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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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0:38-42 
설교일 2006-09-1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서 10:38-42)


■ 들어가는 말씀

사람이, 겉모습은 다 비슷비슷해도, 생각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고,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입니다.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은 열 가지를 가르쳐도 하나도 잘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를 배우면 거기서 ‘원리’를 찾아냅니다. 그 ‘원리’를 가지고 다른 것에도 적용을 하니까, 열 가지, 아니 그 이상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이것을 가리켜서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하셨습니다. 한 가지의 원리를 가지고 만사를 꿰뚫어 본다는 말이지요. 이게 얼마나 경제적인 일입니까? 그래서 옛날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런 ‘원리’를 찾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탈레스 같은 이는 세상의 원리가 ‘물’이라고 생각했고, 피타고라스 같은 이는 ‘수’(數)라고 생각했고, 다른 이들도 ‘불’ ‘공기’ 등등, 각기 나름대로 세상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했습니다.

한 가지를 알면 다른 것도 자연스럽게 따라서 알게 되는 것을 요즘 말로는 ‘키워드’ 또는 ‘키포인트’라고 합니다. 공부를 할 때도 ‘키포인트’를 빨리 파악하는 사람이 좋은 성적을 냅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키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하면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싸움 잘하는 사람들 말을 들어봐도 상대방의 ‘급소’를 알고 공격을 해야 이긴다는 겁니다. 소나 돼지 등 짐승을 잡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것은 더 분명해집니다. 소를 잡을 때 여기저기 마구 치고 건드리면 어떻게 됩니까? 소가 있는 대로 화가 나서 날뛰겠지요. 그러면 소를 잡기는커녕 소에게 잡히고 말 겁니다. 한 방에 급소를 쳐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변죽만 요란하게 뭔가 열심히 믿는 것 같으면서도, 열매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포인트를 못 잡아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포인트를 잡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혀 요란하지 않아요. 표시도 잘 안 나요. 그런데도 그 사람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폴폴 풍겨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의 포인트,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오늘은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그리스도교의 키포인트

오늘 신약성경 본문의 내용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라고 하는 처녀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떴다, 하면 손님들이 많을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마르다는 손님 접대한다고 부엌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다가 보니까 자기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옆에 착 붙어 앉아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는 거예요. 마르다가 화가 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한 마디 했습니다. “선생님, 마리아 좀 보세요. 철딱서니 없이 선생님 옆에만 붙어 있는데, 나가서 일 좀 도우라고 하세요.”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참 의외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구나.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보다는 마리아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도 역시 남자라, 젊고 예쁜 여자를 더 좋아하셨다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밥 하고, 살림하고, 접대하는 일 같은 것들은 다 접어두고 말씀만 들으라고 하신다고 ‘오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핵심은 이런 겁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는 ‘말씀’이 주된 것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것들을 다 때려치우고 말씀 듣기에만 힘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별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옳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번에 하신 말씀 역시 그리스도교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키워드, 곧 키포인트는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무엇인가,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육신이 되신 말씀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지고 창조 작업을 하셨는가 하면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 1장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 말씀’ 곧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말은 세상의 원리는 ‘말씀’이라는 것이고, 이 말씀에 육신의 옷을 입혀서 세상으로 보내셨는데,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찬 예식을 하지요. 그 때, 무엇이라고 합니까? 빵을 떼면서 “이것은 주님의 몸입니다” 합니다.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것은 주님의 피입니다”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살과 피를 우리가 먹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말씀’을 우리 몸속에 흡수시킨다는 뜻입니다. ‘말씀’ 하면 우리는 귀로만 듣는 걸로 오해하기 쉬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우리가 입으로 먹고 마셔서 우리 몸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만찬이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뜯어먹고, 마시는 것이지요.

2. 기록된 말씀

이것은 말 그대로 성경말씀입니다. 신구약 66권을 가리켜서 간략하게 ‘말씀’이라고 하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어록이기도 하지만, 성경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된 말씀인 예수님에 대한 증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제 도량동에 있는 행복이넘치는교회 설립 공인식이 있었습니다. 행사 순서지에 기록되어 있는 한 구절을 보고 저는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지만,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당신에게 해답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논할 때는 성경을 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 신경 쓸 것 없어요. 성경이 답입니다. 그러니 성경 안 읽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다 사쿠라고 나이롱이에요. 혼자 성경 읽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나는 가짜 예수쟁이다’ 하고 하루에 천 번 이상 외면서 의자라도 들고 벌을 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3. 선포되는 말씀

이것은 주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 대신에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말씀입니다. 옛날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백성들에게 전했던 말씀이 여기에 해당되고, 요즘 목사들이 하는 설교도 이겁니다.

그런데 이건 참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 설교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헛소리도 많습니다. 요즘 기독교방송이나 인터넷 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들을 들어보면 참 기가 막힌 헛소리들도 많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판단하느냐’ 하고 반문하실 수도 있지만, 선포되는 말씀은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예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말들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떠벌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무조건 ‘아멘’ 하라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냉철하게 판단해서 ‘옳다’는 감동이 있을 때만 ‘아멘’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판단 기준이 되는 ‘성경’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성경 읽고 기도해야 올바른 판단력이 생깁니다. 저게 거짓 예언인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지 분별하는 영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또한 이런 이유에서 여러분은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목사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목사가 잘 먹고 잘 살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게 아니에요. 성경 말씀대로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물은 가려 먹으면서, 음식은 유기농산물을 찾으면서, 왜 말씀 듣는 것에는 그렇게 둔한지 모르겠습니다.

4. 드러나지 않는 말씀

여러분, 요즘 ‘초음파’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사람의 귀는 1초에 20에서 2만 정도의 진동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리’지요. 그런데 음파가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보다 적은 것도 있고, 2만보다 큰 것들도 있습니다. 이걸 가리켜서 ‘초음파’라고 한다고 해요. 1초에 수십억의 진동을 하는 초음파도 있습니다. 박쥐는 5만까지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 귀로 듣는 게 소리의 전부가 아니지요. 이 초음파를 이용해서 뱃속에 있는 아기도 보고, 강철에 구멍도 뚫고 그러지 않습니까? 참 신기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아마도 초음파 중의 초음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걸 들어야 합니다. 육신의 귀로는 안 되고, 영의 귀를 열어야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묵상을 하는 겁니다. 묵상이 없는 사람도 역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 맺는 말씀

요즘 농담 삼아 흔히 하는 말이 있지요. “밥은 먹고 다니느냐?”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입니다. “말씀은 먹고 다니느냐?” 육신이 되신 말씀을 먹지 않으면, 기록된 말씀을 읽지 않으면, 선포되는 말씀을 잘 분별해서 듣지 않으면, 그리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무늬만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메말라 갑니다. 말이 거칠어집니다. 행동이 포학해집니다. 삶이 황폐해집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으로 가는 사람처럼, 신앙이 시들시들 골다가 결국에는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시편 19편 7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으로 오늘의 결론을 삼겠습니다.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줍니다.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줍니다.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 결 같이 바릅니다. 주님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그 교훈으로 경고를 받고, 그것을 지키면, 푸짐한 상을 받을 것입니다. 아멘.
861 문제는 믿음입니다!
860 기쁨을 주는 기쁨
859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8 반전(反轉)의 때
857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6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5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4 양을 찾아서
853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2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1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50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9 기름 값
848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7 두 아들과 아버지
846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5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4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843 힘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842 그래도 내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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