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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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09-02 17: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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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1-5 
설교일 2007-09-02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요한복음서 1:1-3〉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창조절 첫째 주일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에 대해서 잠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말 표현에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런 겁니다.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우리가 ‘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한 세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첫째, ‘소음에 지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것들은, 쓸데없는 말, 의미 없는 말, 위선적인 말, 사랑이 없는 말, 거짓말 등등입니다. 우리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합니까? “헛말씀 하지 마!” 합니까? 아니지요. “헛말 하지 마!” 하는 말도 어색합니다. 그냥 “헛소리 하지 마!” 하지요. 좀 더 심한 상황에서는 ‘개 말씀’도 아니고 ‘개 말’도 아니고 ‘개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줍니다. 사실 ‘개 소리’라고 하면 개에게 미안한 일이에요. 이런 건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리라고 하기도 오감합니다. 그냥 ‘소음’일 뿐입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고린도전서 13:1).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말을 하더라도, 설령 그것이 천사가 하는 말처럼 들릴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그것은 ‘말’이 아니라 그냥 ‘소음’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잠언 26:23은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서 말만 매끄럽게 하는 입술은, 질그릇에다가 은을 살짝 입힌 것과 같다.” 생각 없는 말, 마음에 없는 말, 겉으로만 매끄럽게 하는 말은 ‘소음’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남을 비판할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이나 비난 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면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애정이 없는 비판, 사랑이 없는 꾸지람, 아끼는 마음이 없는 나무람이지요. 이런 말들이 바로 ‘소음’이요, ‘쓰레기’입니다.

거짓말도 그렇습니다. 잠언 12:19에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말은 영원히 남지만, 거짓말은 한순간만 통할 뿐이다.” 또 잠언 19: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서 바랄 것은 성실이다. 거짓말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가난뱅이가 되는 것이 낫다.” 잠언에 나오는 유명한 기도(30:8),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 이 기도 앞에 나오는 전제는 “허위와 거짓말을 저에게서 멀리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허위와 거짓말은 쓰레기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 그런 것이 있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소음’들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잠깐 동안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방 들통이 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서 4:22).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최근에 학력 위조 때문에 시끄러운 곳이 많지요. 몇몇 거짓 학력이 들통이 나서 유명 인사들이 곤욕을 치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기가 좋게 보던 그 사람이 ‘고졸’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왜 속였느냐, 왜 거짓말을 했느냐, 그것 때문에 열을 받는 것이지요. 학력과 상관없이 실력 있고 인품 높은 분들이 대접 받는 사회가 되어야지요. 그러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은 지금도 우리나라가 ‘거짓말’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 둘째, ‘말다운 말’이 있습니다.

잠언 20:15절입니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이 있지만, 정말 귀한 보배는 지각 있게 말하는 입이다.” 지각 있게 말하는 입,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금보다도 귀하고 진주보다도 귀한 보배라는 것이지요. 또 잠언 25: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 사과이다.”

앞서 말씀드린 ‘소음’ 곧 ‘쓰레기 말’은 세상을 오염시킬 뿐입니다. 아무것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맞는 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아주 간단한 예가 있지요. 누가 “목사님!” 하고 부르면 얼른 뒤돌아볼 것 아닙니까? 이게 사람을 움직이는 말입니다. 예배시간에 사회자가 앞에서 “다 같이 기도합시다!” 하면 모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지요.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말입니다. 경우에 맞고 사리에 맞는 일이기 때문에 다 움직이는 것이지요.

경우에 맞는 말, 사리에 맞는 말이 ‘말다운 말’입니다. ‘말다운 말’의 또 하나 다른 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입니다. 며칠 전에 성경공부 갔다가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우리 교회 꼬마 하나가 이런 말을 합디다. “목사님!” “왜?” “있잖아요? 저기 저 나무는요…” “그래, 저 나무가 왜?” “저 나무는요, 귀염둥이에요.” 같이 차를 타고 있던 우리 일행은 모두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참 순수한 말 아닙니까? 얼마나 사람 마음을 밝게 해주는 말입니까?

잠언 16:24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 말다운 말 한 마디가 고급술보다 낫고, 영양제나 진통제보다 낫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다가 돈을 가장 많이 씁니까? 예전에는 먹고 사는 데에다가 가장 많이 썼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즐겁기 위해서 쓰는 돈이 가장 많습니다. 유명한 음악회나 뮤지컬 공연이 하나 들어오면 티켓 값이 몇 십만 원 하지요. 그래도 사람들이 돈을 주고 표를 사서 갑니다. 어떤 것은 30만 원짜리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30만 원이면 보통 한 식구 한 달 식비로 쓸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돈을 쓰는 것은 즐겁기 위해서입니다. 감동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 말의 값어치가 얼마나 높은 것이겠습니까? 부모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자녀들의 말 한 마디, 자녀에게 용기를 주는 부모의 격려 한 마디, 고독 속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 한 마디…. 이런 말들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왜 결혼을 하고, 왜 자식을 낳고, 왜 친구를 사귀고, 왜 모임을 만듭니까? 그것은 ‘말다운 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마음에 감동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 셋째, 세상을 움직이는 말, 곧 ‘말씀’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생겨라!” 그러자 빛이 생겼습니다.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그러자 창공이 생겼습니다.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라!” 그러자 땅이 생겼습니다.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라!” 또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또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시니까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보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 어둠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물 위에 움직이고 계시던 하나님, 곧 ‘말씀’이 육신이 되셨지요. 육신이 되신 말씀, 이분이 곧 예수님입니다. 창세기에서, 말씀이 떨어지자 세상이 움직였던 것처럼, 예수님도 말씀으로 세상을 움직이셨습니다. “일어나라!” 하시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눈을 떠라!” 하시자 맹인이 눈을 떴습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 하시자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다야, 바람아, 잔잔해져라!” 하시자 자연까지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마술’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도깨비방망이 두들기듯,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말씀이 실행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옳은가, 창조론이 옳은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말로 ‘말이 씨가 되었다!’ 하면 모두 동의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사람이든, 자연이든 다 그대로 실행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실행되는지 방법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실행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과 거의 동격의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요한복음서 14: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도, 말하는 대로 그대로 실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 맺는 말씀

말이란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든지, 마음을 움직이든지, 세상을 움직일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말이나, 마음에 없는 말이나, 거짓말은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아무런 영향력도 없습니다. 그냥 소음일 뿐입니다. “한 사람을 평생 속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소음’을 내서는 안 됩니다. ‘말다운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말, 사람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말,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말, 이런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을 할 때는 항상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말을 해야 합니다. 말부터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생각하면 실수하기 십상입니다. 순서를 꼭 지켜야 합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바지를 내리고 똥을 누는 것과, 똥을 누고 바지를 내리는 것은 천지차이 아닙니까? 말을 먼저 하고 생각하지 말고, 생각을 먼저 하고 말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정도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인격과 양식만 가지고 있다면, 노력하면 누구나 ‘말다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서 실행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우리도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들과 어울리면 거짓말만 늡니다. 인격과 양식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 교양 있는 말,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감동을 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를 열심히 하면,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멋진 경험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말씀이신 주님께 꼭 붙어서, 그 말씀을 늘 간직하고 살면서, ‘말씀’의 기적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20140106 Naeil.
2. 20160131 Haanul.
862 낮에 출몰하는 귀신
861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860 문제는 믿음입니다!
859 기쁨을 주는 기쁨
858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7 반전(反轉)의 때
856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5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4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3 양을 찾아서
852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1 그대 모습 보여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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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기름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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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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