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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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2-04-08 16: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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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고린도전서 15:54-58 
설교일 2012-04-08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부활절 

■ 성서 본문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4-58>


■ 들어가는 이야기

부활의 아침입니다.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헛수고인 줄 알았던 그동안의 노력이 멋진 열매가 되어 나타난 아침입니다. 헛고생인 줄 알았던 그동안의 고난이 통쾌한 복수의 기회가 되어 나타난 아침입니다. 개죽음인 줄 알았던 희생이 부활의 기적이 되어 나타난 아침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여러분 위에, 부활의 영이 세찬 바람처럼, 거센 불길처럼, 엄습하는 홍수처럼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복된 아침에, 부활의 의미에 대해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첫째, 부활이란 헛된 수고로 끝날 줄 알았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고린도전서 15:58). 당시 고린도교회는 싸움이 많기로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사랑’을 강조할 수밖에 없지요.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린도전서 13:7).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 대 맞았으면 두 대를 때려서 갚아주어야 하는데 참으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는 그걸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시원할 텐데, 덮어주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참아도, 아니 참으면 참을수록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바보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덮어주면 줄수록 그의 행동이나 태도가 점점 몰상식해질 수도 있습니다.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실력이 늘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나는 수고를 다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노력은 헛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력(自力)을 다했을 때 타력(他力)이 나타납니다.” ― 정찬주, ≪자기를 속이지 말라≫(열림원, 2005), 235쪽. 세상에서 최대의 타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이지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그 자리에, 그때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미리 도와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이 있고난 뒤에야 부활이 일어났습니다.

■ 여러분의 고난이 헛되지 않습니다.

둘째, 부활이란 헛된 고생으로 끝날 줄 알았던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고난’ 하면 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슨 죄라도 있었다면, 죗값을 받는 것이거니, 하면 되는데, 욥은 아무런 죄도 없이 그냥 무참히, 처절하게 당했던 사람입니다. 욥의 절규는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을 메이게 합니다. “아,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기억하여 주었으면!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비망록에 기록하여 주었으면! 누가 있어 내가 한 말이 영원히 남도록 바위에 글을 새겨 주었으면!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 간장이 다 녹는구나!”(욥기 19:23-27). 이 억울함을 양피지에 쓰면 없어질지도 모르니, 바위에 새겨 달라고 합니다. 욥은 간장이 다 녹을 정도로 분했습니다.

금이 극소량 함유된 돌덩이들은 1톤당 몇 천원 또는 몇 만원밖에 나가지 않지만, 정제된 금은 3.75그램(한 돈)당 수십만 원이나 나갑니다.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보통 돌과 같은 사람이고, 고난을 겪은 사람은 금덩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수천 도의 뜨거운 불에서 불순물을 제거해내는 과정입니다. 고난이라는 고열(高熱), 그것은 우리의 고귀한 내면을 드러나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 스티븐 K. 스캇(오윤성 역), ≪잠언에서 배우는 솔로몬 부자학 31장≫(지식노마드, 2006), 140쪽. 그렇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통하여 군더더기를 다 털어낸 사람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서 인생의 진미가 뚝뚝 떨어집니다. 고난의 종결자, 하면 예수님 아닙니까? 결국 예수님의 고난은 부활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 여러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습니다!

셋째, 부활이란 헛된 죽음이 될 줄 알았던 죽음이 부활의 몸이 되어서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을 우리는 종려주일로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종려나무 시위대가 예루살렘 입구 가도를 가득 메웠습니다. 로마의 군인들도 그들을 제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을 비롯한 기득권층 사람들도 이제 민심이 완전히 자기들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을 앞세운 시위대는 예루살렘 성전까지 진출해서 성전을 뒤집어엎었습니다. 이제 나라를 뒤집어엎는 거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 결과는 예수님의 죽음뿐이었습니다. 저항다운 저항을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예수님은 체포되었습니다. 군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제자들마저도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완벽한 패배였습니다.

며칠 전에 수원에서 있었던 끔찍한 살인사건에 대해서 들으셨을 줄 압니다. 평범한 한 여성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다가 중국인 남자에게 붙잡혀 들어가서 성폭행을 당하고 온몸이 찢겨서 죽었지요. 이 사람은 위험에 처하자 112에 전화를 걸어서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처음에 경찰이 발표하기는, 1분 남짓 통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내용을 보니 경찰은 7분이 넘게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걸 막지 못하고 한 여자가 처절하게 당하게 두었습니다. 목숨이 끊어지기까지 방치했습니다. 휴대전화기로 112에 연락하면 위치정보가 뜨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여자는 자기 위치를 구체적으로 설명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통화 내내 딴소리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즉시 출동해서 사이렌을 울리며 탐문을 했더라면 그런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찰이 하는 말은, 밤이라 주변사람들을 방해할까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은 자기들도 알 겁니다. 어떤 트위터 사용자는 이 사건을 보고 이렇게 썼습니다. “정말 급할 땐 ‘성폭행’이라고 신고하지 말고 ‘촛불집회 주동자가 여기 있다’고 신고하세요. 3분 안에 달려옵니다. 슬프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꼭 투표하세요!”(2012.4.7. 09:50 임현수). 죄 없는 민간인 사찰에는 그렇게 세심했던 국가기관이, 반정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그렇게 잘 잡아가던 경찰이, 정작 시민이 위험한 일을 당할 때는 팔짱을 끼고 있는 세상이 오늘의 대한민국입니다.

■ 맺는 이야기

저는 확신합니다. 불쌍한 이 여자의 죽음도 결코 헛된 죽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이 되어서 반드시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딸아, 너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다. 너는 반드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피땀 흘리며 애썼으나 실패하시는 것 같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온갖 모진 고난을 받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비록 죽음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그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죽어서 무덤 속에까지 들어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뚫고, 억울함을 뚫고, 절망을 뚫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은혜가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942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41 부활 후 가장 궁금했던 일
940 개켜 있는 수건
939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938 믿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937 그날, 주인공
936 게임의 결과
935 부활절 아침의 사람들
934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
933 [새벽] 홀로 가는 길
932 주님 계신 그 곳에
931 부활의 날, 좋은 날
930 주님의 이슬
929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928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927 주님의 나라로!
926 아름답게 부활하기
925 그래도 기뻐하십시오!
924 "와서 아침을 먹어라!"
923 부활 드라마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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