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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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0:20-23 
설교일 2006-04-23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과
야곱 겨레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시는 그들을 친 자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주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할 것이다.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여도,
그들 가운데서 오직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너의 파멸이 공의로운 판결에 따라서
이미 결정되었다.
파멸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주님, 곧 만군의 주님께서
온 땅 안에서 심판을 강행하실 것이다.

(이사야서 10:20-23)


■ 들어가는 말씀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이사야가 했던 이 말은 대단히 유명한 말입니다. 이사야가 활동을 시작하던 때가 기원전 740년경인데, 이 말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약 200년 후입니다. 기원전 722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고, 기원전 587년경에 남 왕국 유다까지 멸망했습니다. 유다에서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혀 갔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538년경이니까 약 200년 뒤가 되지요.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200년 전에 이사야가 했던 이 말을 곱씹으며 바빌로니아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던 사람들은 감격해 했을 것입니다.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주후 1945년, 이른바 시오니즘이라 하여 세계 각 나라에 2천 년이나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오면서 역시 감격해 하며 곱씹었던 말입니다. 이것은 약 2300년 이후의 일입니다.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수천 년 동안 잊지 않았고, 실제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 수천 년을 길다고 하지 않고 묵묵히 참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또는 유다 백성들이 수백 년 동안, 아니 수천 년 동안 시련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남은 사람들이 돌아오리라!”라는 말씀을 부여잡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갈 꿈을 잃지 않은 것은 그들의 민족의 ‘뿌리’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 앞에 죄를 지은 일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다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의 ‘뿌리’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뿌리’만 죽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을 만나서 망가지더라도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뿌리’만 죽지 않으면, 탕자처럼 방황하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오늘은 ‘뿌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첫째, 뿌리는 생존의 근거입니다.

수필가 문윤정 씨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한 장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우주가 흔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뭇잎은 가지를 의지하고 있으며
가지는 뿌리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뿌리는 대지를 의지하고 있으며
뿌리는 하늘과 땅을 순환하여
땅속을 흐르는 물을 흡수합니다.
한 사람의 깨끗한 마음은
징검다리처럼 이 모든 것을
건너고 건너서
세상을 밝게 합니다.
― 풍경소리, 《풍경소리2》(샘터사, 2005), 100쪽.


뿌리는 어디에 박혀 있습니까? 당연히 땅에 박혀 있습니다. 왜 땅에 박혀 있습니까? 그것은 땅으로부터 물을 공급 받기 위해서입니다. 땅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 받기 위해서입니다.

요 앞에 교회 현관을 나가면 바로 전봇대가 하나 있는데, 제가 최근 며칠 동안 바깥출입을 안 해서,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며칠 전에 보니까 민들레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전봇대는 아스팔트 위에 세워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스팔트와 전봇대 사이, 그 좁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민들레가 피어 있는 겁니다. 참 대단한 생명력 아닙니까? 겨우내 뿌리가 살아 있었다는 이야기고, 그 뿌리가 영양분을 잘 공급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더구나 전봇대 밑이니까, 지나가던 개들이 거름도 꽤 줬을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지금도 계속하여 영양분을 공급 받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의 영양분을 공급 받고 있는 한,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는 건재한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지 않고, 정기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는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 둘째, 뿌리는 지탱의 근거입니다.

마가복음서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멋진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 먹어버렸습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씨는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해가 뜨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용비어천가 중에도 이런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릴세,
꽃 좋고 열매가 많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세,
내를 이루어 바다에 나간다.


조금 전에 ‘뿌리는 생존의 근거’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생존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저항력이 있어야 합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뿌리는 우리가 힘을 쓸 수 있도록 우리를 지탱해 주는 구실을 합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나 짐승이나 등짝을 쓸어주면 참 좋아하는데, 소가 혼자 풀을 뜯다가 등이 가려우면 언덕에다가 대고 쓱쓱 문지르지요. 저도 가끔 의자 등받이에 등을 대고 이리저리 움직여보면 참 시원합니다.

여러분, 줄다리기 해보셨지요? 줄다리기를 할 때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양 팀이 줄을 당겨서 팽팽하게 되면 발의 위치를 잡아서 살짝이라도 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지요. 그게 지탱의 근거입니다. 뭔가를 밀어낼 때도 벽에다가 등이나 발을 대고 미는 것하고, 그냥 미는 것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지탱의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내는 힘의 강도는 그만큼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가 기댈 언덕, 우리가 비빌 언덕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힘의 근거, 우리의 지탱의 근거는 어디입니까? 하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힘의 근거, 지탱의 근거로 두고 살아갈 때, 그렇지 않은 사람과 힘을 내는 것에 현격한 차이를 나타냅니다.

뿌리 있는 신앙인이란 하나님을 힘의 근거로 삼고, 하나님을 지탱의 근거로 삼는 신앙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뒤에 든든하게 서 계시는데 우리가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실제 위험이 닥치고 시련이 닥치더라도 신앙의 뿌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거기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뿌리 있는 신앙이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뒤에 버티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3. 셋째, 뿌리는 소생의 근거입니다.

요즘 산과 들에 나가 보면 온갖 꽃들이 화려한 색깔과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지난겨울 동안 산의 색깔은 거의 갈색이었습니다. 나무의 잎도 다 떨어지고 꽃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해동이 되기 시작하면서 하나씩 연두색 빛을 보이더니, 3월이 되면서부터는 드디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겨울 내내 산을 다니면서, 저는 작년에 그렇게 화려했던 꽃들이 다 죽은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봄이 되어서 다 죽은 것만 같던 나무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아하, 이게 하나님의 섭리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시인 김남조는 〈좌우명〉이라는 시에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잎이 아닌 뿌리에서 더욱 봄다웁기를!” ― 김남조, 《영혼과 가슴》(새미, 2004), 69쪽. “잎이 아닌 뿌리에서 더욱 봄다웁기를!” 봄이 되면 꽃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두색 새싹이 예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으로 볼 때 그 아름다운 꽃이 다시 피기 위하여, 그 예쁜 새싹이 다시 돋기 위하여 겨우내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뿌리’에서 더 봄다운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환경이 열악해지면, 예를 들어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나무가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처음에는 꽃이 죽습니다. 다음에는 잎이 마릅니다. 그 다음,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가지가 죽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이 될 때까지 뿌리는 죽지 않습니다. 이것은 뿌리가 있으면 다른 것은 다 소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가 끝까지 뿌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뿌리는 가장 밑에 땅 속에 있는 것이지요.

뿌리만 살아 있으면 좋은 날이 와서 비가 내릴 때 물을 흡수하게 됩니다. 그 때에는 뿌리가 싹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잎이 다시 소생하고, 꽃도 다시 필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단계가 우리 인생에도 존재합니다. ― 오쇼 라즈니쉬(류시화 역), 《사랑의 연금술 1》(김영사, 1998), 248쪽).

여러분이 잘 아시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둘째 아들은 혼자서 객지에 나가 온갖 고생을 다한 후에 결국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돌아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남아돈다!” 아버지의 집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버지는 자기를 받아주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뿌리입니다. 내가 비록 타락하여 방황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받아주시리라는 사실,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뿌리입니다.

뿌리는 소생의 근거입니다. 또한 뿌리는 거듭남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뿌리는 부활의 근거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뿌리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 맺는 말씀

골로새서 2장 7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이사야는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라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죄를 지어 타국으로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게 되겠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200년 후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2천3백 년 후에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의 뿌리를 통로로 하여 주님의 말씀을 공급 받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하여, 이 세상의 어떤 역경이나 환난도 이겨나갈 힘을 얻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고 하는 말씀을 놓치지 말고,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회복의 날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신앙의 뿌리를 더욱 튼튼하게 내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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