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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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가복음서 9:2-8 
설교일 2009-03-01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사순절 
■ 성서 본문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들이 문득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마가복음서 9:2-8>


■ 들어가는 말씀

예전에 성철 스님이 입적(入寂)하시고 나서 유명해졌던 말이 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항간에서 말도 많았고 해석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성철 스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중국 송나라 때 청원유신(靑原惟信)이라는 선사가 한 말이라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 텍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30년 전 아직 선 공부를 하지 않고 있을 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그 후 훌륭한 스님을 뵙고 어느 경지에 들었을 때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 이후 이제 쉼의 경지에 이르게 되니 산은 정말로 산이고, 물은 정말로 물이었다.” ― 오강남,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주)현암사, 2006), 261-262쪽.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 말은, 사람의 깨달음에는 세 단계가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첫 단계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단계입니다.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바위가 있고, 골짜기가 있는 곳을 가리켜서 우리는 산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깨달은 사람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인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목이 마를 때 마시는 것, 빨래할 때 쓰는 것, 밥할 때 쓰는 것, 뜨거운 것을 식히는 액체를 가리켜서 ‘물’이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깨달은 사람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이나, 누구든지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단계의 깨달음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단계입니다. 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가,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지요. 그런데 그 밥은 쌀과 물이 열을 만나서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 밥을 우리가 먹는데, 먹기 전까지는 밥이었지만, 먹고 나면 그것은 밥이 아니라 이미 ‘내’가 되어 있습니다. 나의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피가 되어 ‘나’로 변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물을 마시기 전에는 산소 분자와 수소 분자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물질이지만, 일단 내가 마시고 나면 그것은 이미 물이 아닙니다. ‘내’가 되어 있습니다. ― 법상, 《마음을 놓아라 그리고 천천히 걸어라》(도서출판 무한, 2003), 106쪽 참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원래는 ‘내’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물질, 저런 물질들이 얽히고설켜 편의상 ‘나’라고 부르는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상 원래 산이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소와 수소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것이 물이라고 하지만, 물이 되기 전의 산소와 물이 되기 전의 수소는 세상 어느 구석에서 뭐 하다가 온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입니다.

■ “산은 정말 산이요, 물은 정말 물이다.”

그 다음, 깨달음의 세 번째 단계는 ‘그래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단계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보니, 산은 단순히 산만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물은 단순히 물만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만물의 이치를 다 꿰뚫은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닙니다. ‘이보시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닙니다. 똑바로 알고 사시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랍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떠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았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깨달음을 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지 불평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 내가 깨달은 바가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야.’ 세상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줄 알게 되는 단계, 그것이 세 번째 단계, 곧 ‘산은 정말 산이고, 물은 정말 물’인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험

오늘 성경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뽑힌 세 사람,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따로 예수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으로 올라가기까지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과 똑 같았습니다. 그러나 산에 올라가서 그들은 남다른 경험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런 예수님에게 모세와 엘리야가 다가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일은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평소에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지만, 예수님에게서 그런 광채가 나는 것도 처음 보았습니다. ‘아, 여기가 별천지로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들은 흥분에 싸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얼떨결에 말합니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마가복음서 9:5). 성경에 보니까 자기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들에게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상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온데간데없고 평소에 보던 예수님만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로 돌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데리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줄 알았다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경험을 한 후에,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단계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 ‘깨달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산을 보면 그냥 산입니다.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물을 보면 그냥 물입니다.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을 보면 그냥 사람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난 이후에 산을 보면 그것은 단순한 산이 아닙니다. 물을 보면 그것은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사람을 보면 그것은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산이 되고 물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맺는 말씀

똑 같이 산을 보고 물을 보더라도, 깨달음의 과정을 거친 사람이 산과 물을 보는 것하고,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산과 물을 보는 것은 천지차이가 나는 법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겉으로는 다른 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운 경험을 통해서 남다른 깨달음의 과정을 거쳤기에 세상을 보는 눈, 예수님을 보는 눈, 사람들을 보는 눈이 달랐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사람들과 자연과 어울려 살 때는 깨달았던 경험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깨달음은 깨달음 그대로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그저 미소만 지으면 됩니다. ‘그래, 저건 산이지만, 산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은 산이지.’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래, 저건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이지.’ 그걸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꾸 깨달음의 티를 내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거듭난 티를 자꾸 내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 2천 년 동안, 사순절이 되면 금식도 하고, 고행도 하고, 생활 패턴도 바꾸고,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티를 내는 것은 곤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낯을 씻어라”(마태복음서 6:17). 티 내지 말고, 깨달음의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941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40 부활 후 가장 궁금했던 일
939 개켜 있는 수건
938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37 믿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936 그날, 주인공
935 게임의 결과
934 부활절 아침의 사람들
933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
932 [새벽] 홀로 가는 길
931 주님 계신 그 곳에
930 부활의 날, 좋은 날
929 주님의 이슬
928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927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926 주님의 나라로!
925 아름답게 부활하기
924 그래도 기뻐하십시오!
923 "와서 아침을 먹어라!"
922 부활 드라마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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