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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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도행전 26:12-18 
설교일 2008-03-3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한번은 내가 이런 일로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가지고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임금님, 나는 길을 가다가, 한낮에 하늘에서부터 해보다 더 눈부신 빛이 나와 내 일행을 둘러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 때에 히브리 말로 나에게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 하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서,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백성과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너를 건져내어,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낸다. 이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6:12-18〉


■ 들어가는 말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하는 노래가 있지요.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그 부르심에 순종했기 때문에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내실 때, 우리처럼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말 안 듣는 사람들이 어딜 가나 꼭 있지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저거, 좀 쓸 만하다’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말을 잘 들으면 거기서부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을 안 들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그래, 네 마음대로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렇게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모가지를 끌고 와서 일을 시키시고야 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다가 모가지 끌려 온 사람들 몇 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나귀에게 망신당한 발람

첫째, 발람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 때입니다. 그들은 모압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돌았는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번 걸리면 국물도 없다’는 소문이 그 주변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 근처에 있던 모압 왕 발락이 벌벌 떱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는 씨도 안 남겠다, 싶어서 대책을 강구합니다. 그래서 발람이라는 예언자를 불러오도록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발락의 사신들이 발람을 찾아갔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물어보니, 가지 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안 갔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요. 모압 왕 발락은 이번에는 더 높은 사람들을, 더 많이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례도 넉넉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때 발람이 말했습니다. “발락이 비록 그의 궁궐에 가득한 금과 은을 나에게 준다 해도, 주 나의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서는, 크든 작든,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민수기 22:18).

예언자로서, 얼마나 당당하고 멋집니까? 그런데 문제는 거기부터였습니다. 대답은 그럴듯하게 잘 했지만, 발람의 속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발락이 비록 그의 궁궐에 가득한 금과 은을 나에게 준다 해도, 가면 안 되겠지? 그러나 한 번 더 하나님께 여쭈어보자!”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교합니다. 발람의 이런 속마음을 하나님은 다 아실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놈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갈 테면 한 번 가 봐라’(20) 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발람은 나귀에다 안장을 얹고, 모압 고관들을 따라서 길을 나섰습니다. 길을 가는데 나귀가 보니까, 천사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나귀는, 천사가 칼을 빼서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길을 벗어나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발람은 나귀를 때려서 다시 길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또 길을 막아섰습니다. 길 양쪽에 담이 있었는데, 나귀는 한쪽 벽으로 몸을 바짝 붙였습니다, 발람의 발이 벽에 긁혔습니다. 그러자 발람이 나귀를 한 대 더 때렸습니다. 천사는 그들이 꼼짝도 못하게 더 막아섰습니다. 나귀는 발람을 태운 채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발람은 화가 나서 이번에는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 나귀의 입을 여셨습니다. 나귀가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주인어른께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리십니까?” 발람이 나귀에게 대답했습니다. “너는 나를 놀림감으로 여기느냐? 내가 칼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 자리에서 너를 죽였을 것이다.” 나귀가 다시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저야말로 오늘까지 어른께서 늘 타시던 어른의 나귀가 아닙니까? 제가 언제 이처럼 버릇없이 군 적이 있었습니까?” 발람이 대답했습니다. “없었다.”

그때, 주님께서 발람의 두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는, 주님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이 보였습니다. 발람은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너의 나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리느냐? 네가 가서는 안 될 길이기에 너를 막으려고 이렇게 왔다. 나귀는 나를 보고, 나에게서 세 번이나 비켜섰다. 다행히 나귀가 비켜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귀는 살렸겠지만, 너는 분명히 죽였을 것이다.” 발람이 주님의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천사께서 저를 만나시려고 길에 서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제가 가는 것이 잘못이면, 저는 되돌아가겠습니다.”

한동안 유행했던 노래가 있지요. “사랑은 개나 소나 다 한다지만, 나는 개소보다 못한 바보야!” 아마도 발람이 이 노래를 알았더라면 이렇게 불러야 했을 것입니다. “나귀는 주님 말씀 순종했지만, 나는 나귀보다 못한 바보야!”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길을 꾸역꾸역 가다가 발람은 나귀에게까지 망신을 당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 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둘째, 요나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요나서 1:2).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해서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스페인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배가 바다에 들어서자 태풍이 일어나서,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습니다. 뱃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마다 자기 신들에게 부르짖고,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에 실은 짐을 바다에 내던졌습니다. 이때 요나는 배 밑창으로 내려가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마침 선장이 그를 보고 소리를 쳤습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요? 이 와중에 잠을 자고 있다니! 일어나서 당신의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뱃사람들이 의논하였습니다. “우리 제비를 뽑아 봅시다.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리는지 알아봅시다.”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그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디서 오는 길이오? 어느 나라 사람이오? 어떤 백성이오?” 요나는, 자기가 주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파도가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또 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우리 앞의 저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요나가 대답했습니다.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나 뱃사람들은 차마 그렇게는 할 수가 없어, 육지로 되돌아가려고 노를 저었지만, 헛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부르며 아뢰었습니다. “주님, 빕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우리를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뜻하시는 대로 하시는 분이시니, 우리에게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은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폭풍이 일던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마련하여 두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사흘 밤낮을 그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거기서 요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엎드렸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고래 뱃속에 들어가서야 요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테리 햄튼과 로니 하퍼라는 두 사람이 《고래뱃속 탈출하기》라는 책을 썼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성경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누구든지 쓸데없는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질없는 목표라는 것이 분명해졌지만 버리기 힘들 때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잡고 있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부질없는 목표를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 테리 햄튼 & 로니 하퍼(이은희 역), 《고래뱃속 탈출하기》(도서출판 좋은생각, 2003), 87쪽. 우리는 우리의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고래 뱃속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을 가면 될 것을, 공연히 우리 마음대로 해보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찬 바울

셋째, 바울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사울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번은 사울이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아서, 성도들을 박해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는데, 한낮인데도 하늘에서부터 해보다 더 눈부신 빛이 사울과 일행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

그래서 사울이 물었습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나는 이 백성과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너를 건져내어,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낸다. 그들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청년인 사울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핍박하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친히 사울의 길을 막아서신 것입니다.

시인 안도현이 쓴 짧은 시가 하나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대단히 유명한 시가 되었습니다. 흔히 이 시의 제목을 〈연탄재〉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너에게 묻는다〉가 원래 제목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 어떤 사람에게 한 번도 뜨겁지 못했던 인간이, 함부로 연탄재를 발로 찰 자격이 있느냐, 이 말이지요. 안도현이 쓴 또 다른 시 가운데 〈연탄 한 장〉이란 게 있는데, 이 시를 읽어보면, 왜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가 잘 나와 있습니다.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것이 두려워 /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했네.”

안도현의 말은, 뜨거운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창피함을 좀 알아라, 하는 뜻이지만, 주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말씀,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이것은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리시는 경고입니다.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발만 아플 뿐입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은 그만 두고, 주님 앞에 엎어져야 합니다. ‘이제 저는 죽고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엎어지고 나면, 주님께서 그때부터 그를 위대한 일꾼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시편에서, 시인이 말합니다.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시편 139:7-10).

우리가 주님을 피해서 갈 곳은 이 세상에 아무데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두 말 없이 순종하며 대답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떠나야 합니다. 소설가 한수산 씨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떠나는 것이 배반이 아니라면, 떠나거라. 떠나는 것이 도피가 아니라면, 떠나거라. 그것이 오히려 문제를 피해가는 게 아니라 너 자신과 맞서는 길이라면, 언제든 떠나거라. 떠난다는 건 안락을 버리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낯익은 것들과의 이별이니까. 서럽고 고달프게 혼자가 되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떠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장소만이 아니다. 네 영혼이 짓무르고 있고, 안락의 먼지가 쌓이고, 편안함의 이끼가 자라거든 언제나 스스로에게 속삭일 수 있어야 한다. 자, 이제 떠나야 할 때야 하고.” ― 〈사막에서 쓴 편지〉에서. 한수산, 《먼 그날 같은 오늘》(나남출판, 1994), 357쪽.

제가 잘 아는 똑똑한 청년이 있습니다. 참 실력 있는 청년입니다. 그런데 그가 중요한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최근에는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쳤는데, 350명 가운데서 300명을 합격시키고 50명을 떨어뜨리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그 청년은 거기서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실력이 부족한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입니다.

신앙 안에서, 주님의 뜻을 받들어,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사람이, 자꾸 딴 길로 가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막아서시는 것인데, 우리 신앙인들이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그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더 이상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말아야 합니다. 고집을 버리고 주님 앞에 엎어져야 합니다.

가시 돋친 채찍을 발로 차봐야 발만 다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의 신호를 보내실 때, 속히 깨닫고 돌아서면 우리는 위대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고집을 버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862 낮에 출몰하는 귀신
861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860 문제는 믿음입니다!
859 기쁨을 주는 기쁨
858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857 반전(反轉)의 때
856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855 길은 멀고 짐은 무겁지만
854 매일 새로 태어나기
853 양을 찾아서
852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851 그대 모습 보여주오!
850 내 몸, 어떤 의사에게 보일 것인가?
849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848 기름 값
847 성공한 예언자 벤치마칭
846 두 아들과 아버지
845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844 삼일절에 생각하는 ‘나라 사랑’
843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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