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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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32:16-20 
설교일 2013-01-06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송구영신 

■ 성서 본문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비록 삼림이 우박에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도,)
씨를 뿌리는 곳마다 댈 물이 넉넉하고,
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소와 나귀를 놓아 키울 수 있으니,
너희는 복이 있다.

<이사야서 32:16-20>


■ 들어가는 이야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희망과 꿈을 가득 담고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 위에,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풍성하고도 세차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올해 우리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의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새해의 기도 제목을 이것에 어울리게 정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

■ 생명의 하나님

먼저, ‘생명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말씀드리기를, 우리 속에는 늑대가 두 마리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늑대들이 우리 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한 마리는 낙심의 늑대이고, 다른 한 마리는 희망의 늑대입니다. 한 마리는 살림의 늑대이고, 다른 한 마리는 죽임의 늑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한 마리는 기운을 얻고 한 마리는 힘이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늑대가 힘을 얻으면 나에게 생명력이 넘칩니다. 그 생명력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그 생명력이 그 옆에 있는 사람에게 또 전해지고, 또 전해지고 하면 우리 교회에, 우리 지역에, 우리나라에, 마침내 온 세상에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반대로 내 안에 있는 죽음의 늑대가 힘을 얻으면 세상은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생명의 기운이 있고, 죽음의 기운이 있습니다. 또한 희망의 기운이 있고 절망의 기운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어느 기운을 성하게 할 것인가, 이것은 ‘나’에게서부터 출발합니다. 이 ‘기운’을 성서적으로 말하면 ‘영’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생명의 영’과 ‘죽음의 영’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영이 힘을 얻으면 전쟁과 살인과 싸움과 미움과 시기와 파괴가 판을 칠 것입니다. 반면에 생명의 영이 힘을 얻으면 평화와 부드러움과 사랑과 용서와 따뜻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망의 영을 찾지 않으면 사망의 영이 힘을 얻지 못합니다. 사망의 영 앞에서 기웃거리지 않고, 우리가 힘껏 생명의 영을 부르면 생명의 영, 곧 생명의 기운이 온 세상을 휘감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생명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많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등등, 이 가운데서 저는 단연코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낱말에 다른 모든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랑도, 정의도, 평화도, 생명을 살리는 것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의의 일꾼

누차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손발이 없습니다. 팔다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의의 나라를 만드시고 싶어도 일꾼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평화의 나라를 만드시려고 계획을 하셔도 일꾼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구상 선생이 쓰신 작품 가운데 “출애굽기 별장(別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각설(却說), 이때에 저들도 / 황금의 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 // 믿음이나 진실, 사랑과 같은 / 인간살이의 막중한 필수품들은 / 낡은 지팡이나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 서로 다투어 사람의 탈만 쓴 / 짐승들이 되어갔다. // 세상은 아론의 무리들이 판을 치고 / 아예 노예근성이 꼬리를 쳤다. // 그 속에도 시나이산에서 내려올 / 모세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 외롭지만 있었다. // 자유의 젖과 꿀이 흐르는 / 가나안! / 후유, 멀고 험하기도 하다.” ― 구상, 《홀로와 더불어》(황금북, 2002), 43쪽.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읽었을 때, 굉장히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구절입니다. “외롭지만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복지세상을 향하여 히브리 민족은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인도하던 모세가 사라졌습니다. 몇 날 며칠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꿈을 접었습니다. ‘모세고, 하나님이고, 이제 필요 없다. 우리를 인도할 신이 필요하다,’ 이렇게 주장하며 사람들은 아론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아론은 여론에 밀려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금송아지에게 경배했습니다. 이런 와중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이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외롭지만 있었습니다. 남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대세를 따르지 않고, 정의의 길, 곧 하나님의 뜻을 택해서 그 길을 갔던 사람들! 어느 시대든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외롭지만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늘 대세를 따라 다니며 희희낙락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좁은 문이지만, 험난한 길이지만, 외롭지만, 정의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 평화의 일꾼

이사야서 60장 18절 말씀입니다. “다시는 너의 땅에서 폭행 소문이 들려 오지 않을 것이며, 너의 국경 안에서는 황폐와 파괴 소문이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의 성벽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너의 성문을 ‘찬송’이라고 부를 것이다.” 폭행이 없는 세상, 황폐함이 없는 세상, 파괴가 없는 세상, 이런 세상이 평화의 세상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평화의 세상은 어떻게 해야 오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지요.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이시라면, 우리는 평화의 제자들입니다. 평화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우리의 ‘소명’입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가 참 평화로워 보입니다. 사진이나 그림에서 많이 보셨지요. (사실 ‘백조’는 우리말로 ‘고니’라고 합니다만, 어쨌든) 물 위에 떠 있는 백조는 우아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게 물 위에 떠 있기 위해서는 물속에서 쉬지 않고 두 발을 움직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촌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살지요. 가끔씩 이웃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합니다만, 평소에는 대체로 조용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집집마다 걱정 없는 집이 어디 있고 다툼 없는 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솥단지 깨지는 소리, 냄비뚜껑 날아가서 부딪치는 소리를 자주 안 들어도 되는 것은, 그 집의 누군가가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죽을힘으로 애쓰는 식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디선가 어떤 사람들이 쉼 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말을 듣지요. “누군 입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속에서는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하여 입을 다물고 있을 줄 아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그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노력해서 이루어놓은 평화를 누리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부족하지요. 우리가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할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평화’를 생각하면서 함께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 노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평화를 위해서, 물밑에서 열심히 발을 젓고 있습니다.

■ 맺는 이야기

이사야서 32:17-18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의의 열매, 곧 정의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정의는 평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지 못하는 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세상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일, 그럼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 그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 한 해 힘을 모아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이 생명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와 평화의 일꾼이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62 이런 새해가 되게 하소서!
261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60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59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258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257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56 온 생명을 충만케 해주십시오!
255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54 생명의 영이시여, 온 세상을 살리소서!
253 2009 성경공부를 시작하며
252 "주님을 자랑하라!"
251 이런 새해가 되게 하소서!
250 "날을 세는 법"
249 이런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48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247 주여, 이 땅을 고쳐 주옵소서!
»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써 주소서!
245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로워지는 교회
244 우리 가정이 번성하게 해주십시오!
243 제때에! 알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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