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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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설교일 2007-07-01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감사절 
■ 성서 본문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 들어가는 말씀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6-18). 이 말씀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진리입니다. 아무리 자주 들어도 새롭습니다. 세상 어디서든 옳은 말씀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니까, 이 가운데서,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하는 말씀을 주제로 뽑아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포항 오천에 가면 원유술 신부님이라고 계십니다. 이분이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인데, 모임이나 행사가 있어서 가끔 만나면, 이 양반이 건배 제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분의 건배사를 참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잔을 이렇게 높이 들어서, “이상은 높게!” 하면 다 같이 따라합니다. 그 다음, 잔을 내려서 “사랑은 깊게!”를 외칩니다. 또 따라하겠지요. 그 다음 다시 가운데로 들어서 “연대는 평등하게!” 하고, 다 같이 또 따라합니다. 상당히 입체감이 있지요.

오늘이 감사절인데, 감사도 좀 입체감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했는데, 이 말씀은 공간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평면’에 해당합니다.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그것도 감사하고…. 평면에 물건을 늘어놓듯, 그렇게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더 많이 감사할수록 좋습니다. 이것만 해도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다가 ‘더 오래’ 감사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좋겠지요. 더 나아가, 우리가 감사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더 깊게’ 감사할 수 있다면, 여기서 더 바랄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더 많이, 더 오래, 더 깊게!”라고 붙였습니다.

■ 더 많이!

먼저, 더 많이 감사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즘 장마철인데다가 날까지 더워서 짜증이 많이 나지요. 꼭 여름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서 살다가 보면 짜증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거, 다 정상입니다. 그런데 짜증이 날 때 보면 대개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납니다. 나하고 관계가 먼 사람, 멀리 있는 사람 때문에 짜증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미국의 부시 때문에 가끔 짜증이 나기는 합니다만, 요즘에는 그래도 꽤 착해진 편이지요. 이건 농담이고…. 어쨌든 가깝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고, 밀접하기 때문에 짜증도 더 나는 법입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 때문에,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부모 때문에, 형제 때문에 짜증을 냅니다. 교회에서도 함께 무슨 일을 해나가려다 보면 열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일터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안 지내면 탈날 일이 없지요. 같이 일 안 하면 부딪칠 일도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성질이 난다, 누구 때문에 속이 상한다, 그러면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지극히 정상이에요.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아요? ‘우린 생전 안 싸워요’ 하는 분들도 가끔 있기는 합디다만, 그런 분들은 상담을 좀 받아봐야 할 분들입니다. 싸움이란 건 상대 때문에 짜증이 나니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짜증이 왜 납니까? 열 번을 잘 하다가 한 번 틀어지면 문제가 생기지요. 거꾸로, 열 번 짜증나다가 한 번 잘 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문제가 큰 관계입니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 대개는 열 번 잘하다가 한 번 문제 생길 때 열을 받는 겁니다.

감사도 그렇습니다. ‘나에게 감사할 일이 뭐가 있는가?’ 생각하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쌓이고 쌓인 게 감사할 거리입니다. 그래도,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보다는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들이 우리를 짜증나게 할 때보다 우리를 기쁘게 해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만 생각하고 기쁘게 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잊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스티븐 스코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을 항상 베풀었다면, 그는 당신을 그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감사히 여기는 것이다.” ― 스티븐 K. 스캇(오윤성 역), 《잠언에서 배우는 솔로몬 부자학 31장》(지식노마드, 2006), 125쪽.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친절을 ‘항상’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고,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감사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친절과 배려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문제는 ‘나’입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으니까, 남들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남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니까,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세상에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 많이 있습니다. 표현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할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이밖에도 감사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느 인디언 추장이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잘못이다”(테쿰세, 쇼니 족 인디언) ― 류시화 편,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나무심는사람, 1999), 90쪽.

■ 더 오래!

그 다음, 더 오래 감사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감사한 일 한 가지에 대해서 오래 오래 감사할 수 있다면, 그 감사한 일 역시 우리에게 더 큰 은혜가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든지, 감사한 일이 있을 때, 보통 하는 이야기가, “이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 오래 가지고 있겠다고 하는 뜻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게 훌륭한 인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한 서너 살 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가을 날, 밤에 이불에다가 실례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그럴 때면 형들과 누나들이 놀려주었지요. 창피함을 깨닫고 조심하라는 뜻이겠는데, 다음 날 아침, 제 아버지는 이불에서 지도를 발견하고는 얼른 옷을 갈아입히신 다음 저를 안아서 마당에 있는 들마루에다가 앉혀놓으셨습니다. 그러시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가셔서, 서랍을 열어 사과까지 한 알 가지고 나와 손에다 쥐어주셨습니다. 말로 표현은 제대로 못했지만,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릅니다.

비슷한 시절,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만, 그 당시 우리 교회 여전도사님이 계셨는데, 오 아무개 전도사님이었습니다. 이분이 저를 격려하며 칭찬해주었던 일,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세뱃돈으로 빳빳한 백 원짜리 지폐를 주시면서 등을 두드려주셨던 어떤 집사님, ― 이분이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얼마 전까지 장로님으로 충성하시던 분입니다 ― 이분께 감사하는 마음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초등학교 시절, 외삼촌댁에 갔다가, 외삼촌이 외출하신 틈을 타서 조그마한 사고를 하나 쳤는데, 외숙모께서 얼른 수습을 하시고, 외삼촌이 돌아오셨을 때, 자기가 실수로 그랬다며 무마해주셨던 일,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때 유난히 친절하게 지도해주셨던 정 아무개 선생님, 중학교 때 시골서 새로 전학 온 저를 아들처럼 잘 보살펴주셨던 전 아무개 선생님, 고등학교 때 수학의 철학적 원리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주셨던 김 아무개 선생님, 대학 때 학문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해주셨던 교수님…. 오래 오래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는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감사들은 불과 몇 십 년, 길어야 백 년을 못 갈 감사들입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3천여 년 전,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셨지요. 이 일에 대해 감사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도 유월절이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감사의 잔치를 엽니다.

출애굽기 12장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이 날은 너희가 기념해야 할 날이니, 너희는 이 날을 주 앞에서 지키는 절기로 삼아서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켜야 한다.” 감사한 마음을 ‘영원히’ 잊지 말라는 ‘지엄한’ 지시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분노를 쌓을 것이 아니라, 사랑을 쌓아야 합니다. 원한을 쌓을 것이 아니라 용서를 쌓아야 합니다. 불평을 쌓을 것이 아니라 감사를 쌓아야 합니다.

■ 더 깊게!

마지막으로, 더 깊게 감사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 강유일, 《피아노 소나타 1987》((주)민음사, 2005), 105-106쪽.

한 고독한 독신의 중년 여자가 초콜릿 바 열두 개를 구워서, 무작위로 남의 집 편지통에 집어넣었습니다. 어떤 회사의 여비서가, 편지통에 담긴 그 초콜릿을 먹고는, 갑자기 혀에서 피가 줄줄 흘러, 부랴부랴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응급 수술 팀은 그 여자의 입 안과 기도에서 잘게 잘린 면도날 조각들을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곧 ‘초콜릿’이란 이름으로 특별 수사팀을 조직했습니다. 결국 이 고독한 독신녀가 범인으로 체포됐습니다.

그는 너무도 외로워서, 깊은 밤 혼자, 날이 시퍼런 새 면도칼들을 잘게 잘라 그것을 코코아 반죽에 넣은 뒤, 우유와 향료를 들이붓고 초콜릿 바를 구워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누구에게 협박을 하거나 돈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그는 너무 고독했고, 그 밤은 너무 짙은 암흑에 싸여 있었으며, 그 암흑 속에서 빛나는 것이라고는 오직 선반 위에 놓인 면도칼의 푸른 날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었고 그 면도날이 어둠 속에서 섬뜩한 푸른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자기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그 푸른 면도날을 잘라 초콜릿을 구워 무작위로 다른 사람의 편지통에 던져 넣었다는 것입니다.

코코아 반죽 속에 처넣어진 면도날 조각들이야말로 그의 존재를 슥, 슥 베어버린 그 여자의 고독의 일부였습니다. 세상은 수선을 떨며 결국 여자를 체포했습니다. 그 고독한 여자는 체포됨으로써 비로소 말 상대를 얻었습니다. 경찰관의 심문이 그 여자의 유일한 대화가 되어주었겠지요. 사람들은 그 여자와 대화하는 대신 수사관에게로 그녀를 보내버린 것입니다.


이 여자의 예에서 보듯, 우리에게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여자는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아까운 인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깊이’ 감사한다고 할 때, 꼭 뭐 대단한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깊이 감사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깊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깊이 감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밥 한 끼를 먹는 것에 대해서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대화할 가족이 있다는 것, 아니 싸움할 상대가 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뼈저리게 감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맺는 말씀

말씀을 맺으면서 이해인 수녀님의 글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늘 사랑의 빚을 많이 지고 사는 나는 별을 보며 다짐하였다. 더 많이 감사하기 위해 기도하자.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자. 이제 무엇을 자꾸 달라고 보채기만 하는 기도는 그만하자고 마음먹었다.” ― 이해인, 《기쁨이 열리는 창》(마음산책, 2004), 104쪽.

더 많이, 더 오래, 더 깊이 감사함으로써, 더 풍성하고, 더 길고, 더 깊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62 이런 새해가 되게 하소서!
261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60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59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258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257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56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255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54 생명의 영이시여, 온 세상을 살리소서!
253 2009 성경공부를 시작하며
252 "주님을 자랑하라!"
251 이런 새해가 되게 하소서!
250 "날을 세는 법"
249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48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247 주여, 이 땅을 고쳐 주옵소서!
246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
245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는 교회
244 우리 가정이 번성하게 해주십시오!
243 제때에! 알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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