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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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4:22-23 
설교일 2006-05-2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일어나 바빌론을 치겠다.
내가 바빌론을 멸하겠다.
그 명성도 없애고, 살아 남아서
바빌론의 이름을 이어갈 자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멸종시키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또 내가 그 도성 바빌론을
고슴도치의 거처가 되게 하고,
물웅덩이로 만들며,
멸망의 빗자루로 말끔히 쓸어 버리겠다.
만군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사야서 14:22-23)


■ 들어가는 말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이고, 불구경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이사야서를 계속 읽고 있는데, 요즘 나오는 내용이 바빌론이 망하리라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고소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골라 하던 인간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처참하게 망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기는 합니다만, 사실 그게 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남이 망하는 것을 보고 박수를 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빌론이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을 몰라보고 교만이 극에 달하였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 큰 제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거기서 재물을 탈취하고 사람을 잡아가고, 해서 망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을 우습게 여기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죄 없는 피를 흘려서 땅을 더럽혔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바빌론은 ‘교만’ 때문에 망한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빌론이 망하는 것을 보고 고소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빌론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우리는 그렇게 망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기 위해서, 겸손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첫째, 유연한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떤 여자가, 자기 몸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힘을 길러서 자기를 괴롭히려는 사람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술을 가르치는 사범은 힘을 길러줄 생각은 하지 않고, 수업 때마다 힘 빼라는 말만 계속합니다. 이 여자는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열심히 샌드백을 치다가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신을 차리는 순간, 밀려갔던 샌드백이 자기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엉겁결에 주먹으로 힘껏 샌드백을 쳤지만, 오히려 자기가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주먹도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이 여자는 그제야, 아하, 힘을 빼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 하면서 무릎을 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산에 산책을 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갑니다. 주보에 보시는 것처럼 꽃 사진도 찍고 때때로 사람도 찍는데, 사람하고 꽃하고 어느 쪽이 찍기가 더 어렵겠습니까? 얼른 생각하면 사람보다 꽃을 찍기가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찍는 게 훨씬 쉽습니다. 사람을 찍을 때는 말로 하면 되잖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조금만 돌아서세요, 조금 왼쪽으로 가세요, 이렇게 말로 하면 되는데, 꽃은 그렇지 않습니다. 꽃의 모양이 가장 잘 나올 위치로 사람이 찾아가야 합니다. 빛의 방향이 어떤지 살펴서, 가장 잘 찍힐 지점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몸을 비틀어야 할 때도 있고, 허리를 구부려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건 그렇게 하면 별 일은 아닌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꽃이 가만히 멈추어 있을 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꽃들이 얼마나 유연한지, 산들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살랑살랑, 계속 움직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마치 총을 쏠 때처럼, 카메라 렌즈를 겨누고 있다가 움직임이 가장 적은 한 순간을 포착해서 셔터를 눌러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참 멋지게도 만들어 놓으셨구나, 저렇게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들어 놓으셨기에 그 험한 산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구나…. 사람이 잡아 꺾으면 모르지만, 꽃은 자연 상태에서는 웬만해서는 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가지가 유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산짐승들이 스치고 지나가도 언제나 다시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바람을 위해서 꽃이 자기 몸을 숙여 주는 것, 사람이나 짐승이 자기를 스치고 지나가도록 몸을 구부려 주는 것, 이렇게 남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데 그게 결코 남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자기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이렇게 겸손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말만 높인다고 겸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내 생각이 부딪칠 때, 내 생각을 조금 접어서 다툼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유연한 생각을 가지는 겁니다.

전에 언젠가 저는 제 친구에게 충고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저보고 그래요. ‘당신은 글을 쓸 때도 그렇고 말을 할 때도 그렇고, 단정적인 말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절대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요즘은 이런 말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신경을 씁니다만 예전에 썼던 글을 읽어보면 그런 표현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일은 별로 없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말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옳은 것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유연하게 가지자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틀렸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절대 진리로 믿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우리가 겸손해지려면 탄력 있는 안목을 가져야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이잖습니까? 어느 일본 매니저가 무슨 일이 있어서 싱가포르 변호사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양반이 응접실에 들어갔더니, 키가 큰 백인 남자가 한 사람 있고, 까무잡잡하고 작달막한 아시아계 여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매니저는 당연히 백인 남자가 변호사일 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가서 자기소개를 하고 명함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 백인 남자의 반응이 좀 이상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남자가 조수이고, 여자가 변호사였습니다.

이 매니저는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그에게 무엇이 잘못 됐습니까? 그 사람은, 변호사, 하면 당연히 여자보다는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고, 아시아계 유색인보다는 백인일 거라고 생각했던 ‘지레짐작’이 문제였습니다. 이건 일본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대단히 큰 문제입니다.

특히 고등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사람을 볼 때, 제일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저 사람이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가, 무슨 과를 나왔는가, 하는 겁니다. 자기들의 최대 관심사가 대학이니까 당연한 일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와 사람들의 의식의 문제겠지요. 그래서 저 사람은 몇 점짜리 인생, 저 사람은 몇 점짜리 인생, 하고 단정을 지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렇게 성장한 청소년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두 사람이 마주앉으면, 당장에 속으로 상대방의 학벌을 따져봅니다. 상대방의 연봉을 따져봅니다. 그리고 겉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자기보다 상대가 못하다고 생각하면 은근히 무시하려고 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백인들이 왜 수천만의 원주민들과 흑인들을 학살했습니까? 자기들이 그들보다 우위에 있는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서열주의 때문에 그런 겁니다. 대외적으로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댈는지는 모르지만 내막을 따지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노예를 마음대로 처분해도 된다는 생각, 양반이 상놈들에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 남자니까 여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 한국 사람이니까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보다는 뭐가 나아도 낫다는 생각…. 대단히,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바빌론 사람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멸망하게 되었는데, 한참 잘 나갈 때 그들의 태도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이 주변 약소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자기들의 신이 다른 나라의 신들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함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거기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자기나라로 데려가서 노예처럼 부려먹고,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라고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3. 셋째, 우리가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작년 10월에 평양에 갔을 때, 칠골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고, 점심을 먹으러 단고기집에 갔었습니다.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요리가 나오는데, 반주(飯酒)로는 평양소주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최근에 소주가 20도로 내려갔습니다만, 거기서 나온 소주는 25도짜리였습니다. 병뚜껑도 돌려서 여는 것이 아니라 병따개로 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식탁마다 병뚜껑이 다 열려 있는 거예요. 안내원에게, 이거 왜 이러냐고 물어봤더니, 단고기를 먹을 때는 따뜻하게 해서 먹는 게 몸에 좋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참 일리 있는 말이었습니다.

원래 반주라는 게, 음식물이 우리 몸에 잘 섭취되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하는 건데, 소주가 차면 취하기만 취했지, 몸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반주로서의 의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물도 우리처럼 차가운 얼음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기를 아끼려고 냉장고에 안 넣어둬서 그렇다고 합디다만, 제가 보기에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가 10월 중순이니까 북한 날씨라면 물을 밖에다가만 내놓아도 냉장고에 넣은 듯이 찰 텐데, 찬물 주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빨래를 할 때도, 때가 절어 있는 걸 빨 때는 따뜻한 물에다가 빨지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찬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소주도 차게, 맥주도 차게, 물도 차게, 그것도 모자라서 아이스크림이나 얼음과자도 열심히 먹습니다. 그런 게 우리 몸에 들어가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 몸의 온도가 36.5도 정도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 몸이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음식물은 체온과 비슷한 온도를 유지하는 음식물일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 마음도 너무 차가워져 있습니다. 따뜻한 물이 때를 잘 분해하듯이, 따뜻한 음식이 몸에 잘 흡수되듯이, 우리 마음도 좀 더 따뜻해져야, 다른 사람들과 잘 융화가 됩니다.

■ 맺는 말씀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우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빌립보서 2:3).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생각을 유연하게 가지라는 말입니다. 내 말이, 그리고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 가 아니라, 아무리 내가 확신하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이 옳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말입니다.

또한, 무슨 일을 경쟁심에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경쟁심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사람에 서열을 매기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학교 나왔느냐, 연봉이 어떻게 되느냐,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이 경쟁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지식을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무식하게, 그런 것도 몰라?”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고, 자기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지식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서열화 해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맙시다.

그리고 허영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허영이라는 게 뭡니까? 필요하지도 않은 일을 괜히 하는 게 허영입니다. 격에 맞지 않는 것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또는 괜히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허영입니다. 물은 반드시 냉장고에 넣었다가 차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 소주도 살얼음이 일 정도로 차게 해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 나 정도면 이렇게 말을 하고, 내 지위정도면 이러이러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벗어버리고, 허영에서 놓여날 때 우리는 따뜻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사에 겸손해야 합니다. 허리만 굽힌다고 겸손한 것은 아닙니다. ▶첫째, 겸손한 사람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유연한 생각을 가집니다. ▶둘째, 겸손한 사람은 인종이나 학벌이나 연봉이나 남녀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람에 서열을 매기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을 똑 같이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겸손한 사람은 공연한 허영심에서 위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게,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융화하고 잘 어울립니다.

우리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교만한 생각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 그것을 모두 다 벗어버리고, 우리 모두 부드럽고, 공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싶어 못 견디는 멋진 신앙인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921 마음 갈증 해결하기
920 빛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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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총명한 사람의 선택
902 주일에 해야 할 일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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