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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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8-02-17 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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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예레미야서 31:10-14 
설교일 2008-02-17 
설교장소 기쁘고 흡족한 날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뭇 민족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듣고,
먼 해안지역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께서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지키듯이 그들을 지켜 주신다.’
그렇다.
나 주가 야곱을 속량하여 주고,
야곱보다 더 강한 자의 손에서 그를 구원해 냈다.
그들은 돌아와서 시온 산 꼭대기에서 찬송을 부르고,
주의 좋은 선물,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양 새끼와
송아지들을 받고 기뻐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은 물 댄 동산과 같아서,
다시는 기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처녀가 춤을 추며 기뻐하고,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그들을 위로하여 주겠다.
그들이 근심에서 벗어나서 기뻐할 것이다.
그 때에는 내가 기름진 것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것이며,
내 좋은 선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서 31:10-14〉


■ 들어가는 말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 좋은 분입니다. 시편 103편 5절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 주시는 분, 네 젊음을 독수리처럼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사는 한평생을 기쁘고 흡족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구나 나이가 들어서까지 독수리처럼 힘 있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거기서 더 바랄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기쁘고 흡족한 날”이라고 붙였는데, 기쁘고 흡족한 날이 따로 없이 우리가 숨 쉬는 모든 날이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지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난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 고난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온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기쁘고 흡족한 날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살던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결코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기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모든 조건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만 기울이면 여러분의 삶은, 힘들고 부족한 상황에서 벗어나서, 기쁘고 흡족한 상황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우리가 손을 벌려 달라고만 하면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금, 기쁘고 흡족하게 살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첫째, 주님께서 재물을 주시면, 우리는 기쁘고 흡족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31장 12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시온 산 꼭대기에서 찬송을 부르고, 주의 좋은 선물,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양 새끼와 송아지들을 받고 기뻐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은 물 댄 동산과 같아서, 다시는 기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백성들이 먹고 살 곡식을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포도주까지 주신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양과 송아지까지, 고기까지 충분히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양식이 아니라, 풍족하게 먹고 기뻐할 수 있을 만큼 넉넉히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언제 주시겠습니까? 멀고 먼 훗날에 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지 않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일용할 양식이란 내일 먹을 양식이 아닙니다. 1년 후에 먹을 양식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먹을 양식을 달라고 하라는 것이지요.

■ 둘째,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가 넘쳐나면, 우리는 기쁘고 흡족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지, 진정으로 기도하면 주십니다. 그런데, 먹을 것만 있다고 우리가 기쁘고 흡족하지는 않습니다.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사이가 좋은 사람끼리 앉아서 밥을 먹어야 기쁘지요. 아무리 진수성찬이 앞에 있어도 가족들 사이에 평화가 없으면 기쁘지 않습니다. 이웃들 사이에 평화가 없으면 흡족하지 않습니다. 먹는 게 소화가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그 때에는 처녀가 춤을 추며 기뻐하고,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그들을 위로하여 주겠다. 그들이 근심에서 벗어나서 기뻐할 것이다”(13). 처녀가 춤을 추며 기뻐한다고 했지요?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한다고 했지요?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고,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관계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인간관계에 평화가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 동등한 인격체인데, 남자가 여자를 자기 마음대로 부려먹으려고 한다든지, 여자가 남자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든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내는 남편을 하나님께 맡기고, 남편도 아내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젊은이와 노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세대차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나이 든 부모들은 젊은 자녀들을 자기들 뜻대로 키우려고 하지요. 젊은 자녀들은, 부모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역사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젊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이지요. 부모가 자녀들을 소유하려고 하는 생각, 자녀들이 부모를 이겨 먹으려고 하는 생각, 피차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세대 간의 평화는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내 마누라’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시집보내신 하나님의 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을 단순히 ‘내 서방’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감히 하나님의 딸한테, 하나님의 아들한테, 내 성질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내 새끼’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그냥 부모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를 보호하고 키워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감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생명을 부모들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부모에게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칼릴 지브란이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들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지니지는 말라. 오로지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 마음을 지닐 수 있나니.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나니. 참나무,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에선 자라지 못하느니라.” ― 칼릴 지브란(유제하 역), 《예언자》(범우사, 2004), 36쪽.

너무 가까이 서 있지 말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제발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자식도, 이웃사람도, 동료도, 그 누구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신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같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다 함께 흡족하게 여기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셋째,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면, 우리는 기쁘고 흡족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14절입니다. “그 때에는 내가 기름진 것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것이며, 내 좋은 선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겠다.” 그 날이 오면 우리가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인데, 그 조건 가운데 하나가 ‘제사장들의 마음이 흡족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 왜 제사장의 마음이 흡족해야 한다고 했겠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마음도 아니고,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부자들의 마음도 아니고, 나라를 튼튼하게 지키는 군사들의 마음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제사장의 마음이 흡족하게 되어야 하는가, 이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뻐하는 날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치보다도, 경제보다도, 군사력보다도, ‘믿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해 초에 기도 제목으로 삼은 말씀, 요한삼서 1장 2절을 기억하시지요?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잘 되기 위해서, 여러분의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 할 것이 ‘영혼’이 평안해야 합니다. 영혼을 평안하게 해주는 일, 그것이 바로 제사장의 일 아닙니까?

그러면 무엇으로 제사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가, 14절에 나와 있지요. “기름진 것으로” 제사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기름진 것’이 무엇입니까? 고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려면 고기를 열심히 갖다 드리자, 그런 말이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뜻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무슨 뜻이겠습니까? 당시에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무엇을 가지고 드렸느냐 하면,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 생활 형편이 괜찮은 사람은 소를 잡아서 드렸고, 보통은 양을 드렸지요. 그것도 여의치 못한 사람은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그 제물 가운데서 제사장의 몫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 기름진 것으로 마음이 흡족하다는 것은, 백성들이 그만큼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 제사장들이 하던 일을 지금은 목사가 하지요. 제사장의 마음이 흡족하면 온 백성이 기뻐하고 만족하듯이, 목사의 마음이 흡족하면 성도들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의 마음은 언제 가장 흡족하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때입니다. 성도들이 세상풍조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목사는 흡족합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예배를 드릴 때, 목사의 마음은 흡족합니다. 목사의 마음이 흡족하면, 그것이 결국은 성도들이 기쁘고 만족하게 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길은 직선이 아니다. 바람이 우리의 돛대를 팽팽하게 해주는 그런 길이다.” ― 니체(장석주 편), 《진리는 미풍처럼 온다》(북인, 2005), 81쪽.

우리는 지금까지 험난한 항해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육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기만 하면 우리는 다 함께 기뻐하고 흡족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거기까지 갈 것인가, 문제는 그것인데, 당연히 직선 코스로 가면 빠르겠지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가도, 가도 멀기만 합니다. 애는 애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우리가 기뻐하고 흡족할 만한 곳은 아직 못 이르고 있습니다.

땀 흘려 애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 말로 그런 것을 ‘삽질’이라고 하지요. 중장비를 쓰면 잠깐 해치울 수 있는 것을 ‘삽질’로 해결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행복의 땅, 기쁨의 땅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직까지 땀만 흘리고 있는 것은, 그 길을 ‘노를 저어서’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니체가 말한 대로, 가장 가까운 길은 직선 코스가 아니라, 바람이 우리의 돛대를 팽팽하게 해주는 그런 길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일용할 양식을 충분히 얻기 위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마음껏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우리의 돛을 팽팽하게 할 수 있는 바람을 달라고 하자, 이 말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삽질이고 노질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만능 중장비이고, 알맞은 방향으로 알맞은 때에 불어주는 순풍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주님 앞에 겸손하게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지금 이 순간부터 기쁘고 흡족한 날을 영원토록 이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862 낮에 출몰하는 귀신
861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860 문제는 믿음입니다!
859 기쁨을 주는 기쁨
858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7 반전(反轉)의 때
856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5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4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3 양을 찾아서
852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1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0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49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8 기름 값
847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6 두 아들과 아버지
845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4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3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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