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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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창세기 45:1-15 
설교일 2007-09-23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요셉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기의 모든 시종들 앞에서 그만 모두들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요셉은 드디어 자기가 누구인지를 형제들에게 밝히고 나서, 한참 동안 울었다. 그 울음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밖으로 물러난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들리고, 바로의 궁에도 들렸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놀란 형제들은 어리둥절하여,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흉년이 든 지 이태가 됩니다. 앞으로도 다섯 해 동안은 밭을 갈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곧 아버지께로 가셔서,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하는 말이라고 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드려 주십시오. ‘하나님이 저를 이집트 온 나라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체하지 마시고, 저에게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고센 지역에 사시면서, 저와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여러 아들과 손자를 거느리시고, 양과 소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나 더 계속됩니다. 제가 여기에서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안과 아버지께 딸린 모든 식구가 아쉬운 것이 없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여쭈십시오. 지금 형님들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요셉임을 형님들이 직접 보고 계시고, 나의 아우 베냐민도 자기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형님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누리고 있는 이 영화와 형님들이 보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다 말씀드리고, 빨리 모시고 내려오십시오.” 요셉이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얼싸안고 우니, 베냐민도 울면서 요셉의 목에 매달렸다. 요셉이 형들과도 하나하나 다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제야 요셉의 형들이 요셉과 말을 주고받았다.

〈창세기 45:1-15〉


■ 들어가는 말씀

올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계절을 주셨습니다. 좋은 명절도 주셨습니다. 태풍 때문에, 호우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에게도 이번 명절이 희망의 절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명절’(名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만남’입니다. ‘만남’을 위해서, 명절마다 고속도로에는 엄청난 차량들이 몰려듭니다. 만남이 없는 명절은 축복의 절기가 아니라 슬픔의 절기입니다. 이별로 인해서 마음 아파하는 이들, 가까운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애통해 하는 이들,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질병 때문에, 그리고 일 때문에 만남의 축복을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있기를 바랍니다.

만나야 할 때 만나지 못하는 것,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한’을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함께 만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큰 복입니다. 만나야 할 때, 곧 거룩한 안식일에,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은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 만남에 대하여

‘만남’은 세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일상의 만남이 있습니다. 둘째, 반가운 만남이 있습니다. 셋째, 껄끄러운 만남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만남 가운데, 아마도 가장 극적인 만남은 요셉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 가운데서 요셉을 가장 사랑했지요. 그래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였고, 결국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거치며,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뒤에 요셉과 형들이 만나게 되지요. 이것이 창세기 45장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아까 말씀 드린 세 가지 만남이 다 들어 있습니다. 첫째,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에 가서 이집트 총리를 만난 것은 일상적인 만남입니다. 둘째, 요셉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난 것, 아버지 야곱이 꿈에도 그리던 사랑하는 아들을 만난 것은 반가운 만남입니다. 그리고 셋째,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라는 것을 형들이 알고 나서, 그들이 요셉을 만난 것은 껄끄러운 만남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 세 가지 만남은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만남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일상적인 만남도 늘 있는 일이니까,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껄끄러운 만남,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문제지요. 우리가 언제나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싫어도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야 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어느 사이트에서 조사한 것을 보니까, 우리나라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 가운데 1위가, “벌써 가려고?” 또는 “더 있다가 가지!” 하는 말이랍니다. 거꾸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1위는, “준비하느라 수고 많이 했다!”이고, 2위가, “이제 어서 가 봐야지!” 하는 말이랍니다.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것은 대체로 ‘껄끄러운 만남’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자리에 가서 껄끄러운 만남을 견디고 있는데도, 남자들은 거들어줄 생각도 않고, 술만 마신다든지, 앉아서 TV만 본다든지, 그러면 명절 음식 준비하다가, 꼬챙이에 고기를 끼우는 대신, 남편을 끼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답니다. 남편들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요즘은 ‘시댁 문화’도 많이 달라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 ‘시’자 붙은 것만으로도 며느리들은 불편한 것이 사실이지요. 시댁, 시집,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아주버니, 시동생…, 이거 다 편안한 말은 아닙니다. 남자들이야 그러지요.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 “시집에 가면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느냐?” 그러나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아무리 잘 해줘도 시댁은 시댁인 걸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세월이 바뀌어서, 남자들도 처가에 가면 장모 눈치를 많이 본다고 하지요.

■ 껄끄러움을 해소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니까, 가급적 이 껄끄러운 만남을 잘 해소해야 합니다. 이건 시어머니들이나 시댁 식구들만 할 일은 아닙니다. 며느리들도 마찬가지고, 사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장모가 사위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가 됐지요. 어쨌든, 어려워하는 상대를 어렵지 않게 해주는 것, 만나기 껄끄러워하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나중에 요셉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자기들이 죽이려고 했던 동생 아닙니까? 어찌어찌 해서 죽이지는 않고 종으로 팔아넘기기는 했지만, 그것도 작은 죄는 아니지요. 그런 동생이 세계 최강국의 총리가 돼서 자기들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으니,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려워하는 형들의 심정을 꿰뚫어보고, 단번에 형들을 안심시키는 것을 보면, 요셉은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은, 안절부절 겁에 질려 있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곳에 팔아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창세기 45:4-5). 참 멋지지 않습니까?

야곱이 죽었을 때, 형들은 더 두려워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를 봐서라도 동생이 자기들을 해치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까,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요.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나서 형들은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서 빌었습니다. “우리는 아우님의 종입니다”(창세기 50:18).

이때 요셉은 울었습니다. 그리고 간곡한 말로 오히려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창세기 50:19-21).

이처럼 요셉은 형들을 철저하게 안심시켰습니다. 어설프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앞으로 두고 보겠습니다. 형님들이 하는 것을 봐서 제 태도를 결정하지요.” 아마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이 정도로 했겠지요. 그러나 요셉은 얼어 있는 형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녹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형들은 요셉을 만나는 것을 껄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사람과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가장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불평분자’라고 합니다. 밥 비벨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정적인 불평분자와 함께 지내기가 즐겁진 않을 것이다. 친구를 빨리 잃어버리고 싶다면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불만을 표현하라. 금방 나를 피할 것이다.” ― 밥 비엘(임신희 역), 《큰 사람을 만드는 작은 원칙》(크레도 미션, 2002), 137쪽.

껄끄러운 만남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안심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에게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 매사에 불평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대개 겉으로는 맞장구를 쳐주겠지만, 속으로는 피곤해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런 사람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집니다.

칭찬하면 내 편이 되고, 불평하면 적이 됩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편합니다. 이것은 장모나 사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기간에도 그렇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왜 불만이 없었겠습니까? 용서할 때는 하더라도, 속 시원하게 한 판 닦아세우고 싶은 생각이 당연히 있었겠지요.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 덮어버리고 오히려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화끈하게 털어버렸습니다. 이런 사람이 큰일을 하는 사람이지요.

■ 헤어짐에 대하여

자, 만나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남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깔끔한 헤어짐’입니다.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지요. (거룩한 예배시간에 이런 노래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그런데 요즘은 이 노래를 패러디해서 이렇게 부릅디다. “설거지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동서….”

“날아다니는 새는 앉는 자리가 깨끗해야 하지만 사람은 떠난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 떠난 자리가 너절너절하면 그것처럼 추한 것도 없습니다. 내 뒤처리를 내가 하면 괜찮은데, 내 뒤처리를 남이 하게 되면 그 때부터 짜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 뒤를 내가 닦으면 별 감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의 뒤를 내가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지저분합니까?

설거지를 하면서 접시를 닦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어디입니까? 안쪽도 물론 잘 닦아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맨 밑바닥을 잘 닦는 것입니다. 그래야 겹쳐서 쌓아 놓을 때 다른 접시에 때가 안 묻게 되지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도 뒤가 깔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또 그래야 다음에 만날 때 깔끔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 맺는 말씀

명절은 만남의 절기입니다. 만남은 축복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비록 껄끄러움이 예상되는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앞장서서 화끈하게 털어버리는 만남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만남도 축복된 만남으로 만들기 위해서, 떠나는 자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가을 하늘이 더 한층 높이뛰기를 하지요? 높이, 높이 올라가는 하늘처럼, 우리가 멋진 만남을 창조함으로써, 우리 며느리들의 기분도, 사위들의 기분도, 부모님들의 기분도, 자녀들의 기분도 높이, 높이 올라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20080909 Naeil.
862 낮에 출몰하는 귀신
861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860 문제는 믿음입니다!
859 기쁨을 주는 기쁨
858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7 반전(反轉)의 때
856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5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4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3 양을 찾아서
852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1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0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49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8 기름 값
847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6 두 아들과 아버지
845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4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3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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