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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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6-10-08 16: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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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43-51 
설교일 2006-10-0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다음 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떠나려고 하셨다. 그 때에 빌립을 만나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빌립은 벳새다 출신으로,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고향 사람이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말하였다.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두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나다나엘이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나다나엘이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1:43-51)


■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아주 상반되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나를 따르라!” 하셨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평안히 가라!” 하셨습니다. “평안히 가라!” 하는 말씀도 좋은 뜻으로 하신 말씀이기는 하지만, 내용은 상당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삼으실 사람에게는 “나를 따르라!” 하셨고, 제자가 되기에는 뭔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평안히 가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신 사람들 중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 발탁시험에 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빌립이 자기 친구를 예수님의 제자로 천거하기 위해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이야.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분을 만났거든. 그런데 그분이 모세가 말한 그분인 것 같아. 예언자들의 말에 비추어보아도 그분은 틀림없이 메시아야.” 그러자 친구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웃기는 소리 말아. 나사렛에서 무슨 인물이 난다고….”

이런 것을 보면 나다나엘은 시류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확신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신중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되어 있는데, 나사렛 출신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나사렛에서 보내셨지만, 태어나신 곳이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이지요. 그래서 빌립은 나다나엘의 심정을 이해하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직접 한 번 만나봐.”

이래서 빌립은 예수님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인물은 인물을 알아보는 법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시고 대뜸 말씀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야.” 나다나엘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아니,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다 아는 수가 있지.” 사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가지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은 그 자리에서 제자 되기를 청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한 말씀을 더 하셨습니다. “뭘 그까짓 것을 가지고 놀라? 앞으로는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야.”

예수님도, 나다나엘도, 서로 상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탁월한 선택을 했고, 그 결과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 되었습니다. 나다나엘과 예수님은 훌륭한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전자회사 광고에서 그랬지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러시아 속담에 “남자가 바닷가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한다!”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혜로운 판단” 곧 “지혜롭게 판단하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판단의 근거로 삼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소문 듣고 판단하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주식 투자를 하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제일 위의 그룹이 이른바 ‘보이지 않는 큰 손’입니다. 국가의 정책이나 세계 경제의 흐름을 조절하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증권시장이 존재하는 한 돈을 벌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이른바 기관투자자들인데, 주가를 어느 정도 ‘조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손해는 보지 않습니다. 마지막 그룹이 이른바 ‘개미군단’이라고 하는 일반 투자자들인데, 이 사람들은 대부분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 속도와 질에 있어서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 ‘소문’이나 ‘주먹구구’를 따라 투자를 하다가 손해를 보는 겁니다. 소문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소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소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소문이 생기도록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대중들은 대부분 소문에 따라 춤을 춥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씹기’가 국민스포츠랍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만, 그렇게 ‘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다 소문에 따라, 시류에 따라,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비판’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만, ‘씹기’는 소문에 근거한 것입니다.

나다나엘 보세요. 이 사람은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될 만한 재목입니다. 친구 빌립이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니까, 그 출신이 어디냐, 어떤 사람이냐,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빌립이 설명해 주니까, 스스로 판단하기를, 결론은 ‘아니다!’였습니다. 빌립이 다시 보충설명을 했겠지요.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 됐을 수 있으니 네가 한 번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라,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기.

이처럼 나다나엘은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참 훌륭한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도마도 그랬지요. 다른 제자들은 다 봤다는데, 자기만 못 봤으니 의심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요한복음서 20:25). 예수님도 그런 도마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100퍼센트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100퍼센트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수집해야 하는데, 그건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쓴 설교 원고를 보십시오.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입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다!” 하는 명제는 이 A4 용지 안에서만 ‘참’인 명제입니다. 종이를 벗어나는 순간, 그건 거짓말이에요. 학생들이 수학 공부할 때, 벤다이어그램을 그리지요. 사각형을 하나 그리고, 그 안에 원을 하나 그립니다. 원 안에 ‘A’라고 써 놓고는 A의 여집합이 뭐냐, 이렇게 하고는 원 바깥에다가 사선을 죽 긋습니다. 사선 친 것이 집합 A의 여집합이고 배우지 않습니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이 그겁니다. “사선을 친 부분이 집합 A의 여집합이다!” 하는 정의는 어디에서나 진리인 것이 아니라, 원 바깥에 그려진 사각형 안에서만 진리입니다.

우리가 자꾸 오해하지요. 내가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했다, 그러니 내 말이 옳다, 이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내 생각이 틀릴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게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내 생각의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만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각의 범위를 좀 넓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 이성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영감’(靈感)이라고 불러 보겠습니다.

3. 영감(靈感)의 도움으로 판단하기.

요즘은 택시들이 대부분 무전 연락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일이 별로 없습니다만, 예전에는 어떤 데는 택시들이 늘어서 있고, 어떤 데는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일이 종종 있었지요. 여기 큰 빌딩이 있다고 합시다. 빌딩 앞쪽에는 사람들이 택시를 잡으려고 아우성입니다. ‘따불’ ‘따따불’을 외치며 우왕좌왕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 빌딩 뒤쪽에는 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느라고 줄을 서 있습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난리를 치지만, 옥상에 올라가서 양쪽을 보면 한눈에 상황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또 요즘 GPS나 Navigation 장비가 잘 팔린다고 하지요. 이거 다 위성에서 도로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운전자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지요. 땅에 있으면 건물 건너, 산 너머 있는 것을 볼 수 없지만, 하늘에 떠 있는 위성은 그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어느 구간은 번잡하니 다른 길로 가라고 방송도 합니다.

바로 이겁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똑똑해도, 그가 얻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정보를 가지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제한된 공간 안에서는 맞다, 틀리다, 판단할 수 있겠지만, 범위를 조금만 벗어나면 엉터리 판단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지요. “네가 판단은 잘 했다만, 그게 다는 아니야. 너는 앞으로 더 큰일을 보게 될 거야.” 도마에게도 그러셨지요.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요한복음서 20:27). 일단은 도마의 심정을 이해해주신 겁니다. 그런 다음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복음서 20:29). 여기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신 것은 ‘묻지 마 판단’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관계를 따져서 판단하는 그 이상의 판단법이 있다는 말입니다.

■ 맺는 말씀

베드로가 배를 몰고 밤새 고기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베드로는 수십 년간 고기를 잡아온 베테랑 어부였습니다. 자기 지식을 가지고 생업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지식의 한계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다른 곳에는 “배 오른쪽에 그물을 내려라” 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에 그물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판단을 잘못 내리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첫째, 소문을 듣고 판단을 내리지 말자. ▶둘째, 사실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자.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므로 ▶셋째,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을 결정적인 판단의 근거로 삼자, 이겁니다.

늘 깨어서 기도함으로써, 성령을 향하여 안테나의 방향을 맞추고, 즉시, 즉시, 그 때, 그 때, 성령을 통하여 내리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감도 높게 받아들여서, 주님의 나라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제가 되고,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61 문제는 믿음입니다!
860 기쁨을 주는 기쁨
859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8 반전(反轉)의 때
857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6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5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4 양을 찾아서
853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2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1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50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9 기름 값
848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7 두 아들과 아버지
846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5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4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843 힘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842 그래도 내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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