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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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29-31 
설교일 2006-02-12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너희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우상 숭배를 즐겼으니,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가 동산에서 이방 신들을 즐겨 섬겼으므로
창피를 당할 것이다.
기어이 너희는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처럼 될 것이며,
물이 없는 동산과 같이 메마를 것이다.
강한 자가 삼오라기와 같이 되고,
그가 한 일은 불티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둘이 함께 불타도
꺼 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이사야서 1:29-31)


■ 들어가는 말씀

요즘 아주 흔하면서도 심각한 질병이 ‘고혈압’ ‘동맥경화증’ ‘중풍’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피가 잘 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병들이지요. 온몸에 구석구석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데, 혈관에 불순물이나 침전물이 쌓이면 혈관이 좁아지고, 따라서 혈압이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통한다’는 말과 ‘순수하다’는 말은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하나님과 잘 통하는 신앙인이 되자고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만, 하나님과 잘 통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통로에 불순물이 없어야 합니다. 혈관에 불순물이나 침전물이 없어야 피가 잘 통하고 건강해질 수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통로에도 불순물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순수한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본문 말씀을 봅시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향하여 매우 진노하시는데, 왜 그렇게 진노하셨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옛날부터 사랑하고 잘 보살펴 주셨는데, 유다 백성들이 자꾸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절을 하고…, 이렇게 헛짓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 벌이 뭐냐 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29절에 나오는 것처럼 “너희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30절에 “너희가 시들고 메마를 것이다”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31절, “너희 몸뚱이가 불타도 꺼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살 것이다, ▶여유 있게 살지 못하고 메말라서 허덕거리며 살 것이다, ▶위기를 당했을 때 슬기롭게 헤쳐 나가지 못하고, 아무도 안 도와줘서 거기서 끝장나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양다리 걸치는 신앙,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신앙, 순수하지 못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받게 될 벌이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 몸에서 피가 잘 통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고혈압에 걸리고 동맥경화증에 걸리고 중풍에 걸려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통로가 확 뚫려 있지 않으면 더 심각한 병에 걸려서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하려고 합니다. 자꾸 부정적으로 벌 받을 것만 생각하지 말고, 이걸 한 번 뒤집어 봅시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순수하지 못한 신앙을 가져서 벌 받을 것 걱정하지 말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향해서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을 가지자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복을 받을 수 있느냐, 역시 벌을 뒤집으면 복이 됩니다.

1. 첫째,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밖에 나가서 당당하게 살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매일 빌빌거리며 자기 할 소리도 제대로 못하고 주눅 들어 살기를 바라십니까? 당연히 당당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아이가 밖에 나가서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부모와 소통을 잘 하는 아이, 곧 부모와 잘 통하는 아이가 밖에 나가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잘 통한다는 것은 그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뿌리가 튼튼하다는 말이에요. 주변에서 살펴보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선생님과도 친하지 못합니다. 선생님만 보면 자꾸 피하게 됩니다. 선생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른들을 봐도 그분과 가까워지고 친해지기보다는 자꾸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볼 때도, 비록 남의 집 아이지만, 자꾸 피하는 아이가 예뻐 보입니까, 아니면 당당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아이가 예뻐 보입니까? 예의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누가 보더라도 당당한 아이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취직도 잘 하겠지요. 입사시험 칠 때나 대학 입시 때, 면접관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요즘은 말 잘 듣는 아이들은 써먹을 데가 별로 없습니다. 예의를 지키면서도 당당한 아이, 당당한 사람을 뽑겠지요.

이것은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잘 통할 수 있으면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당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어머니와 잘 통하지 못하는 아이가 밖에 나가서 주눅 들어 살 수밖에 없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잘 통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자꾸 세상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도 상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과 똑 같은 이치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잘 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잘 통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순수한 신앙’이지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는 가운데, 하나님은 항상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고, 나를 위해 희생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면, 그것이 순수한 신앙입니다.

2. 자, 그러면 다음 이야기를 해봅시다. 둘째,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여유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아까도 아이들 이야기를 했으니,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 봅시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부모와 잘 통하면 밖에서도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일 중에서도 제일 피곤한 일이 ‘사람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일 때, 밖에 나가서 한 시간 정도 그 사람을 만나고 들어오면 한 시간 노동을 한 것보다 훨씬 더 피곤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 만나면 즐거운 사람, 이런 사람과 만나는 것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활력을 줍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이 부담 없이 대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건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 아내와 갈등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 소모되는 에너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래서 수신제가(修身齊家) 이야기가 나왔을 겁니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안 써도 될 데다가 에너지를 써버리면 정작 써야 할 곳에 쓸 것이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부부사이에 조화를 잘 이루고 문제가 없는 사람이, 남자나 여자나 일도 잘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소화해야 할 학습 과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친구들과도 잘 사귀어야 하고 선생님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 거기도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부모와 소통이 제대로 안 되면 거기에 신경 쓰느라고 에너지를 소모해버리면 밖에 나가서 도무지 여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매일 지쳐서 허덕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었지요? 인생에서 성공이란 가족 간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제가 볼 때 이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아이들을 ‘나무’라고 한다면 가정은 ‘물’과 같습니다. 시편 1편에서 시인이 노래한 것과 같이,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철따라 열매를 맺고 시들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물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하면 항상 메마른 상태에서,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생존하는 데 급급한, 피곤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원활하게 물을 공급 받기 때문에 항상 싱싱하게, 물을 비축해 두고 여유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인은 나무요, 주님은 나무에 물을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주님과 잘 통하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언제든지 맑은 물을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여유 있게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 만일 부모와 잘 통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고 합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효율을 따져보면 엄청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겉으로는 표시가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효율성을,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게 그래프로 표시할 수 있다면 엄청난 차이가 나타날 것입니다.

부모와 통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 갈등 때문에 다른 데 쓸 에너지의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통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자기 존재에 대한 갈등 때문에 다른 데 쓸 에너지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잘 통하는,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물가에 서 있는 푸른 나무처럼, 항상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고, 여유를 가지고 어떤 일에든 대처할 수 있습니다.

3. 셋째,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위기가 왔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 문제도, 아이들과 부모 사이를 비유해서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밖에서 사고를 쳤다고 생각해 봅시다. 요즘 아이들이 심심찮게 밖에서 사고를 치지요. 보통 부모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기 아이가 문제가 있어서 학교에라도 불려가게 되면 자기 아이가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아이가 정작 ‘나쁜 친구’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지요. 다 이렇게 오해하며 사는 것이겠지요. 청소년기 아이들은 밖에서나 학교에서, 어떻게 보면 시한폭탄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부모라면 그럴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는 게 좋습니다.

어쨌든, 우리 집 아이가 밖에서 사고를 쳤다고 할 때, 평소에 부모와 잘 통하는 아이라면, 그런 불상사가 생기는 즉시 부모와 의논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잘 모르는 게 있어요. 아직 경험이 적어서 그렇겠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나서 대책이 없다고 결론을 내려 버린다는 겁니다. 부모나 어른들과 의논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일도 혼자 처리하려고 하다가 문제를 더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부모와 잘 통하던 아이들은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일단 부모와 의논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비록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어머니는 내 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부모와 잘 통하지 못하던 아이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이겁니다. “이제 집에 가면 나는 죽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숨기지?”

학생들이 교무실로 불려갈 일이 생겼을 때, 선생님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제가 어떤 벌이라도 받을 테니 제발 집에는 알리지 마세요.” 이 말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말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 앞에 선 우리에게도 똑 같이 일어납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잘 통하던 사람들은 인생에서 웬만한 문제가 발생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떨지 않습니다. 곧바로 하나님께 문제를 털어놓고 아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해결책이 없는 것 같던 일도 하나님 앞에 가면 의외로 쉽게 문제가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순수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 곧 하나님과 잘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 맺는 말씀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요즘 많이 듣는 말이 ‘참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 드는 세상에서 생존경쟁에 시달리면서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은 참 아름다운 신앙인들입니다. 주님과 잘 통하며 살기를 바라는, ‘착하고 충성된’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참 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를 부려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뭔가를 바라셔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기 위해서 ‘오너라’ ‘바쳐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복음서 11:28-30).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금 뺏으려고 우리를 부르셨겠습니까? 노동력 착취하려고 부르셨겠습니까?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것저것 율법으로 옭아매어서 우리를 겁주고 괴롭히려고 부르셨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벗어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보람 있게, 행복하게 먹고 살게 하실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알려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세상에 살다가 위기가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시려고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주님과 잘 통할 수 있도록 순수한 신앙을 키워나가야겠습니다. 그리 해서, 첫째, 그 누구를 만나든지 당당한 신앙인이 되고, 둘째, 언제나 부족해서 허덕이는 사람이 아니라, 풍족하게 에너지를 공급받아서 그것을 비축해놓고 여유 있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고, 셋째,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그 문제를 주님 앞에 그대로 들고 나가 깔끔하고 깨끗하게 해결을 보는 멋진 신앙인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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