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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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2-11-18 14: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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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빌립보서 4:4-7 
설교일 2012-11-18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감사절 

■ 성서 본문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립보서 4:4-7>


■ 들어가는 이야기

올해도 추수감사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들녘에 나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황금색을 띠던 논들이 훤히 비어 있습니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났다는 뜻이겠지요. 우리 가운데 농사짓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한 해를 거의 다 보내가는 이 시점에, 올해는 무엇을 얼마나 거두었는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여러분 위에 성령님의 뜨거운 기운이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저는 오늘 이야기의 제목을 ‘바라는 것이 있다면’이라고 붙였습니다. 세상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바랄 때 어떻게 하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가, 그 답이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 4:4-7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 기뻐하십시오!

첫째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뻐하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빌립보서에 나오는 말씀이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도 유명한 말씀이 나오지요. “항상 기뻐하십시오!” 했습니다. 기쁠 때만 기뻐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쁘지 않을 때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똑 같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면 기쁜 일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겠습니다만, 사람이 여럿이 모여 있을 때 한 사람이 하품을 하면 옆에 있던 사람도 따라서 하품을 하는 일이 종종 있지요. 이런 것을 ‘분위기’(雰圍氣)라고 합니다. 졸린 기운이 그 자리에 꽉 차 있다는 이야기지요. 한 사람이 기뻐하면 그 자리에 기쁨의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론다 번이라는 사람이 〈시크릿〉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 보면 이 사람은 사람을 ‘송신탑’이라고 묘사합니다. 여기 있는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송신탑이라는 얘기입니다. 그 송신탑은 지상에 세워진 어떤 텔레비전 송신탑보다 강력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보내는 전파는 구미를 넘어서고 대한민국을 넘어서고 온 우주에까지 퍼집니다. ― 론다 번(김우열 역), ≪Secret(시크릿)≫((주)살림출판사, 10), 27쪽. 여러분이 기쁨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 그 기운이 우주로 퍼집니다. 그렇게 퍼진 전파는 비슷한 유형의 전파와 결합됩니다. 그 전파가 세상에서 또는 우주에서 쏘아지는 기쁨의 에너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전파’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원리를 모르던 시절의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것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발사하는 전파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서 현실이 된다는 원리도 지금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것도 과학으로 정립되어 그 원리를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기뻐하는 사람에게 기쁨의 에너지가 몰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뻐하는 사람에게 기쁨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질질 짜면서 불평만 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고 계신지, 여러분의 소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분 옆에 기쁜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짜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까?

■ 관용을 베푸십시오!

둘째,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빌립보서는 관용을 베풀라고 말합니다. ‘관용’(寬容)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또는 그런 용서.” 이것을 영어에서는 톨러런스(tolerance)라고 하고 프랑스어로는 ‘똘레랑스’라고 하는데요, 쉽게 말하면 ‘여유’(餘裕)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말로 ‘유도리’(ゆとり)라고 하면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웬만한 것은 용납하는 사람, 어지간한 것은 양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 ‘괜찮아!’입니다. 조금만 기분 나쁘게 해도 ‘파르르’ 끓어오르는 사람은 관용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어릴 때 일입니다만, 방학 때 외삼촌댁에 갔는데, 그 댁에 종이로 만든 등이 있었습니다. 외삼촌께서 어디서 선물 받으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게 신기해서 그 안에 불을 붙여보다가 그만 등을 통째로 태워먹고 말았습니다. 외숙모께서 그걸 보셨습니다. 저는 혼날 줄 알고 겁을 잔뜩 먹고 있는데, 외숙모께서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녁때 외삼촌께서 돌아오셔서 그게 불타버린 것을 아셨는데, 외숙모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사건을 덮었습니다. “내가 아까 불 붙여보다가 그렇게 됐어요.” 이런 게 관용입니다.

옛날 중국의 홍문이라는 곳에서 잔치가 열렸습니다. 번쾌라는 장군이 연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촛불이 꺼졌습니다. 그 틈을 타서 장수 하나가 번쾌 장군의 여자의 젖통을 만졌습니다. 이 여자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깜깜하니까 누가 누군지 모르잖아요? 여자는 그 남자의 투구 끈을 끊었습니다. 그러고는 번쾌 장군에게 살짝 말했습니다. “이 끈의 주인이 제 젖을 만졌습니다. 알아서 처리하시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번쾌는 촛불을 켜지 못하게 하고 모두 투구 끈을 끊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상관의 여자와 옷깃만 스쳐도 무사하지 못할 판에, 가슴까지 만졌으니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비명을 지르거나 사건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남자의 귀에 대고 살짝 말했습니다. 정말 현명한 여자였습니다. 만일 여자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일은 엄청나게 커졌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모든 사람의 투구 끈을 자르도록 한 번쾌 장군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잘못을 저지른 이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발휘된 번 장군의 아량을 보았을 것이고 그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관용을 베풀면 큰 인물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자신의 뜻,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 감사하십시오!

셋째, 빌립보서는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이 문 앞에 찾아와서 살림에 보태라며 돈 십만 원을 주었습니다. 집 주인은 황공해서 안 받겠다고 했지만 손님은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하면서 돈을 주고 갔습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찾아와서 돈을 주고 갔습니다. 그렇게 몇 주일을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돈을 주고 갔습니다. 하루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다. ‘웬 일이지?’ 하면서 밖을 내다보는데, 그 사람이 옆집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요, 여기!” 하면서 큰 소리를 질렀지만, 그 사람은 다른 집에다가 돈을 주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매일 받던 돈을 받지 못하자 집 주인은 화를 내면서 돈을 주던 그 사람을 욕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 오강남, ≪움겨쥔 손을 펴라≫((주)위즈덤하우스, 2008), 184쪽. 이런 일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요약합니다. “호의가 반복되면 상대는 그것을 권리로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호의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잘 감사하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 무한정 마실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있다는 것, 병원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몸이 있다는 것, 그리고 비록 지지고 볶으며 살지만 어려울 때 함께 있을 수 있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 다는 아니더라도 이 가운데 몇 가지는 우리가 무심코 누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몇 주 전에 제가 차를 몰고 가다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형곡초등학교에서 큰길로 나가서 시청 쪽으로 가려면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곳에 횡단보도가 있지 않습니까? 마침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 불이라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잠시 멈추어 서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차를 한쪽으로 비켜 세워놓고 내려 보니 뒤차가 제 차 뒤 범퍼를 박은 것이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해보니 뒤차 앞 범퍼에는 상처가 좀 나 있었지만 제 차는 멀쩡하기에, 양쪽 차 사진을 찍어두고 상대 차 운전자 전화번호를 받아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한 일주일째 아무 문제가 없어서 그걸로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SNS에 올렸더니 어떤 친구가 말하기를 한 턱 내라는 겁니다. 왜요, 했더니 그렇게 사고가 났는데 차도 안 다쳤고 사람도 멀쩡하니 감사할 일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지요. “한 턱 낼 사람은 내가 아니고 당신입니다.” “어재서요?” “당신 차는 그런 사고조차도 안 났으니 그렇지요.” 그러면서 같이 웃었습니다만,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해나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산소호흡기 없이 숨을 쉬고 산다는 것, 저녁이 되면 들어가 잠잘 곳이 있다는 것, 때가 되면 먹을 것이 있다는 것, 그것도 골라서 먹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 맺는 이야기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뻐하면 기쁜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관용을 베풀면 마음이 더 넓어집니다. 더 많은 여유가 생깁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날마다 쏟아져 나옵니다. 빌립보서 4:4-7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드리면서 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기뻐함으로써, 관용을 베풂으로써, 그리고 감사함으로써, 여러분의 소망을 하나님 앞에 아뢰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복을 내려주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61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60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59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258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257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56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255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54 생명의 영이시여, 온 세상을 살리소서!
253 2009 성경공부를 시작하며
252 "주님을 자랑하라!"
251 이런 새해가 되게 하소서!
250 "날을 세는 법"
249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48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247 주여, 이 땅을 고쳐 주옵소서!
246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
245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는 교회
244 우리 가정이 번성하게 해주십시오!
243 제때에! 알맞게!
242 오직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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