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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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06-10 14: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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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계시록 1:9-11 
설교일 2007-06-1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요 예수 안에서 환난과 그 나라와 인내에 여러분과 더불어 참여한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언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날에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의 교회로 보내라.”

■ 들어가는 말씀

병원에서 아기를 낳아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공통점이 있습니다. 산통이 시작되는 신호가 오면 병원에 가게 되는데, 병원에 가서 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을 갈아입고 나면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고통이 좀 심하다 싶어 간호사를 부르면 간호사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아줌마, 아직 멀었어요.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 그 때 이야기하세요!” 아파서 죽을 지경인데, 아직 멀었다는 거예요.

요즘은 유도분만이라고 합니까, 뭐라고 합니까? 아기가 태어나는 때를 사람이 조절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긴급하고 위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때를 따르는 것이 순리지요. 전도서 3장 1절에 보면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를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산모의 눈에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때, 그 때가 아기를 낳을 ‘때’입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셨습니까?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꿈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또한 때때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시기도 하십니다. 또는 성경말씀을 읽는 중에, 기도를 하는 중에, 찬송을 부르는 중에 뜨거운 감동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데도 때가 있습니다. 때가 이르렀을 때는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셔도 우리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는 천둥소리처럼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귀가 번쩍 뜨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피가 끓는 청소년들이라면 ‘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귀가 번쩍 뜨입니다. 한 사흘 쯤 굶은 사람에게는 먹을 것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입니다. 취업을 하지 못해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자리’ 이야기에 귀가 활짝 열립니다. 우리 귀가 언제 번쩍 뜨일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사람이 귀를 열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까지는 침묵하십니다. 말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요 우이독경(牛耳讀經)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불필요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 방에’ 사람을 움직여서, 계획하신 일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십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이 방법을 쓰셨습니다. ▶둘째는, 말씀하실 때를 찾기 위하여 처절한 고난을 주십니다. 욥에게 말씀하실 때 이 방법을 쓰셨습니다. ▶셋째는 사람이 간절히 기도할 때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사야가 그랬습니다.

먼저,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민족 지도자인 모세는 젊었을 시절, 동족을 위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다가 좌절만 겪고 말았습니다. 이집트의 궁전에서 자랐던 모세는 어른이 된 후, 동족의 편에 서서 동족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과 이집트 사람이 싸우는 데 끼어들었다가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말았지요. 이 때 모세는 아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젊은 혈기로 움직일 때였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런 말씀도 들려주시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이나 푹푹 썩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모세를 부르셨고,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때가 차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모세는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동방의 의인이라는 욥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욥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욥기 1:8).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완벽한 욥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잃었지요. 사랑하는 자식들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아내까지 욥을 비난했습니다.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욥은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도대체 제가 무얼 잘못했기에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 제발 나타나셔서 말씀 좀 해 보십시오.’ 애타게, 애타게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입니다. 욥은 지금 죽겠다고 소리를 치는데도 하나님은 입을 닫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님께서는 욥에게 나타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사야는 조금 다른 경우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이사야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고, 큰 고난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지,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젊은 청년 이사야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젊은 혈기를 앞세워 행동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찾아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사야의 입술을 불로 지져버렸습니다. 인간적인 생각만으로, 혈기만으로 말을 하던 입술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보내도 되겠구나! 내가 이 민족을 위해서 누구를 보낼까?’ 하셨을 때 이사야는 두말 않고 응답합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이사야서 6:8).

■ 지금 내가 곤고한 처지라면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미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아니면 아직 아무런 음성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직 듣지 못했다면 그것은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방금 말씀드린 세 가지 경우에 이르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모세처럼 아직 더 기다려야 할는지 모릅니다. ▶욥처럼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이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사야처럼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이 가운데서 ‘고난’에 대해서 잠시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본문말씀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곡식을 떨지만, 낟알이 바스러지도록 떨지는 않는다. 수레바퀴를 곡식 위에 굴릴 때에도, 말발굽이 그것을 으깨지는 않는다”(이사야서 28:28). 주님께서 우리에게 뭔가 하실 말씀이 있을 때, 우리를 고난에 빠뜨리기도 하시는데, 그것이 우리를 죽이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농부가 곡식을 떨 때 낱알이 바스러질 정도로 떨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도 우리가 영 일어나지 못하도록 바수어버리지는 않으십니다.

곡식의 껍질이 벗겨져서 낱알이 드러날 때까지만 두드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적당한 때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도 주님께서는 사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시련이나 고난을 그냥 ‘괴로움’이라고만 생각하면 괴로움 자체입니다.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아하,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가 보다’ 하면 우리가 받는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오히려 축복할 일입니다.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 오히려 설레는 마음을 가질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알려진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밧모’라는 섬에 갇혀서 살았습니다. 그 때, 거기서 요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들은 음성은 세미한 음성이 아니라, “나팔소리처럼 울리는 큰 음성”(요한계시록 1:10)이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기록한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을 읽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하여 박해 가운데서도 굽히지 않고 순교까지 할 용기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요한을 ‘밧모’ 섬에 가두어두시지 않았다면 이 귀한 책 요한계시록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수많은 서신을 남겼습니다. 이게 이른바 옥중서간인데, 다 주옥같은 글 아닙니까?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저 멀리 남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의 옥중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어디에 가두어 둔다든지, 코너로 몰아 꼼짝 못하게 만드실 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그냥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저 그런 상태입니까? 새로운 것이 없고 무료하기라도 하십니까? 그렇다면 좀 더 기다리십시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40년이나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것입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지금 처절한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그렇다면 기뻐하면서 귀를 더 쫑긋 세우십시오. 아마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하실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답답하고 갑갑해서 미칠 것 같은데, 도무지 대책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이사야처럼 주님 앞에 나가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로 지져주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무슨 메시지를 주실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주님께서 확실한 음성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메시지를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62 낮에 출몰하는 귀신
861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860 문제는 믿음입니다!
859 기쁨을 주는 기쁨
858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7 반전(反轉)의 때
856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5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4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3 양을 찾아서
852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1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0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49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8 기름 값
847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6 두 아들과 아버지
845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4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3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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