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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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9:23-25 
설교일 2007-02-11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 날이 오면,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이 생겨,
앗시리아 사람은 이집트로 가고
이집트 사람은 앗시리아로 갈 것이며,
이집트 사람이 앗시리아 사람과
함께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이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이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며 이르시기를
“나의 백성 이집트야,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
나의 소유 이스라엘아, 복을 받아라”
하실 것이다.

(이사야서 19:23-25)


■ 들어가는 말씀

지난 주일에 우리는 ‘복 받는 사람의 생활방식’ 가운데에서 첫 번째 주제, 그릇을 비우는 것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그릇을 비우려면 아쉬움도 있겠지만, 새것을 담기 위해서는 묵은 것은 버려야 합니다. 한 귀신을 몰아내면 일곱 귀신이 들어오겠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각오하고 집을 비워낼 때, 새 복을 담을 수 있습니다. 나라든, 개인이든, 복을 받으려면, 먼저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빈 공간에 주님의 복, 하늘의 복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복 받는 사람의 삶의 방식’ 두 번째 주제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큰 복을 담자’는 것입니다. 그릇을 말끔히 비워냈으면 이제는 거기에다가 복이 담겨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큰 복을 담자’입니다. 비워진 그릇에 큰 복을 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1. 큰 그릇을 준비하자.

큰 복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준비한 그릇만큼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예언자 가운데 엘리사라는 이가 있지요. 엘리야의 제자입니다. 이분을 따르는 예언자 수련생들의 아내 가운데 남편을 잃은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남편의 스승인 엘리사에게 자기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 빚쟁이들이 몰려와 빚을 못 갚으면 아들 둘을 데려가겠다고 협박하는, 딱한 사정이었습니다.

이 때 엘리사가 여자에게 말합니다. “나가서 이웃 사람들에게 빈 그릇들을 빌려 오시오”(열왕기하 4:3). 되도록 많이 빌려오도록 지시했습니다. 여자는 문을 잠그고, 딱 한 병이 남은 기름을, 빌려온 그릇들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그릇이 기름으로 차 나갔습니다. 마지막 그릇에 기름을 채우자 기름병에서 더 이상 기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복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복 받을 그릇은 준비해주시지 않습니다. 그릇은 우리가 준비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오지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보면 주인이 달란트를 똑 같이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열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사람의 도량(度量)만큼, 사람이 준비한 그릇만큼만 일을 맡기십니다. 복도 그만큼만 주십니다.

그릇이 큰 신앙인은 가마솥 같은 사람입니다. 그릇이 작은 신앙인은 양은냄비 같은 사람입니다. 그릇이 큰 신앙인은 웬만한 자극이 있어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릇이 작은 신앙인은 조그마한 일에도 일희일비합니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관찰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약이 바짝 오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웬만큼 뭐라고 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신앙인도 그렇습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 어떤 사람을 고르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다가가서 꼬드겨보는데, 꿈쩍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몇 번 해보다가 치우고 갑니다. 그러나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반응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계속 물고 늘어질 겁니다. 재미있잖아요. 악마도 큰 그릇의 신앙인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잘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인은 당연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그릇에는 복도 잘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양은냄비처럼 가벼운 그릇이 아니라, 웬만한 충격과 자극에도 끄떡없는, 가마솥 같은 듬직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 2. 복의 통로를 알자.

듬직한 그릇이 준비되었으면 이제는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가득 담아야 합니다. 요즘은 우리나라 전체가 거의 도시화가 되어서 대부분 수돗물을 사용합니다만, 예전에는 우물을 파서 물을 길러 먹었습니다. 우물을 팔 때 보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물길을 찾는 일입니다. 샘을 판다는 것은 지하수를 퍼 올려 쓰기 위한 것인데, 그러려면 땅속의 물길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데나 판다고 생물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다 복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복은 받고 싶으면서도 엉뚱한 데 가서 복을 구하거나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까 우리가 찬송을 불렀지요.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복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나님을 찾아야지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해야지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복 받기만 바랍니다.

물론 세상에도 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도 복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찾는 복, 세상에 굴러다니는 복은 떡고물에 불과합니다. 그게 복의 본류가 아니에요. 조금 전에 샘 파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샘에서 나오는 물과 같이 마르지 않습니다. 쓰면 계속 나옵니다. 언제나 신선합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얻는 복은 감질납니다. 받아도, 받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복 받는 길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복의 맥입니다. 바둑을 둘 때 보면,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맥을 따라 둡니다. 그러나 초보자는 코앞만 바라보고 두다가 펑펑 깨지지요. 수맥을 아는 사람은 단번에 지하수가 나오는 곳을 파 들어가지만, 무작정 땅을 파는 사람은 헛고생만 하다가 실패하지 않습니까? 복의 맥을 찾아 구하는 사람은 힘 들이지 않고 복을 가득 받지만, 복의 길을 모르는 사람은 엉뚱한 곳만 헤매다가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수님과 베드로 이야기에서 보듯이, 베드로가 밤새도록 배를 타고 다녔어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그물을 내리니까 단번에 배를 채우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서 모이라고 해서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의 길을 알려주십니다.

■ 3. 새는 곳을 막자.

큰 그릇을 준비해서, 하늘의 복을 가득 담으려면, 그 다음, 새는 곳을 막아야 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을 합니다만, 아무리 좋은 그릇이 준비되어 있으면 무엇 합니까? 아무리 복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면 무엇 합니까? 새는 곳이 있으면 완전 ‘도로 아미타불’입니다. 복의 누수를 막아야 합니다.

시편 127편 1절에서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헛일입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기를 쓰고 지켜도 허사입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더라도, 먹고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더라도 엉뚱한 데로 다 새 나가버리면 그 수고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지켜주시면 우리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복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복음’(福音)입니까? 그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또 말라기서 3장 11절에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 땅의 소산물을 해로운 벌레가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포도밭의 열매가 채 익기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땅이 이처럼 비옥하여지므로, 모든 민족이 너희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기껏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벌레가 다 먹어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피땀 흘려 포도원을 가꾸었는데,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다 떨어져버린다면 얼마나 절망스럽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걸 막아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기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뭘 자꾸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면 우리가 잠을 자도 보호를 받지만,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면 우리가 밤잠 안자고 기를 써도 허사입니다.

이건 농사짓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을 때 기분이 좋지요. 일한 보람도 느낍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이 자꾸 생겨서 몇 십만 원씩, 몇 백만 원씩, 안 써도 될 돈을 쓰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한 달에 월급을 수천만 원씩 받는다고 해도 늘 모자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백만 원 받는 사람도 알뜰하게 삽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독에 구멍이 있으면 아무리 물을 쏟아 부어도 남아 있을 새가 없습니다. 복을 얼마나 많이 받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빈틈을 막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 맺는 말씀

오늘, 복 받는 사람의 생활방식, 두 번째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복을 담자는 것이지요. 큰 복을 담기 위해서는 첫째,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신앙의 도량을 넓히자는 말입니다. 둘째는 복의 길을 알자는 것이었습니다. 복 창고의 열쇠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우리가 준비한 그릇에 가득 차게 복을 주십니다. 다른 데 가서 아무리 헤매도 복은 없습니다.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절대 복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릇의 입구를 주님을 향하여, 위를 향하여 방향을 잡아놓아야 합니다. 셋째는 빈틈을 막자는 것이었습니다. 쓸데없는 일이 뻥뻥 터져서 복 다 날아가게 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편안히 잠을 자고 있어도 복이 들어옵니다.

아무쪼록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모두 큰 그릇을 준비해서, 그릇의 입구를 주님 쪽으로 향하게 하고, 그릇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간구해서, 주님 주시는 복을 가득가득 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61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60 반전(反轉)의 때
859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8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7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6 양을 찾아서
855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4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3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52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51 기름 값
850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9 두 아들과 아버지
848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7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6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845 힘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844 그래도 내려가야 합니다!
843 “신을 벗어라!”
842 “다 들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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