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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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10:16-23 
설교일 2007-08-26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그들의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나가서, 그들과 이방 사람 앞에서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관가에 넘겨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또는 무엇을 말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때에 지시를 받을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

〈마태복음서 10:16-23〉


■ 들어가는 말씀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마태복음서 10:22).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걱정도 없이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는 천당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핍박을 받는 것, 이게 기독교입니다.

■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태복음서 5장 10-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욕먹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예전 예언자들도 다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지요.

요즘 기독교가 욕을 많이 얻어먹고 있지요. 그렇다면 지금 상황을 두고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것이 복되다는 것이지, 무턱대고 욕먹는 것을 좋아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주류 기독교가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라도 교인을 더 모으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큰소리를 치기 위해서, 세력을 확장하려다가 곳곳에서 백안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기독교를 일컬어 ‘개독교’라고 부르며 조롱을 해댑니다. 물론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합리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성에 빠져서 맹목적으로 욕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그랬지요. “나는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경멸한다.” 간디뿐만 아니라,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 교회의 수난 시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서 10:16).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이리 떼 가운데로 양을 내보내니 얼마나 걱정스러우셨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10:16).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제자들이 세상으로 나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할 때, 어떤 위험한 일을 겪게 될지 모릅니다. 욕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붙잡혀서 매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는 죽음에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냥 일반적인 교훈이 아닙니다. 세상으로 나가서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때, 미련스럽게 아무데나 들이대지 말고 지혜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7월 19일, 우리나라 기독교인 스물 세 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로 잡힌 이후, 기독교가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겪는데, 왜 그렇게 욕을 하느냐, 이렇게 화를 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의 교훈을 조금만 돌이켜보면, 왜 욕을 먹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미련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예수님께서 이미 2천 년 전에 경고를 하신 겁니다. “뱀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순진해져라.” 그런데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전도하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뱀 같이 슬기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비둘기처럼 순진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싸움닭처럼 아무데나 들이밀면 그게 전도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비둘기를 가리켜서 ‘닭둘기’ 또는 ‘뚱둘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원래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지요. 상대를 공격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을 보고 얼른 도망도 안 갑니다. 사람들도 비둘기를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전도는 이렇게 비둘기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말고, 요란하게 하지도 말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요. 전도는 싸움닭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마태복음서 10:23). “이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고을로 피하여라.” 이게 전도의 지혜입니다. 싫다는 사람 붙잡고 끝까지 엉겨 붙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기만 하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 꾸역꾸역 찾아가서 말썽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이에요. 뱀 같이 슬기롭게 하라고 했는데, 미련 곰탱이처럼 아무데나 들이미니까 힘겨운 일이 생기는 겁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미련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겁니다.

■ 끝까지 견디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박해를 받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만, 미련해서 미움을 받고 욕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정신인데, 지난번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나라이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 받는 나라이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나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 한 나라의 이름이 올라가는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싸워서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귀하고 어떤 사람은 귀하지 않다고 하는 생각, 또는 그런 풍조와는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또한 사람을 위해서, 발전을 위해서, 성장을 위해서 자연을 훼손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과는 끝까지 맞서서 설득해야 합니다.

≪상록수≫라는 노래를 잘 아실 겁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이게 1절이고, 3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아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저는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 언제나 마지막 대목에서 힘을 얻습니다. “우리 나아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 속담에도 그랬지요.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 무슨 일이든 시작해놓고, 끝을 내지 않으면 그 동안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는 말입니다. 풍선을 불 때, 반쯤 불다가 힘들다고 그만 두면, 그 동안 애써서 분 것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불어서 끝을 매조지면 멋진 풍선이 되지요. 그래서 ≪상록수≫의 끝 가사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하니, 이쯤 해서 포기하고 그만 두자”가 아니라,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우리 교회에 모인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욕을 먹었으면 먹었지, 적어도 다른 이유 때문에 욕먹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비주류 기독교일 수도 있습니다. 남들 많이 가는 넓은 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좁은 문으로 들어온 분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애쓰는 분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합당하게 사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외롭고 험하더라도, 그런 마음가짐과 정신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경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안락함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견디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61 문제는 믿음입니다!
860 기쁨을 주는 기쁨
859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8 반전(反轉)의 때
857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6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5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4 양을 찾아서
853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2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1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50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9 기름 값
848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7 두 아들과 아버지
846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5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4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843 힘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842 그래도 내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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