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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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0:29-37 
설교일 2011-03-13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이혁배 
설교구분 행사 

■ 성서 본문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누가복음서 10:29-37>


■ 들어가는 이야기

지난 금요일 오후에 일본에서 일어난 끔찍한 천재지변 때문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고 있는 주일 아침입니다. 목숨을 잃은 분들과, 상처 입은 분들과, 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인해 괴로움에 싸여 있는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보살핌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은 청년주일입니다. 1953년 우리 교단 제 38회 호헌총회에서 청년주일을 제정한 이후, 우리는 쉰여덟 번째로 청년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청년회 전국연합회에서 전국 각 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숭실대학교 교수이신 이혁배 목사님께서 작성하신 원고인데, 그 뼈대는 그대로 두고, 제가 조금 더하고 빼서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누가복음서 본문을 보면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와서 영생에 이르는 방법을 묻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답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렇게 되묻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율법교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알고는 있군. 그렇다면 그렇게 살면 돼!” 율법연구가 직업인 율법교사는 자존심이 좀 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공격적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이웃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직접 대답하시지 않고 비유를 하나 들어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납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27km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입니다. 여기서 김천 쯤 되는 거리지요. 여리고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봉직하는 제사장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무척 험합니다. 이 길에서 강도들은 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도망갑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리로 내려갑니다. 제사장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서 지나갑니다. 가는 방향으로 보아 제사장은 예루살렘에서 성직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을 것입니다. 성전임무가 급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돕는 한 레위인도 그곳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 역시 강도 만난 사람을 모른 체하며 갈 길을 재촉합니다. 성직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에 이어 그 길을 지나간 사람은 사마리아인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측은히 여깁니다. 그의 상처에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붓고 자기 속옷을 찢어 싸매줍니다. 뿐만 아니라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밤새 극진히 돌봐줍니다. 이튿날 사마리아인은 여관주인에게 돈 두 데나리온을 건네면서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노라고 약속합니다. 이야기를 마친 예수님께서는 다시 율법교사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 지성

첫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성 있는 신앙인이 될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꺼내신 것은 율법교사가 이 율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조문은 알고 있었는데, 그 뜻을 몰랐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도 이 율법조항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성직자들은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다른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은 이웃 사랑이라고 이해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전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고 사랑하지만 자기 옆에서 죽어가는 이웃은 돌보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만 열중할 뿐, 땅에 사는 이웃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도 유대인의 혈통을 이은 것은 맞지만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발달하다 보니까 이방사람들과 결혼하는 일이 많아졌고, 당연히 그들과 피가 섞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의 랍비문서를 보면 “사마리아인의 음식을 먹는 자는 돼지의 먹이를 먹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이웃 사랑에 대한 율법조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라는 것을 알았고, 알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 감성

둘째,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공감의 능력을 갖춘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이,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다른 결정적 차이점은 그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에게 두들겨 맞아 피 흘리는 사람을 보고도 감정의 동요 없이 무관심하게 지나칩니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보고 가엽게 여깁니다.

이스라엘에서 사마리아인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인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도운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가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감능력입니다. 조호진이라는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눈물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고 밥 잘 먹는 무정(無情)한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눈 맑은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무조건 아멘 했다”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어제지요, 조선일보는 "떼죽음 당한 센다이"라고 제목을 뽑았습디다. 중앙일보는 일면에다가 "일본침몰"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썼습니다. MBC는 일본 지진 때문에 한류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고 보도를 했습니다. KBS는 지진 때문에 경기가 취소돼서 김태균 선수의 컨디션이 저하될까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이웃나라의 재난을 두고 어쩌면 언론들이 그렇게 보도를 내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 실천

셋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는 것과 믿는 것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지성의 능력과 공감의 능력 다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 느낀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율법조항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느낀 바를 행동으로 옮깁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에 귀한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줍니다.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하룻밤 동안 극진히 간호해줍니다. 게다가 여관주인에게 환자를 맡기면서 두 데나리온을 지불합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니까 두 데나리온이면 적지 않은 돈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해 시간을 썼고 돈을 썼습니다.

실천하는 것! 그래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사실 생각처럼 잘 안 되지요. 왜 안 됩니까?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 일이지만, 우리는 성경을 깊이 읽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에 참석해아 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신앙의 생명은 훈련에 있습니다. 신앙은 훈련을 먹고 삽니다.

■ 맺는 이야기

오늘 말씀드린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는 제대로 알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음 깊이 느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알고 느낀 바를 그대로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 깊이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아는 것과 느낀 것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면서 당부합니다. 열심히 신앙훈련에 힘씁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도 젊어지고, 몸과 마음도 젊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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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 예수를 도운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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