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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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0-04-04 16: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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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1:25-27 
설교일 2010-04-04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부활절 


■ 성서 본문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요한복음서 11:25-27>


■ 들어가는 말씀

부활의 아침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우리 주님과 함께 부활의 자리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는 여러분 위에,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영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박물관에 오래 된 바이올린이 하나 전시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바이올린에는 이런 글귀가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나무였을 때 나는 말없이 자랐다. 그러나 나는 죽은 뒤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prok.org 게시판에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한번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그 나무는 틀림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바이올린이 돼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나무로서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죽어서도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산 상태로, 죽은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방법으로 계속 살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바이올린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듯이,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부활하지는 않습니다. 더럽게, 보기 싫게 부활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아름답게 부활하겠습니까?

■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게 부활합니다.

지금은 날아가고 없겠습니다만, 겨울이 되면 한강에 청둥오리들이 찾아옵니다. 이 친구들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와서 한강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다시 머나먼 창공을 날아 시베리아로 날아가는데, 견고한 날개와 지치지 않는 표상을 지닌 철새입니다. 그러나 그 청둥오리를 부화될 당시부터 땅에다 놓아서 기르면, 기어서 달려가는 행동은 날렵하지만 죽을 때까지 날지 않으려 한답니다. 자신이 드넓은 창공으로 날 수 있는 선천적 기량을 지닌 새라는 것을 스스로 망각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 김주영, ≪아라리 난장 ①≫(문이당, 2000), 140쪽.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은 무한한 잠재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죽어도 산다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요한복음서 11:25-26).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인 것을 알고 있어야, 지금 살아 있을 동안만이 아니라 죽어서도 아름답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 한 길을 가는 사람이 아름답게 부활합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적에 권삼득(權三得)이라는 명창(名唱)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상사람이 아니라 향반(鄕班)의 자제였습니다. 이 양반이 어릴 적부터 하라는 글공부는 하지 않고 창극조에 미쳐 있었던 까닭에 부모는 수도 없이 그걸 버리라고 권유했습니다. 예전에는 그게 양반이 하는 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듣지 않으니까 가문의 수치라 하여 문중 어른들이 모여서 그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도 죽기로 작정을 하고 거적을 썼습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소청이 하나 있으니 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래 하나를 부르고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왕 죽이기로 했으니 죽는 사람 소원 하나 못 풀어주랴 하여 허락을 했습니다. 모두 빙 둘러서서 그의 노래를 듣는데, 거적 밑에서 새나오는 가조 일곡이 그만 거기 있던 사람들의 오만간장을 다 녹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는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하도 그 정성이 지극하고 감동이 커서 문중에서는 다시 의논을 했습니다. 죽이는 대신 그의 이름을 족보에서 빼고 내쫓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 봉순네의 할아버지가 봉순네에게 들려준 이야기. 박경리, ≪토지 2≫(솔출판사, 1993), 96쪽.

정말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대장부지요. 목숨을 버렸으면 버렸지 창극은 안 버리겠다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한 길을 간다는 것이 말이 쉽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니까 천하의 명창이 된 것이겠지요. 직업이나 신념에 있어서 한 길을 가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신앙의 길도 그렇습니다.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일관성을 지키며 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한북음서 14:6). 우리가 한평생, 아니 영원토록 가야 할 길은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예수님의 길입니다. 다른 것은 다 버리더라도 이 길만은 결단코 버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세울 때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답게 부활할 수 있습니다.

■ 지금 부활을 경험하는 사람이 아름답게 부활합니다.

시인 구상 선생께서 쓰신 시 가운데 <말씀의 실상>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영혼의 눈에 끼었던 /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 새삼 놀라웁고 // 창밖 울타리 한 구석 /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 사뭇 황홀합니다. // 창창(蒼蒼)한 우주, 허막(虛莫)의 바다에 /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 상상도 아니요, 상징(象徵)도 아닌 /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 구상, 〈말씀의 實相〉 전문. 구상, ≪홀로와 더불어≫(황금북, 2002), 56-57쪽.

영혼의 눈에 끼여 있던 무명의 백태를 벗겨내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예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울타리 구석에 소문 없이 핀 개나리꽃을 부활의 시범으로 볼 줄 아는 것은 새롭게 태어난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심히 여겼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을 보고 그것을 기적이라고 고백하며, 손가락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는 일이 아닙니다. 예전 눈은 죽고, 백태가 벗겨진 혜안이 생겨난 사람만 그런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서 부활을 경험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눈에서 백태를 걷어내면, 우리 심령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죽지 않고도 새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 맺는 말씀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을 말씀을 가슴 깊이 새깁시다.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받은 특권인데, 그냥 평범하게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하게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멋들어지게 부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아름답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이것저것 딴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한 길, 예수님께서 가셨던 그 길을 일관성 있게 가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 ▶성령으로 거듭나서 지금 이 순간, 지금 나의 삶의 자리에서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한울교회로 이름을 바꾼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이 이 새봄과 함께 산뜻하고도 아름답게 부활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941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40 부활 후 가장 궁금했던 일
939 개켜 있는 수건
938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37 믿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936 그날, 주인공
935 게임의 결과
934 부활절 아침의 사람들
933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
932 [새벽] 홀로 가는 길
931 주님 계신 그 곳에
930 부활의 날, 좋은 날
929 주님의 이슬
928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927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926 주님의 나라로!
» 아름답게 부활하기
924 그래도 기뻐하십시오!
923 "와서 아침을 먹어라!"
922 부활 드라마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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