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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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6-10-15 14: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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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7:14-18 
설교일 2006-10-15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명절이 중간에 접어들었을 즈음에,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셨다. 유대 사람들이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학식을 갖추었을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다.”

(요한복음서 1:14-18)


■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유대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학식을 갖추었을까?” 여기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하는 말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가방끈이 짧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놀랄 만큼 ‘학식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학식은 하늘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요한복음서 7:16-17).

지난주일, 우리는 지혜로운 판단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그 질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땅에서 보는 것과 하늘에서 보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입니다. 당연히 학식이나 지식도, 하늘에서 얻는 것은 땅에서 얻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과학이 발달했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지만, 그 흔한 감기의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이른바 ‘놀토’가 되면 병원들이 상당히 바쁘답니다. 특히 여학생들이 산부인과를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대부분 생리통 때문에 간답니다. 의사선생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이건 대책이 없는 병이랍니다. 원인을 알아야 치료에 대한 처방이 나오는데, 원인을 모르니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심한 경우에 진통제를 처방하기도 하고, 때로는 말로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거예요. ‘병원에 가보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네!’ 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이지요. 사람이 뭐든지 혼자 겪으면 불안하고 두렵지만, 남들 하는 것 나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세상에서 얻는 지식이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학교를 나오면 유식해지는 줄 아는데, 그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자기가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면 할수록 모르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문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연구를 통해서 뭔가를 알아내는 것보다,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에서 얻는 학식의 한계입니다. 아까 생리통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뾰족한 처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리통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은, 전문가의 진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전문의 선생님은 원인도 모르고 처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전문의가 전문의인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얻는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학식, 곧 ‘하늘에서 온 학식’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방끈 짧은 예수님을 보고 경탄을 하는 겁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마귀까지도 예수님만 만나면 혀를 내두릅니다. 저거,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마귀를 우습게 알지만, 이건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레벨에서 노는 것들이에요. 그 정도 되니까 예수님을 알아보는 겁니다.

2. 사람을 통해 연마한 학식.

예수님은 분명히 하늘에서 온 학식을 가지고 계셨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면서 뭔가 일을 하려면 사람들과 말이 통해야 하는데, 그것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몇 주 전에 말씀드린 내용입니다만,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토론의 달인’이었습니다. 정식으로 세상에 나와서 사역을 하시면서도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와 토론을 하셨습니다. 가르치실 때도 대화의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세요. 언제나 먼저 질문을 하거나 명제를 던지시고, 상대가 대답하면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 가시지요. “너희가 광야에 나가서 무엇을 보았느냐?”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대개 이런 식입니다.

“쇠는 부딪치지 않으면 예리해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학식을 넓히려면 자꾸 사람들과 마주쳐야 합니다. 그래야 유식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성경공부 할 때, 제가 교안을 준비해서 강의만 하는 방법으로 안 하지 않습니까? 단편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집어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학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대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친구의 전공에 대한 말이 나와서 물었습니다. “석사과정이면 주로 뭐 하는 거야?” “응, 나? 기능성 고분자 합성 실험실에서 공부해.” 기능성 고분자… 뭐라고 하는 말에서 머리가 띵해질 것 아닙니까? “그게 뭐 하는 건데?” “어, 그거? 쉽게 말해서 ‘고무 다라이’ 만드는 것 배우는 거야.”

우리는 대개 남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대충 짐작만 할 뿐이지요. 파고 들어갈수록 자기 분야도 자꾸 가물가물해지는데, 남의 분야를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금 전에 ‘고무 다라이’ 만드는 이야기 했습니다만, 그게 고무 다라이뿐만 아니라, 필름이나 모니터 껍데기 등, 거기서 나오는 제품도 무궁무진할뿐더러, 어떻게 해서 고무 다라이가 나오게 되느냐, 여기에 대해 공부할 게 엄청나게 많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뭘 아는 체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라리 자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질문을 하는 사람 보고는 무식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체 하다가 망신당하는 게 진짜 무식한 사람이지요. 상대방이 자기 분야에 대해서 뭘 아는 척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무식하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저 사람은 무식한 사람!” 하고 그냥 마음속에 콱 박아두지요.

3. 자연에서 확인한 학식.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학식을 얻었고,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그 학식을 연마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파악하는 데도 ‘명수’였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을 나는 새를 보라!” “곡식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라!” 등등, 예수님은 가르침의 소재를 주로 자연에서 찾으셨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나 사람 사는 이치가 다 같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흔히 자연을 다스리고 ‘관리’한다고 하는데, 이거 아주 오만한 말입니다. 자연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자연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학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꾸 자연으로부터 담을 쌓고 살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흙을 밟을 기회를 늘려야 합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산으로 가는 것도 좋습니다.

■ 맺는 말씀

가방끈 짧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학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신 것은, 그분이 하늘에서 학식을 얻었기 때문이고,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그 학식을 연마하셨기 때문이고, 자연의 이치에서 그 학식을 확인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은 학교 공부는 안 하셨지만, ‘몸’으로 학식을 쌓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생에서 두 번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한 번은 젊어서 한 사람을 뜨겁게 사랑할 때이고, 또 한 번은 늙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랍니다. 자기 온몸에서 전율을 느낄 때,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아니, 그 때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인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온몸으로 사랑과 고뇌의 전율을 느끼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학자가 되기 위해서도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학식이 더 필요합니다. 사람과 부딪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늘의 학식을 얻읍시다. 겸손한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학식을 얻읍시다. 자연과 하나 됨을 통해서 자연의 이치를 몸으로 깨달읍시다. 그 때 여러분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학식’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은총과 땅의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 늘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861 문제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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