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마을지기 2007-07-22 15:55:02
0 5651
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5:11-17 
설교일 2007-07-22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5:11-17〉


■ 들어가는 말씀

괴테가 쓴 시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훌륭한 것은
한 평생 바칠 수 있는 일을 가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것은
인간다운 교양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흉한 것은
다른 사람이 잘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남을 위해 봉사하되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을 향해 사랑을 품고 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훌륭한 것은 한 평생을 바칠 수 있는 일을 가지는 것이다.” 당연히 그 반대도 성립되겠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고독한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평생을 바쳐서 기쁘게 할 일이 있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평과 불만만 가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남을 부러워하게 되지요. 그래서 괴테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세상에서 가장 흉한 사람이라고 한 겁니다.

한평생을 바쳐서 기쁘게 할 만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사람이 건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의 종류는 상관이 없습니다. 대통령도 좋고, 교사도 좋고, 청소부도 좋고, 엔지니어도 좋고, 전업주부도 좋고, 가사도우미도 좋고, 다 좋습니다. 직업이 무엇이냐,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느냐,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직업의식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그 일이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이 되기도 하고, 한 순간도 하기 싫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무슨 직업을 가지든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그 일을 한다면, 그 일은 한평생을 바쳐서 할 만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작은 이발소를 하나 운영한다고 합시다. 그 일을 그냥 밥벌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처럼 따분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남의 머리통만 쳐다봐야 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 신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머리 깎는 일을 한다면,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머리를 깎아주는 그 사람은 ‘내 노동의 대가로 이발 비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내가 그의 머리를 정성들여 깎아줌으로써, 그가 남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면접에서 합격할 수도 있습니다. 선을 봐서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기분 좋게 자기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발사가 매만지는 머리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의 머리입니다. 그가 다루는 가위는, 그냥 쇠붙이로 만든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성령의 도구가 됩니다.

자, 그러면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청지기, 곧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서 15장 11절부터 17절까지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 첫째,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는 주인과 친구입니다.

요한복음서 15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청지기, 하면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종’입니다. 주인 밑에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하고 선언하셨습니다. 종이 아니면 무엇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도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하지 않습니까? 종하고 친구는 신분 자체가 다릅니다. 주인과 종은 상명하복, 명령을 하고 명령을 따르는 관계이지만, 친구와 친구는 서로 의논하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냥 친구일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입니다. 그냥 친구는 서로 의가 상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참아주시는 친구입니다. 삐지지 않는 친구입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서로 경쟁하는 친구가 아니라, 형님 같은 친구요, 부모 같은 친구이기 때문에, 내가 잘할 때는 함께 기뻐해주고, 내가 실수할 때는 그 실수를 대신 떠안아 주고, 내가 슬플 때는 나를 안아주는, 멋진 친구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대해 주시지 않고, 우리를 종으로 생각하신다면, 우리가 잘못하는 일이 있을 때 그냥 두시지 않을 겁니다. 즉시 징계를 하고 벌을 주시겠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가 잘못하는 일이 많지만, 그 때마다 벌을 받나요? 아니지요. 우리가 하는 행동대로 벌을 받았다면, 아마도 우리는 살아남아 있지 못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삼아 주신 덕에, 끝까지 참으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 둘째,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는 놀라운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15장 16절을 같이 봅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가 된 것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니, 네가 좀 와서 일 좀 하지 않을래?’ 해서, 우리가 청지기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를 기억하시지요? 우리나라 국가대표 팀의 히딩크 감독이 정말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원인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요청하는 대로 지원했습니다. 선수가 필요하다고 하면, 원하는 대로 뽑아서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도 그렇습니다. 청지기가 할 일이 ‘열매 맺는 일’인데,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그리고 그 열매를 많이 남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요청하라, 이겁니다. 요청하는 대로 다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겠다, 이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구하는 대로 주겠다, 이런 약속이 성경에 꽤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잘 안 믿어요. 몇 번 기도해보니까 안 되더라, 달라고 했는데도 안 주시더라, 그런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럴 줄 알고 야고보 사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야고보서 4:2-3).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달라고 했는데도 못 얻는 것은 엉뚱한 데 쓰려고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거기에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여태 엉뚱한 것만 구했다, 이 말입니다.

누가복음서 10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약속 그대로 아닙니까? 일꾼이 없으니, 일꾼을 보내 달라고 하라, 이 말입니다. 청하면 보내주시겠다는 것이지요.

이제 생각해 봅시다. 농장이 있습니다. 주인이 참 마음씨 좋은 분이에요. 주인이 일꾼들에게 일렀습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말해라, 다 들어주겠다.” 그런데 이놈의 일꾼이 일하기를 엄청 싫어해요. 자기는 나가서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일꾼 적으니 일꾼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그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아나, 여기 있다, 일꾼 받아라!’ 하시겠습니까? 아니지요. 생각 같아서는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이고 싶겠지만, 참습니다. 우리 주님은 좋은 분이시고, 우리를 친구로 삼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하면서, ‘아니고 주인님,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일꾼이 더 있어야 하겠습니다. 좀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두말 않고 얼른 보내주실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주님께서는 무엇이든 틀림없이 주십니다. 이것은 대단한 특권입니다.

■ 셋째,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는 기쁨이 넘칩니다.

요한복음서 15장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 나라의 청지기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만 덕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실컷 부려먹어서 하나님만 부자 되자,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자 될 일이 없어요. 우리 아니어도 이미 충분이 부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까 보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가 된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인생의 보람을 찾지 못해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이건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녀!’ 하듯, 미지근하게 살던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기쁨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기쁨이 뭐냐, 역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내가 너희 기쁨을 넘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11절의 말씀이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 답이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똑 같은 말씀이 17절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포인트가 두 개 있지요? 너희는 사랑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이고, 그러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줄 수도 있어야 기쁜 겁니다. 축구할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볼을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면 선수가 못 됩니다. 볼을 자기가 혼자 가지고만 있으면 절대 못 이집니다. 볼을 받았으면 다른 선수에게 패스를 하든지, 골대를 향하여 차든지, 어디론가는 얼른 차 주어야 하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식물인간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얼른 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혼자 받을 줄만 알고 줄 줄 모르는 사람은 ‘식물 신앙인’입니다. 열심히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청지기이고, 예수님은 주인이시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삼으셨기 때문에, ‘명령’은 잘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이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요한복음서 15:17).

오늘 저녁에 축구를 하니까(아시아 축구 선수권대회 8강전, 한국―이란) 그런지, 자꾸 축구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만, 어떻게 보면 축구가 인생의 축소판이기도 하지요. 내가 A라는 선수에게 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볼을 반드시 A에게만 주어야 합니까? 그런 것은 아니지요. A에게 도로 패스할 수도 있지만, B에게 패스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많지요. 그러면 B는 C에게, C는 또 D에게…, 이렇게 하다가 기회가 오면 골을 넣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도 그렇습니다. 내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을 부모님에게 다 갚지 못합니다. 그 사랑의 대부분은 자식에게 가게 되지요. 그래서 부모가 자식 때문에 속이 썩어도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겁니다. 자기도 다 그렇게 커왔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왜 알아주지 않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못 삽니다. 음, 내가 주었으니,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지요.

이것이 ‘사랑 계산법’입니다. 사랑이란 돌고 도는 것입니다. 나는 그냥 내가 받은 것을 누군가에게 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것이 기쁘게 사는 비결입니다. 사랑 받는 것을 감사하고, 사랑을 주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 맺는 말씀

저는 오늘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일꾼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친구라는 것,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대접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요청하기만 하면 다 주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힘입어서 열심히 일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주님께서는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인데, 기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되, 받을 사랑을 계산하지 말고 그냥 주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청지기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61 문제는 믿음입니다!
860 기쁨을 주는 기쁨
859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8 반전(反轉)의 때
857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6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5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4 양을 찾아서
853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2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1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50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9 기름 값
848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7 두 아들과 아버지
846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5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4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843 힘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842 그래도 내려가야 합니다!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