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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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6:1-8 
설교일 2006-03-19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이사야서 6:1-8)


■ 들어가는 말씀

올해, 2006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지침으로 삼기로 한 말씀이 이사야서 6장 8절 말씀입니다. 다 같이 한 번 큰 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어 주실 것을 청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나 불러서 쓰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려면 싹수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세 주 동안 저는 ‘하나님께서 불러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사야서 6장 1절부터 8절까지 말씀에 근거해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불러서 쓰시는 사람은 ▶첫째, 진지한 사람, ▶둘째는 기도하는 사람, ▶셋째는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은 진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먼저, 진지한 사람은 목적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진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국어사전에 보면 “태도가 참되고 착실하다”라고 풀이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참되고 착실한 것은 무엇인가, 또 이걸 설명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다가 보면 낱말 풀이하다가 세월이 다 가겠지요. 그래서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이걸 조심해야 하는데, 다른 데서는 어떻게 풀이를 하든, 자기가 이 말을 어떤 뜻으로 쓰는가, 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진지하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정의하려고 합니다. 진지한 사람은 ‘목적 없이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곧 무슨 말을 할 때나 무슨 행동을 할 때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하는 사람이 진지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목적이 선한 것이냐, 아니야 하는 것은 따지지 않겠습니다. 선한 목적이든 아니든 일단 목적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목적 없이 하는 사람보다는 진지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사야서 1장부터 5장까지를 읽었습니다만, 거기에 나오는 이사야의 말 중에 종이 칸 채우기 위해서 한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지도자들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했는가, 정의를 우습게 알고 뇌물을 받고 약한 사람을 멸시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는가,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를 맺기 바라셨지만 들 포도만 맺혔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나라가 망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다. 여기까지가 1장부터 5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지하게 살아야 합니다. 조금 있다가 12시부터 우리나라와 일본이 야구를 하지요. 우리나라 팀의 선발투수로는 서재응이 나오는 걸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보통 투구 수 제한이 없습니다만, 이번 WBC 경기에서는 투수의 투구 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오늘 준결승에서 선발투수는 아흔 다섯 개의 볼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투수가 훌륭하다, 잘 던졌다, 이런 평가를 받으려면 가능하면 볼을 적게 던져서 상대 선수를 가능하면 많이 아웃시켜야 합니다.

박찬호의 연봉이 우리 돈으로 130억 쯤 됩니다. 1년에 30경기에 출장한다고 할 때 대충 계산하면 한 경기에 4억 남짓이지요. 한 경기당 100개의 볼을 던진다고 할 때 볼 하나 당 400만원이 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볼 하나하나에 신경을 안 쓸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투수는 절대 장난삼아 볼을 던지지 않습니다. 때때로 터무니없이 버리는 것 같이 보이는 볼도 사실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볼 하나마다 다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평소에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 반드시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흔히 농담을 가끔씩 하는데, 편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냥 즐겁게 노는 시간이 아니라면 이 ‘농담’도 다 목적이 있는 겁니다. 최근 WBC 야구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일본과 미국을 연거푸 이긴 것에 대해서 한나라당의 이계진 대변인이 쓸데없는 농담을 했다가 몰매를 맞았지요.

어쨌든 이사야는 세상 돌아가는 것 하나하나를 예사로 보지 않았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그냥 하는 법이 없습니다. 요즘 이사야서를 하루에 두세 절씩 읽도록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두는데,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의미 있는 말입니까?

훌륭한 궁수는 화살 하나를 자기 목숨처럼 아낍니다. 훌륭한 사수는 절대 대충 총을 쏘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정조준해서 호흡을 고른 다음, 명중할 수 있게 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실 때 돈 많은 것 보고 부르시지 않습니다. 꼭 공부 많이 한 사람 부르지는 않습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사람, 진지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불러 쓰십니다.

2. 둘째, 진지한 사람은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제 1회 WBC 야구 경기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린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일본의 이치로 선수입니다. “앞으로 최소한 30년간은 한국이 일본 야구를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 이렇게 말했다가 불과 며칠 만에 망신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이치로는 그냥 막연하게 한국 야구는 일본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 그렇게만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당연히 자기들이 이길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한 겁니다. 상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미국의 벅 마르티네스 감독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미국 기자가 미국 대표 팀 감독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감독님은 멕시코와 한국이 경기할 때 멕시코 선수들만 관심 있게 지켜보셨다고 했습니다. 참 현명하셨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이런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미국 팀은 한국 선수들을 전혀 분석하지 않고 시합에 임했습니다. 당연히 자기들이 이길 걸로 생각했겠지요. 한국이 미국을 이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야구팀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 우리의 야구 실력이 성장한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성적을 거둔 것은 상대가 한국 팀을 얕보고 전혀 공부를 안 하고 나왔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 경기는 양상이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 팀이 “아이고 뜨거워라!” 하고, 아마도 상당히 우리 선수들에 대해 분석을 많이 하고 나올 겁니다. 그런데 공부 기간이 짧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피차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면 지더라도 후회는 없습니다. 경기란 것은 늘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이사야는 당시 국제정세에 대해서 상당히 정확한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근동 지역의 맹주 노릇을 하던 나라는 앗시리아였습니다. 앗시리아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었고, 지금 먹잇감으로 삼고 노리고 있는 나라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과 유다였습니다. 앗시리아가 서쪽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하니까 시리아와 이집트는 힘을 합해서 앗시리아에 대항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 힘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남쪽 유다에게도 연합군에 동참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거기에 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대국인 앗시리아에 줄을 대서 정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북쪽의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힘을 합해 유다를 공격합니다. 상황이 참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어수선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런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웃시야 왕을 만납니다. 이사야서 7장 4절에 보면 이사야는 웃시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리아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마라.”

일본 감독과 미국 감독은 한국 팀의 실력을 무시해서 경기에서 졌지만, 유다의 웃시야 왕은 별 것도 아닌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을 두려워해서 일을 망치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런 판단을 정확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중요한 시기에 이사야를 불러서 당신의 예언자로 삼으셨습니다.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항상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유익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을 불러서 쓰시는 겁니다.

3. 셋째, 진지한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안에서 찾는 사람입니다.

야구가 요즘 우리 관심거리이기 때문에 자꾸 야구 이야기를 합니다만, 일본의 왕정치 감독이 엊그제, 일본의 뼈아픈 패배의 원인은 한국 팀의 수비였다고 했습니다만, 글쎄요, 제가 보기에 그건 아직까지 정확한 진단은 아닙니다. 한국 팀이 수비를 잘하면 그 수비를 어떻게 뚫을 것인가, 일본 팀이 왜 그걸 뚫지 못했는가, 그걸 연구해야지요.

요즘 반미 분위기가 예전보다는 상당히 커지고 있습니다만, 숭미가 좋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반미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미국 욕한다고 달라질 게 뭐 있습니까?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경험이 있지만, 일본 사람들 욕할 것 하나 없습니다. 그거 다 우리가 못나서 그렇게 된 건데, 일본 사람들 욕한다고 해결될 문제입니까? 원인을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겁니다.

이사야는 당시 초강대국인 앗시리아가 위협을 해오고 있었지만, 앗시리아를 욕하기 전에, 일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을 안에서 찾았습니다. 나라가 이 꼴이 된 것은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우리’ 중에서도 지도자들과 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정의에는 귀를 막고 자기들 배불리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유심히 볼 게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런 우를 범합니다만,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손가락을 밖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이사야가 지도자들과 부자들의 잘못을 지적했는데,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기 좋게 부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가 누굽니까? 그는 예루살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당시의 국가 위기에서 이사야는 그 원인을 유다 안에서 찾았고, 유다 안에서도 부자들과 지도자들에게서 찾았는데, 자기가 바로 그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하, 이건 바로 우리 책임이로구나!” 그래서 이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이 네 왕의 통치기간에 예언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굵은 베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이건 무엇을 말합니까? 베옷은 회개할 때 입는 옷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한 겁니다. 얼마나 멋진 인물입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흔히 손가락을 남에게로 돌립니다. 국가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남의 나라를 탓합니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안에서 찾습니다. 먼저 ‘나’에게서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 탓하는 사람을 불러 쓰시지 않습니다. 자기에게서 잘못을 찾고 문제를 찾는 사람을 불러 쓰십니다.

■ 맺는 말씀

이제 요약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지한 사람을 불러서 쓰십니다. 진지한 사람은…

▶첫째, 목적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목적 없는 말을 하는 사람, 목적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한 마디로 ‘실없는’ 사람입니다. 궁수가 목표물을 분명히 주시하고 화살을 명중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듯이, 우리가 말한 마디를 할 때도, 작은 행동 하나를 할 때도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해야겠습니다.

▶둘째,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는 사람입니다.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해야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나의 이익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나 개인의 복락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 진지한 사람은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않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않습니다. 우리 문제가 무엇인가, 나의 문제가 무엇인가, 이것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불러서 쓰시기에 적합하도록, 진지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말하고, 진지하게 행동하는 멋진 신앙인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22 몸으로 믿으십시오!
921 나의 성공, 누가 가장 기뻐할까?
920 아름답고 즐거운 일
919 2020.2.23 온라인예배 실황 영상
918 마음 갈증 해결하기
917 빛이신 하나님
916 편안한 후회
915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914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913 으뜸 친구
912 어느 쪽이 이길까?
911 저승에 간 부자
910 “그만하면 됐다!”
909 시온의 딸과 임금님
908 먹보들의 기도
907 “평화가 있어라!”
906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905 엄마 집
904 복의 생산과 유통과정
903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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