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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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01-15 08: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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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고린도후서 9:6-15 
설교일 2007-01-14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요점은 이러합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 한 것과 같습니다. 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씨를 마련하여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두고 기도할 것입니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린도후서 9:6-15)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처음부터 헌금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 몇 안 되는 식구들, 그 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빤한 형편인데, 거기다 대고 ‘올해는 작년보다 헌금을 더 많이 내십시오!’ 하고 말하는 것은 솔직히 입이 잘 안 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의 요점이 그런 것이 아니니까 부담 가지지 말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조롱을 받아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심은 대로 거둔다,’ 이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이지요. 오늘 신약성경 본문말씀인 고린도후서 9장 6절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요점은 이러합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넉넉하게, 넉넉하게!”라고 붙였는데, 이것은, 넉넉하게 심어서 넉넉하게 거두자는 뜻입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쩨쩨하게 심으면 궁상스럽게 거두고, 넉넉하게 심으면 넉넉하게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서 6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넉넉하게 심으면 넉넉하게 거둔다는 것은 확실한 말이긴 한데, 중요한 것은 어디다가 심을 것인가, 어디다가 쌓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정답은 ‘하늘에 쌓아라!’입니다. 그러면 이제 결론까지 다 나왔습니다. ‘넉넉하게 심어서 넉넉하게 거두되, 안전한 곳인 하늘나라에 심자!’ 그거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이 누가복음서 12장 33절에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하늘 창고에 쌓으라는 말이 헌금하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 말씀에서 드러나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가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재물을 쌓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말하면 첫째는 헌금이요, 둘째는 자선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1. 넉넉하게 거두려면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헌금을 하든, 자선을 베풀든, 벌벌 떨면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요즘 속말로, 쏘려고 마음먹었으면 확실히 쏘라는 것이지요. 지금 여유가 있으면 지금 확실히 쏘고, 아직 그럴 여유가 없다면 확실히 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하거나 기쁜 마음으로 이웃에게 베풀려고 해도 가진 것이 없으면 못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 12월 11일에 저는 부산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낮 간지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때 저도 배운 바가 있기 때문에 소개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부산에 사는 어떤 집사님 부부가 목사님 몇 분을 초청을 했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직접 아는 분들도 아니고, 한 다리 건너서 알게 된 분들인데, 십 수 년 전부터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불러서 대접을 합니다. 우리 교단 집사님들도 아니네요. 통합측 교회에 다니는 분들인데, 이번에도 자동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서 극진하게 대접을 해주셔서 팔자에 없는 호강을 했습니다. ‘목사님들에게 아무거나 대접할 수 없다’며 차를 타고 동해 쪽으로 한 시간이나 가서 오리지널 자연산 회만 취급한다는 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기는 했습니다만, 먹기 전에, 이걸 과연 먹어야 옳은가, 하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회 한 접시에 몇 십만 원짜린데, 아무리 대접을 받는 거라지만,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쩝니까? 어차피 따라간 것, 거기서 튈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저녁 먹을 때는 남편 집사님만 갔는데, 밥을 먹으면서 이 양반이 하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복 받으려고 하나님께 뇌물 쓰는 것은 아닌데, 자기 나가는 교회 목사님은 물론이고 다른 목사님이라도, 목사님들을 대접하는 것이 즐겁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늘 넉넉하게 채워주시는데, 그 이상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지요. 제가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목사를 대접하면 부자 된다!’가 아니라, ‘부자가 되고 싶으면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라면 한 그릇이면 언제나 만족합니다만, 그분들 부자로 사는 것 방해하고 싶지가 않아서 즐겁게 먹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아무데나 펑펑 돈을 쓰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낄 때는 아껴야지요. 그러나 써야 할 때라면, 넉넉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넉넉해야 살림도 넉넉해지지 않을까, 그런 얘기지요. 그분들의 신앙고백이 그겁니다 ‘넉넉하게 대접하니까 넉넉하게 주시더라.’ 다른 분들은 모르지만, 적어도 그분들에게는 그게 입증이 된 셈입니다.

■ 2. 넉넉하게 거두려면 하나님께 넉넉하게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잘 아시는 말씀이겠습니다만, 어차피 헌금 이야기니까, 한 번 더 읽겠습니다. 구약성경 말라기 3장 10절입니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여기서 ‘온전한 십일조’라는 말씀에 밑줄을 긋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십일조는 대충 드리고, 뒤에 있는 말만 기억하지요.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줄 것이다. 그 앞에 8절 말씀을 보면 살벌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 되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것을 훔치고서도 '우리가 주님의 무엇을 훔쳤습니까?' 하고 되묻는구나. 십일조와 헌물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 십일조 떼어먹는 사람을 가리켜서 ‘도둑놈’이라는 거예요. 참 무섭습니다. 사람이 그러면 모르겠는데, 하나님께서 도둑놈 취급을 하시겠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도 형편이 어려워 십일조를 제대로 못 드리는 가정이 있습니다. 재정 관리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 역시 지난 해 동안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도 부끄러워하거나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리라, 그 동안 못 드린 십일조도 언젠가는 다 드리리라’ 이런 마음만 변치 않으면 됩니다. 우리 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이신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시겠습니까?

말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말라기 3장 8절에 보니까 십일조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에 더하여, 때에 따라 다른 것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 헌금 명목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십일조, 월정헌금, 감사헌금, 절기헌금, 주일헌금, 선교헌금…. 참 많습니다. 이 중에서 주일헌금에 대하여 한 마디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요즘 경제사정이 어려워서 그런지 교회로 뭔가를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으니까 주기는 하는데, 어떤 때는 참 안타깝습니다. 집에 현금이 없을 때가 있잖아요. 구석구석 뒤져봐도 천 원짜리 한 장밖에 없거나, 동전만 몇 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을 때, 대부분 감사하다며 받아가기는 합니다만, 그럴 때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피차 좀 개운치 못합니다. 10년 전에는 거지에게 천 원 주면 괜찮았어요. 그렇지만 요즘은 좀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일헌금을 하면서 아직까지 천 원짜리 한 장 달랑 바치는 교인들이 우리나라에 많은 것 같습니다. 거지에게 주기도 미안한 돈을, 매주일 하나님께 바치고 있다는 게 좀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용돈을 타 쓰는 학생들이라면 아직 괜찮습니다. 그러나 다 큰 어른이 천 원짜리 한 장을 드리는 건 좀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드려야 하는가, 답은 없습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드리는 주일헌금은 평소 제가 밥 한 끼 사먹을 수 있는 액수보다 조금 더 드립니다. 예수님께 밥 한 끼 대접해 드린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그 집사님들처럼 몇 십만 원짜리를 사 드리지는 못하지만, ‘예수님, 이게 제가 평소에 드는 밥값입니다. 죄송하지만 이 정도만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지는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 3. 넉넉하게 거두기 위하여 넉넉하게 선을 행합시다.

요즘 거지들은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옛날 거지들은 장터 같은 데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적선하십시오. 적선하십시오.’ 적선(積善)이라는 말이 선을 쌓는다는 말 아닙니까? 하늘 창고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똑 같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웃에게 베푸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다가 쌓아두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두 가지인데, 하나님께 직접 드리는 헌금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심도 참 무한하시지만, 매섭기도 어지간히 매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냥 대충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대충, 정성을 대충’이 라니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온전히 사랑하라는 겁니다. 어설프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냥 적당, 적당히 하면 안 되고 ‘네 몸뚱이와 똑 같이’ 100 퍼센트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식이에요. 때때로 기뻐하라, 가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 기도를 많이 하라, 가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감사한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곧 범사에 감사하라, 입니다. 참 무섭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요구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실 때도 팍팍, 넘치게 주시는 분입니다.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겠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웃에게 베푸는 일, 곧 적선하는 일에 대해서, 오늘은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말씀 드리기로 하고, 어쨌든 넉넉하게, 충분히 베풀면 하나님께서는 수백 배, 수천 배, 아니 수만 배,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복을 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산법입니다.

■ 맺는 말씀

이제 오늘 말씀을, 매듭을 지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복 받기 위하여 조건을 달고 드리는 ‘뇌물’이 아닙니다. 혹시 벌 받을까봐 어쩔 수 없이 드리는 ‘보험’도 아닙니다. 그리고 싫든 좋든 무조건 드려야 하는 ‘세금’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자연스럽게 드리는 정성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어차피 다 하나님의 것 아닙니까? 어린 자녀가 엄마 생신 때 선물을 하잖아요? 그 때 그게 자기 돈입니까? 엄마가 주신 것이지요. 그렇지만 엄마는 그걸 기뻐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자. ▶하나님께 넉넉하게 바치자. ▶이웃에게도 넉넉하게 베풀자.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께도 넉넉히 바치고, 이웃에게도 넉넉히 베풉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넉넉하게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넉넉히 주신 그것을 가지고 또 넉넉히 바치고 베풉니다. 이렇게 멋지게 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 반대는 어떻습니까? 넉넉지 못한 마음을 가지니까 하나님께 넉넉히 바치지도 못하고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다시 마음이 졸아듭니다.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니까 살림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드릴 것도 없고, 바칠 것도 없습니다. 계속 악순환입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도 넉넉히, 이웃에게도 넉넉히 드림으로써, 앞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은 항상 풍족하고 넉넉한 축복으로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62 낮에 출몰하는 귀신
861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860 문제는 믿음입니다!
859 기쁨을 주는 기쁨
858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7 반전(反轉)의 때
856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5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4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3 양을 찾아서
852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1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0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49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8 기름 값
847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6 두 아들과 아버지
845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4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3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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