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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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0:38-42 
설교일 2007-09-3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서 10:38-42〉


■ 들어가는 말씀

지난 주간에 우리는 아주 긴 연휴를 가지며 명절을 보냈습니다.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 좋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셨을 줄 믿습니다. 혹시 동서들 사이에, 설거지나 일거리 때문에 서로 눈치를 주고받은 일은 없었는지, 형제들 사이에 해묵은 감정 때문에 불편함을 드러낸 일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설령 내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분쟁을 방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보기가 좋습니다. 내가 희생을 해서라도 ‘아름다운 만남’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동기간이나 친척 사이에 다툼이나 알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던 우리 심성이었고, 성경에도 형제간 다툼이 인간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다툼이 처음부터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그것이 중요한 문제이지요.

■ 마르다와 마리아

오늘 읽어드린 신약성경 본문에도 형제간의 신경전이 나와 있습니다. 여자 형제 사이에 일어난 사소한 신경전인데, 이 사이에 예수님께서 개입하셔서 교훈을 남겨주셨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 살던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말이 ‘예수님 초청’이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밖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제자들 몇 명은 같이 왔겠지요. 집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당연히 안주인이 바쁠 것 아니겠습니까?

마르다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지요. 이 집은 이 두 자매만 사는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르다가 언니니까 마르다가 안주인 노릇을 했을 것 아니겠습니까? 혼자서 청소하랴, 음식 준비하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언니가 짜증이 났겠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누가복음서 10:40).

동생에 대한 불만도 컸겠지만, 그걸 받아주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야속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누가복음서 10:41-42).

이런 것을 가리켜서 ‘혹 떼려다가 혹 붙였다’고 하지요. 예수님께 응원을 요청했는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셨으니, 화가 날 만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일은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좋은 몫을 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 복잡하지 않게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봅시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주님의 일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면 족하다는 것이지요. 이 말씀이 개역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얼핏 들으면 반찬 이야기를 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상황을 보면 그렇게 보는 것도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해마다 두어 차례씩 저를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하는 분이 계십니다. 물론 교회 다니는 분은 아닙니다. 며칠 전에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지요.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시간을 내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못 나가겠습니다.” 제 조건이 뭐냐 하면, 간단하게 자장면이나 설렁탕 한 그릇 정도라면 같이 할 수 있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서너 번 초대를 받았는데, 만날 때마다 너무 지나친 대접을 받아서 좀 불편했었지요. 이번에는 설렁탕 한 그릇씩 먹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요한복음서 6:12). 예수님은 요즘 자본주의 사회의 환경운동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 남기지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꼭 오늘날 우리나라나 선진국 사람들이 음식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을 보시기나 한 듯이, 벌써 2천 년 전에 경고를 하신 겁니다.

오늘 말씀에도 그러셨지요.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아마도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가정은 알뜰하게 음식 처리를 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평소에 교회에서 하던 모습을 보면 분명히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 너무 거창한 것만 생각하는데, 주님의 일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간단한 것부터 실천하면 그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세계 각 나라에 나가서 전도활동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웃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도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위하여 몸 바쳐서 일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반찬 가짓수 줄이는 것도 훌륭한 주님의 일입니다. 음식 남기지 않는 것도 위대한 주님의 일입니다.

■ 좋은 몫을 택하자

주님께서 주신 두 번째 교훈은, 좋은 몫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신 것은, 언니가 열심히 일하더라도 뺀들뺀들 빠져나갈 구멍만 찾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깨닫고, 중요한 것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음식 준비는 하지 말라는 말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손님이 왔으면 대접을 해야지요. 사람이 모였으면 먹어야지요. 그러나 주님의 말씀보다 먹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은 최소한으로, 한두 가지 반찬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복음서 4:4; 신명기 8:3).

사무엘도 사울을 꾸짖으면서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사무엘기상 15:22). 사람을 대접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문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우선입니다. 사실 그것이 우리가 복 받고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고기 잡는 전문가인 베드로가 밤새도록 배를 타고 다녔으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 맺는 말씀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결코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 그것이 최고의 신앙생활입니다. 에밀 부르너(Emil Brunner)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나의 주인의 음성이다.” “Bible is my Master's Voice.” 주인이 부르면 밥 하다가도 달려와야 합니다. 주인이 부르면 화장실에 있다가도 얼른 뛰어나와야 합니다. 주인이 부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얼마나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까? 서양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경책이 깨끗하다면 마음은 더럽고, 성경책이 더럽다면 마음은 깨끗하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일과 주님의 말씀을 동시에 따르기는 어렵습니다. 어디엔가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언제나 ‘좋은 몫’을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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