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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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2:3-6 
설교일 2006-05-07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가정 


■ 성서 본문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이사야서 12:3-6)


■ 들어가는 말씀

인터넷 블로그를 뒤지다가 가슴 뭉클한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자연을 찾아 시골로 내려간 아주머니인데, 이름은 이영희 씨라고 들었습니다. 블로그 대문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추구하며!” 우리가 쓰는 물건이 거의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것인데, 거기서 좀 벗어나서 웬만하면 손으로 만들어서 쓰자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이 분이 쓴 글 중에 “물 긷는 아낙”이란 글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아침마다 나는 물을 길러 온다. 멀지는 않지만, 귀찮기도 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우선 창문부터 열지만, 물 긷는 일이 아니라면, 싱싱한 아침 공기를 그렇게 푸욱 들여 마실 수는 없을 거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물 길러 가면서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오늘 하루를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도 여자들이 물을 길러온다. 하루 종일 걸려 물을 길러온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기도 어렵다고 한다. 샘터 가까이에 살면 왜 안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사정이 있겠지…. 쩝. 그 먼 길을 물 길러 다녀오는 동안,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무수히 성폭행을 당한다고 한다. 생명의 물을 얻기 위해 나선 길에, 생명의 할큄을 겪는다.

이 얘길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분통이 터지던지…. 나는 아침마다 물을 길러오면서, 때로 아프리카의 물 긷는 어린 소녀들을 생각한다. 오늘은 비님 오시는데… 나는 새벽부터 세탁기를 돌리면서, 물을 펑펑 쓰고 있다. 평화를 위해선 평등이 있어야 하거늘, 세상은 그것을… 허락지 않는 것 같다.[http://blog.naver.com/nearzoo/140017134689]


오늘 아침,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수도꼭지를 틀어서 냉수와 온수를 펑펑 쓰고 왔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무심코 써대는 물을, 지구상에 사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힘겹게 구해서 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소녀들처럼 성폭행을 당해가면서 하룻길을 걸어서 길어오기도 해야 하는 것이 ‘물’입니다.

오늘 구약성서 본문에서 이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이사야서 12:3). 전쟁이 나면 먹을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물입니다. 이스라엘 같은 척박한 땅에서는 그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합니다.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물을 구해야 하는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물이 곧 구원입니다. 그야말로 ‘물 쓰듯이’ 물을 펑펑 써대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오늘, 저는 우리 삶을 ‘물’에 비유해서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다” 우리는 목마르지 않는 삶을 누려야겠습니다. 기쁨으로 물을 긷는 행복한 삶을 누려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1. 먼저, 물의 근원, 곧 생명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옛날에는 우리 조상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먹었습니다. 보통은 마을 어귀에 있는 공동 샘물을 이용했고, 좀 먹고 살만한 짐에서는 마당에 샘을 파서 물을 길었습니다. 그런데 샘이란 것이 아무 데나 판다고 다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물길이 있는 지점에서 땅을 파야 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물길이란 어디서 오는 겁니까? 물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니까, 그것들이 모여서 맥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모인 물을 우리가 땅을 파서 길어 먹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물을 공급해주시지 않으면 백 날 땅을 파봐야 물을 구할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을 먹으니까, 물이 그저 돈만 주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삽니다만, 그것도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샘물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낙동강 물을 먹고 사는데, 낙동강이 처음부터 낙동강이 아니었지요. 이 산, 저 산에서 땅과 나무들이 머금고 있던 물이 흘러, 흘러, 모여서 강을 이룬 것입니다. 그게 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이지요.

세상에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망발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그 사람들도 다 물을 먹고 삽니다. 어제 봄비가 많이 내렸지요? 비는 구름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구름은 어떻게 해서 생깁니까? 땅이나 강이나 바다에서 습기가 올라가서 그것이 수증기가 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구름이 되지요. 수증기가 양이 많아져서 무거워지면 땅으로 떨어지는데, 그것이 비 아닙니까? 그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서 땅이 머금고, 나무가 머금고 있다가 다시 지하수가 되고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됩니다.

만일 이런 순환 시스템이 없다면 사람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잠시도 살 수 없습니다. 새로운 물이 이렇게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 물을 쓰기만 한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화장실에서 내려가는 물, 주방에서 버리는 물,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흘러 보내는 땟국 물, 축사에서 내려 보내는 똥물, 공장에서 방출하는 폐수…. 이런 물이 그냥 그대로 고여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자연의 품에 안겨서 정화 시스템을 한번 걸러서 나오면 다시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로 완전히 바뀌어 나타납니다. 이 얼마나 신기한 기적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그냥 자연의 법칙이라고요? 그러면 그 자연의 법칙은 어디서 생겼습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교만하기 때문에 세상을 오염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모든 만물을 제대로 움직이게 만들어놓으시고, 지금도 그렇게 움직이게 하시는데,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습게 여기는 것, 그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졸거나 주무시면 세상에 생명이 붙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그 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사람은 물 한 모금을 마실 때도 밥 한 톨을 목구멍으로 넘길 때도 감사가 넘칩니다. 그게 바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2. 그 다음, 우리는 물의 근원, 곧 생명의 근원에 대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윗물을 존중해야 합니다.

십계명에 보면 처음 세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네 번째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안식일에 관한 계명입니다. 다섯 번째부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에 관한 계명인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출애굽기 20:12). 이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거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오래 오래 복 받고 잘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출애굽기 20장에 이어서 나오는 십계명 시행령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부모를 때린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15).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17).

부모에게 거역하는 인간은 ‘반드시’ 사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목사님 또 고리타분한 소리 한다. 그거 다 옛날 사람들이 가부장 시대에 만들어 놓은 법을 가지고…. 그게 요즘 세상에 통합니까?” 이렇게 반문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옛날 사람들이 만든 법이라고 해서 무시할 법은 없습니다. 물론 악법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성경에 실려서 수천 년이나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던 법이라면,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도 “부모에게 거역하는 놈은 모조리 잡아 죽여라!” 하고 곧이곧대로 시행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이유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거역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거역’(拒逆)한다고 할 때 ‘거’ 자는 막을 거, ‘역’ 자는 거스를 역 자입니다. 이거 다 물에 관한 용어이지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이게 거꾸로 돼서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시대가 온다면, 이 법의 정신도 바뀌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한, 부모를 거역하는 죄는 중벌로 다스려야 합니다.

좀 생뚱맞은 이야기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타임머신’ 이야기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화 같은 데서 자주 나오는 게 타임머신인데, 사람이 기계를 타고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하는 것을 상상해서 만든 가상의 이야기지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게 과학의 정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 타임머신을 타고 한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연히 어떤 사람을 만나서 다투게 되었고, 칼부림까지 나게 돼서 본의 아니게 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총각시절의 자기 아버지라면, 문제가 어떻게 됩니까? 총각 시절의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아버지는 결혼도 못할 것이고, 결혼을 못 했으니, 당연히 자식도 못 낳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이것은 그야말로 ‘모순’이지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제 방향으로 흐르는 물을 거스를 때 이런 무지막지하게 말도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비록 타임머신을 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와 자식, 어머니와 자식은 동시대에 흐르는 물입니다. 윗물이 없으면 아랫물도 없습니다. 윗물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곧 아랫물에도 동시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뿌리입니다. 나무에게 있어서 뿌리가 살아 있는 것과 뿌리가 죽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뿌리가 살아 있는 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지만, 아무리 잎이 무성하다고 하더라도 뿌리가 죽은 나무는 머지않아 죽을 나무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어린이 여러분, 그리고 청소년 여러분, 지금 당장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부모가 오늘 동시에 죽어 없어진다면, 여러분은 행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밖에 나가서 귀하게 대접을 받고, 어린이로서, 청소년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뿌리인 부모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모가 없는 자식을 가리켜 끈 떨어진 연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지금 사라진다면 여러분은 뿌리 없는 나무가 되는 겁니다. 끈 떨어진 연이 되는 겁니다.

이건 나이 많은 장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40, 50이나 된 사람이 자기 부모가 늙어서 죽었을 때 왜 그렇게 서럽게 웁니까? 왜 그렇게 땅을 치고 통곡을 합니까? 그렇게 중늙은이까지 된 사람들이 왜 골방에 들어가서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까?

“우리 부모가 왜 죽어? 아직 펄펄하기만 하구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그것은 곧 부모를 죽이는 일입니다. 총으로 쏘거나 칼로 찔러 완전히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부모를 죽이는 일입니다.

■ 맺는 말씀

오늘 저는 두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말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의 윗물이요 우리의 뿌리인 부모를 존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이 어버이주일이니까, 두 번째 문제, 부모를 공경하고 어른을 존중하는 일에 대해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 로마의 키케로(Cicero, Marcus Tullius, BC 106~BC 43.12.7)라는 분이 “노인의 명예”에 관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얼핏 보기에 하찮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노인에게는 명예를 의미한다네. 아침 인사를 받는 것, 예방(禮訪)을 받는 것, 길을 양보 받는 것, 이쪽에서 다가가면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 광장에 오갈 때 호위를 받는 것, 조언을 부탁 받는 것 등 말일세. 이런 관행들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도덕 수준이 높을수록 더 꼼꼼히 지켜진다네.”[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천병희 역),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숲, 2005), 74쪽.]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노인을 존중하는 것은 간단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키케로의 말을 빌어서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몇 가지만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드리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부모님의 하루의 삶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부모님이 멀리 계시다면, 자주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십시오. 가능하다면 하루에 한 번씩은 전화를 드리십시오.

▶부모님이 방에 들어오실 때는 일어서서 예를 표하십시오. 그것이 예절의 기본입니다.

▶부모님을 호위해 드린다는 심정으로 함께 길을 가십시오. 여러분의 부모님은 한없이 든든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에게 조언과 도움을 부탁드리십시오. 그러면 어려분의 부모님들은 자식 키우느라고 고생했던 모든 괴로움을 잊어버리실 것입니다.
242 오직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241 일어나, 화해의 대로를 열게 해주십시오!
240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239 매순간 예수님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238 메리 크리스마스!
237 서울의 별, 베들레헴의 별
236 별을 보는 사람들
235 터질듯 한 벅찬 가슴
234 내 안에 계신 예수님
233 예수님의 신부
232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평화
231 아기야, 칼이 되어라!
230 베들레헴의 작은 길
229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
228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227 예수님처럼
226 촛불 네 개
225 동방에서 온 박사들
224 "나에게 두려움 없다!"
223 방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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