그렇게 능력이 많다며?” 하면서 귀싸대기를 올려붙입니다. 독한 놈들은 창으로 허리를 쿡쿡 쑤십니다. 세상에 그런 모욕이 없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수치입니까? 그러나 부활의 아침에 이 대세가 뒤집혔습니다. 예수님이 옳았고, 대세가 틀렸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지금부터 18년 전, 1989년 3월 25일부터 같은 해 4월 3일까지, 문익환 목사님께서 평양을 방문하셨습니다. 김일성 주석도 만났습니다. 그를 안아주었습니다.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고 했다고, 남한 정부는 문 목사님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버렸습니다. 징역을 7년이나 선고 받고 복역하시다가, 1993년 3월 6일, 김영삼 정권 때 사면돼서 출옥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만, 그 당시의 대세는 문 목사님을 ‘죽일 놈’으로 모는 것이었습니다. 노태우 정권 때지요. 신문마다, 방송마다 연일 비난의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포옹하고 왔습니다. 대북 강경론으로 완강하던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도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부시 대통령도 “존경하는 김정일 위원장”이라고 부르며 만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글쎄, 영어로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Dear 아무개!” 정도로 표현하겠지요. 조만간 어떤 형식으로든 만날 겁니다.

북한이 그 때보다, 요새 말로, 지금이 더 착해졌습니까? 아니지요. 지금은 북한이 그 당시에 없던 핵무기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미사일 뻥뻥 쏴대던 게 아직 일 년도 안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대화’가 대세입니다. 그러니 이 ‘대세’라는 게 얼마나 웃기는 물건인지 모릅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김대중 대통령보다, 박근혜 전 대표보다, 부시 대통령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하셨지만, 잘못된 ‘대세’ 때문에 욕을 보신 것입니다.

열 번을 생각해 보아도 당시 문익환 목사님은 백번 잘하셨습니다. 그분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남북관계가 이만큼이라도 발전되어 나가는 것이지요. 문 목사님께서 당하셨던 수치와 희롱과 모욕이 얼마나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이었는가, 이것이 밝혀지는 날, 그 날이 문 목사님이 부활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몸으로도 부활하셨지만, 문 목사님은 영으로라도 먼저 부활하시는 셈이 되겠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대세’를 따를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언론의 휘몰이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라 반드시 부활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일시적인 수치를 당하게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대세’를 따르는 사람은 일시적인 승리감에 도취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원히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 맺는 말씀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부활의 날은 ▶첫째, 죽음이 극복되는 날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그 동안 죽은 모든 사람들을 살리시겠지만, 지금이라도, 우리가 목숨까지 주님께 맡기고 두려움 없이 산다면 오늘도 부활의 날입니다. ▶둘째, 부활의 날은 주님께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우리 눈물을 시원하게 닦아주시겠지만, 지금 이 순간, 주님의 위로하심과 사랑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면, 오늘도 부활의 날입니다. ▶셋째, 부활의 날은 수치와 모욕이 사라지는 날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욕을 먹으며, 어떤 수치를 겪으며 산다고 하더라도, 대세를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면 오히려 기뻐하며 기다릴 일입니다. 주님께서 원수들 앞에서 우리 손을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바로 우리가 부활하는 날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 손을 들어주신다면, 지금이 곧 부활의 날입니다.

부활의 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지금 주님께서 우리 눈물을 닦아주신다면, 지금 주님께서 우리 편을 들어 주신다면, 오늘도 부활의 날입니다. 부활의 복된 삶이 지금부터 날마다, 앞으로 영원히 저와 여러분 가운데 이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942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41 부활 후 가장 궁금했던 일
940 개켜 있는 수건
939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38 믿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937 그날, 주인공
936 게임의 결과
935 부활절 아침의 사람들
934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
933 [새벽] 홀로 가는 길
932 주님 계신 그 곳에
» 부활의 날, 좋은 날
930 주님의 이슬
92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928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927 주님의 나라로!
926 아름답게 부활하기
925 그래도 기뻐하십시오!
924 "와서 아침을 먹어라!"
923 부활 드라마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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