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성서본문 누가복음서 2:41-52 
설교일 2006-08-27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누가복음서 2:41-52)


■ 들어가는 말씀

교회마다,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대개 환영 문구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의 입구에 이런 환영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귀한 사람이니, 어서 교회로 와서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라는 뜻이겠지요. 며칠 뒤에 보니까 그 문구 밑에 이런 낙서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거든!”

문체나 글씨체로 보면 이런 낙서를 한 사람은 아마도 학생이겠지요.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말 많이 쓰잖아요? “아니거든!” “됐거든!” 어법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애교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문구 아래에 이 학생이 그런 글을 남긴 것을 보면, 자기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자기 생각에, 자기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스트레스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무시 당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천덕꾸러기로 태어난 사람…, 사랑 받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미움 받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능력 없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싫어한다는 말을 듣는 것에 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런치메이트 증후군!’ 혼자 점심을 먹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세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어울려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혼자서 점심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걱정을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은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사람이 특히 이 문제에 민감한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받도록 만들어졌는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상 증세가 나타나겠지요. 그런 사람은 돌출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남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요. 인터넷에 일삼아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도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신약성경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기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게 되었을까,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열두 살 되던 해에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었지요.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며칠을 걸어서 갔다고 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절기 관습이라지만, 다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의 부모는 참 훌륭한 분들입니다. 자식의 신앙 훈련을 잘 한 것이지요.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아들인 예수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효자 집안에서 효자 나고, 신앙인의 집안에서 신앙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제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지요. 조상의 제사에 자식이 불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상놈의 자식들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막 돼먹은 자식이라도 제삿날만은 당연히 의관정제하고 참석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무슨 재미가 있어서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 분위기상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배워야 할 점입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사랑하시겠지요. 탕자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신데,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사랑도 받게 됩니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쪽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 하지요. 아내가 예쁘면 아내와 관련된 것은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당연히 사랑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욕을 많이 먹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빙자해서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빙자해서 권력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자기 욕심 채워주는 도깨비방망이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가장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 받는 사람의 기본입니다.

2.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가신 예수님은 거기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이고,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모이는 자리니,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은 다 모였겠지요. 거기서 예수님은 전혀 모자람이 없이 그들과 토론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했습니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머리가 좋고 천재여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늘 보지 않습니까? 공부 잘하는 아이라고 어른들과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공부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공부는 잘하지만 어른들로부터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학교 성적을 그렇게 좋지 못하지만 ‘참 신통하다’는 듣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상대와 말이 통하는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거나 토론을 할 때, ‘지혜’가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러나 ‘지식’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꾸 자기 머리를 뒤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튈 수밖에 없지요. 상대방과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지식은 가능한 한 뒤로 물리고, 지혜를 전면에 내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잘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전체를 생각하고 그 안에서 개인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조화를 존중하게 되지요. ‘마음이 넓다’고 하는 것이 이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남보다는 자기가 우선이고, 전체보다는 개인이 우선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의 환영을 받을 수 없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기가 어렵습니다.

3. 예수님은 효성이 지극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이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자 잔치 일손을 돕던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와서 부탁했습니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그건 나와 어머니에게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전 아직도 그런 것 할 때가 아니에요.” 그냥 거절하신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심성을 아는지라,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뭔가 대책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은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번 일도 보면, 예수님과 어머니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하루쯤 가다가 보니까, 당연히 일행 중에 끼어 있을 줄 알았던 예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길에서, 예루살렘에서, 사흘이나 예수를 찾다가 못 찾고, 예루살렘 성전에 다시 갔더니, 예수가 거기 있는 겁니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예수님이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에요? 이 말씀에 담긴 뜻에 대해서 지금 길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이것은 예수님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에 뭔가 큰 차이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보통의 부모자식 간에도 세대차이가 있는 법인에, 범상한 인물이 아닌 예수님과 부모 사이에 생각이 다른 것이야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모를 거역했다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효도하신 모습만 나옵니다.

이렇게 사고방식 차이가 크게 나는데도, 부모자식 사이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만큼 지혜로우셨다는 뜻이겠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생각과 뜻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51절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이게 정답입니다. 자식과 부모가 생각이 다를 때, 자식이 부모와 논쟁을 해서 어느 한 편이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갈등만 더 커집니다. 예수님은 그냥 두 말 않고 ‘순종’하셨습니다. 이게 자식이 부모를 이기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생각이 다르다? 일단 인정. 그 다음은? 순종입니다. 이렇게 하면 부모는 반드시 자식 편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단 순종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상당히 당돌한 아이였습니다. 가끔씩 뚱딴지같은 소리도 잘 했고, 때대로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니은 문제가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당돌함’을 ‘순종’이라는 미덕으로 확실히 커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엉뚱함’ ‘당돌함’ ‘튀는 생각’ 다 가져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여기에다가 ‘순종’을 곁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튀면서도 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 맺는 말씀

예수님의 학창시절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종교생활: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예식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셨습니다. ▶탐구생활: 지식보다는 지혜를 앞세워 공부하였으므로, 당대의 최고 학자들과도 당당하게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생활: 부모와 생각이 엄청나게 다른 ‘튀는’ 아니었지만 ‘순종’으로 부모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오늘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사람의 사랑도 받는다는 것, ▶둘째, 어려서부터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돼야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셋째, 부모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람의 사랑도 받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아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예수님께서 사셨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게 기도해서 복 받아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오직 “나를 따라라!”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발 벗고 예수님을 따라나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듬뿍 받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62 낮에 출몰하는 귀신
861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860 문제는 믿음입니다!
859 기쁨을 주는 기쁨
858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7 반전(反轉)의 때
856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5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4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3 양을 찾아서
852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1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0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49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8 기름 값
847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6 두 아들과 아버지
845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4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3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