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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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9:23-25 
설교일 2007-02-04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 날이 오면,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이 생겨,
앗시리아 사람은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앗시리아로 갈 것이며,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이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며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 이집트야,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 복을 받아라”
하실 것이다.

(이사야서 19:23-25)


■ 들어가는 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을 ‘복 받는 사람의 삶의 방식’이라고 붙였습니다. 여기서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따로 규정하지 않겠습니다. 영혼의 복이든, 정신적인 복이든, 물질의 복이든, 다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복 받는 사람, 또는 복 받는 나라는, 성경에서 보니까 모두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 또는 나라였습니다.

‘복의 근원’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용히 잘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지요. 고향땅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너로 말미암아 만백성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각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온갖 풍상을 다 겪었지만, 복 받는 사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 나라를 통하여 세상 모든 나라가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나라가 복을 받는 것도, 그 나라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을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예에서는 개인이 복 받는 삶의 스타일(방식)이 나옵니다. 이사야서의 예에서는 나라가 복 받는 삶의 스타일(방식)이 나옵니다. 복 받는 개인의 삶의 스타일을 배우면 개인이 복을 받습니다. 복 받는 나라의 삶의 스타일(방식)을 배우면 나라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복 받는 개인 또는 나라의 삶의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그릇을 비우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복을 담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오늘은 그릇을 비우는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1. 비움의 아쉬움

누가복음서 11장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귀신 이야기를 하신 게 있습니다.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 붙어 있다가 쫓겨났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와서 아무리 돌아다녀보아도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가보니까 집이 말끔히 치워져 있습니다. 자기가 붙어 있던 그 사람이 정신이 제대로 돌아온 것이지요. 그래서 이 귀신이 대책을 세웁니다.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집, 그러니까 그 사람을 점령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시니까, 무리 가운데서 듣고 있던 한 여자가 나와서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누가복음서 11:27). ‘어쩌면 저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저런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이지요.

우리가 오늘 복 받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복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그릇을 비우는 일입니다. 그릇에 지저분한 것을 잔뜩 담고 있는데, 어떻게 거기다가 복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전에 하나님의 방식을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하나님의 방식은 가능한 대로 기뻐해라, 가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자주 기도해라, 가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라, 가 아니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대충대충, 적당히 하는 것은 싫어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서 5:48).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도 우리의 그릇을 ‘완전히’ 비워야 합니다. 더러운 것이 담겨 있는 그릇은 50%를 비워내나, 90%를 비워내나 그건 똑 같습니다. 완전히 비워내고 설거지를 하지 않는 한, 더러운 그릇이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비워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릇 비우기를 참 두려워합니다. 그것 비워내면 큰일 날 줄 알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워내야 합니다. 아까 누가복음서 말씀에서 본 것처럼, 귀신 한 놈 몰아내면 일단은 깨끗해지지요.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지요. 귀신을 몰아내면 그 귀신이 ‘아, 예,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하고 물러납니까? 그렇다면 그건 귀신도 아닙니다. 귀신이란 놈은 하나가 쫓겨나면 일곱 귀신을 불러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과거의 잘못된 것을 들추어내서 청소하기를 두려워하는 겁니다.

■ 2. 그릇을 비운 나라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과거사 문제로 진통이 있지요. 친일 청산하자, 독재 청산하자, 하는데 말들이 많습니다. 과거사 청산 문제가 한 건, 한 건 발표될 때마다 일곱 귀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난리를 치잖아요. 귀신 한 놈 집안에 둔 채 살아가면, 우선은 조용하고 좋지요.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면 크게 시끄러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일곱 귀신이 몰려와 난리를 치더라도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복을 담을 수 있습니다. ‘고름이 살 안 된다’는 속담도 있듯이, 아프더라도 고름은 짜내야 새살이 돋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복지로 가려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광야에서 40년이나 썩게 하셧습니다.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까지, 걸어서 가더라도 불과 몇 달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이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한 사람도 살아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릇을 완전히 비워낸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복 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지금은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지요. 그게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왕정을 몰아내고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데 10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사람도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귀신 하나 몰아내고, 그 다음 더 흉악한 일곱 귀신까지 몰아내는 데 어마어마한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게 다 그릇을 비워내는 과정이지요. 이게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 3. 그릇을 비운 사람들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릇을 완전히 비워야 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고집, 나의 과거, 나의 죄…, 처음에 아프더라도 이 모든 것들을 완전히 비워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을 외톨이로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고향에 살았더라면 큰 풍파 없이 잘 살았을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새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전의 모든 줄을 끊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신 겁니다.

요셉도 그렇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그냥 살았으면 잘 먹고 잘 살았을 거예요. 부자 아버지 밑에서 아쉬울 것 없이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거기에 그대로 살도록 붙여두시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새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끌어냈습니다. 온갖 고초를 다 겪게 하셨지요. ‘맨 바닥에 헤딩’이라 하듯이, 완전히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위대한 일을 해내는 위대한 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 보면 부모로부터 재산 물려받는 것도, 그렇게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썩 좋은 것도 아닙니다. 새 그릇에 새로운 복을 담기에 그것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나는 부모 복도 이렇게 없을까’ 상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그릇에다가 새로운 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겁니다.

■ 맺는 말씀

복 받는 사람, 또는 복 받는 나라의 삶의 스타일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릇을 비워야 하겠습니다. 지금 담고 있는 것들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더 좋은 것을 담기 위해서는 그릇에 남아 있던 것들은 미련 없이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깨끗이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마귀 하나 몰아내고 일곱 마귀 들이닥치면 어쩌나,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마귀 몰아내는 것까지 다 해주실 텐데 무엇이 두려울 게 있습니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프기만 할까,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 위하여 그릇을 비우시는 과정입니다.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의 ‘실패’도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실패지만,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면 그릇을 비우는 과정입니다. 실패를 ‘그릇 비우기’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새로운 복을 받지만, 실패를 불평하고 낙심하는 사람에게는 실패는 말 그대로 실패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릇을 비우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멋진 복을 부어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철저하게 그릇을 비워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861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60 반전(反轉)의 때
859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8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7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6 양을 찾아서
855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4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3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52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51 기름 값
850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9 두 아들과 아버지
848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7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6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845 힘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844 그래도 내려가야 합니다!
843 “신을 벗어라!”
842 “다 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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