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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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가복음서 10:13-16 
설교일 2007-05-06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가정 


■ 성서 본문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마가복음서 10:13-16)


■ 들어가는 말씀

어제 낮에, 잘 아는 분 자제의 결혼식이 있어서 예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젊은 남녀가 만나서 새 출발을 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복스럽습니다. 그것은 늘 보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어제가 어린이날이기도 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새삼 느낀 점 하나는, 결혼식장에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동네에서 이른바 ‘구식 결혼식’을 구경할 기회가 꽤 여러 번 있었습니다. 결혼식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굿을 해도 그렇고, 잔치가 열려도 그렇고, 무슨 ‘껀’만 있으면 제일 먼저 몰려드는 것이 어린이들입니다. 풍물패가 동네를 돌아다니면 제일 신나게 따라다니는 것이 어린이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제일 천덕꾸러기들이 어린이들입니다. “이 놈들아, 저리 못 가?” 하면서 어린이들을 쫓는 일이 다반사였지요.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병을 고친다, 기적을 행한다, 하니까 아이들이 제일 신기해할 것 아니에요? 모르긴 해도,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아이들이 버글버글 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런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리가 없습니다. 혼자, 또는 자기들끼리 온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따라온 아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접근해서 축복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옆에 있던 제자들이 야단을 쳤습니다. 아이들 단속 좀 잘 하라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좀처럼 화를 내시지 않던 예수님이 노발대발 화가 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마가복음서 10:14). 어린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어린이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인가? 저는, 거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첫째, 그들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를 재미있게 잠깐 봤습니다. 그런 저를 보더니 옆에 있던 딸아이가 픽 웃었습니다. 어른이 왜 그런 것을 보느냐, 그런 뜻이겠지요. 이게 통념입니다. 어른들은 만화를 잘 안 보지요. 아마도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아주 재미있게 봅니다.

어른들은 대개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바쁘니까 그렇겠지요. 그러나 어린이들은, 책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를 재미있게 봅니다. 그것은, 어린이들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어린이들은 꿈으로 간직합니다.

요셉이 꿈을 꿨지요. 형들과 함께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셉이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습니다. 형들이 생각할 때 ‘말도 안 되는’ 꿈이었지요. 얼마 뒤에 요셉이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요셉에게 절을 했습니다. 옆에서 듣던 아버지가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창세기 37:10).

중요한 대목은 그 다음에 있습니다. 창세기 37장 11절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아이들이 가끔 허황된 소리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종종 하지요. 이 때 어른들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 정신이 이상해서도 아니고, 엉뚱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의 아버지는 참 현명했지요. 형들이 있으니까 야단은 쳤지만, 요셉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그랬습니다. 소년 예수가 성전을 자기 집이라고 하며, 집에도 오지 않고 거기 붙어 있을 때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면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서 2장 51절에 보니까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했습니다.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대한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어린이들이 그런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려면, 요셉의 아버지나,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마음에 간직’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 둘째, 그들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참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말씀을 깊이 있게 연구한 분이었습니다. 이 양반이, 오늘 신약성경 본문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왜 어린이를 순결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런즉 어린이에 있어 순결한 것은 그 지체의 여림이지 그 심지가 아니옵나이다. 일찌기 나는 어린이가 질투하는 것을 목격하고 체험하였습니다. 아직 말도 할 줄 모르는 것이 제 젖을 먹는 애를 보자 눈을 부라리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 아우구스띠누스(최민순 역), 《고백록》(성바오로 출판사, 1979), 9쪽.

아이들이라고 다 천사가 아닙니다. 인간 세상에 섞여서 사는 이상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을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순결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여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도덕생활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76장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날 때, 그는 부드럽고 약하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 굳어지고 강하다. 수많은 사물들이 자랄 때, 풀과 꽃들이 자랄 때, 그들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그러나 그들이 죽을 때, 그들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진실로, 강하고 딱딱한 것은 죽음의 동반자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생명의 동반자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복음서 5:5). 여기서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은, 부동산 투기를 해서 땅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땅을 차지한다는 말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온유하기 때문에, 연약하기 때문에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땅을 차지한다.’ 이것은 한자어로 써보면 ‘여지(餘地)가 있다’는 것이지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식물들도, 죽어갈 때쯤 되면 굳어집니다. 동물들도 죽으면 뻣뻣해집니다. 그러나 새싹이 날 때 보면 얼마나 연약합니까? 얼마나 부드럽습니까? 사람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근육도 딱딱해지고 뼈도 굳어집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드럽습니다. 비록 연약하지만, 유연합니다.

■ 셋째, 그들에게는 놀라운 집중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듣지요. 그런데 아이들을 말 잘 듣는 아이로 키우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바보 만드는 지름길이에요. 아이들이 한참 재미있게 놀이를 할 때 보면 옷 버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직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듣습니다. 부모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 말에 불순종하는 못된 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 안 듣는 아이는 집중을 잘 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거꾸로 생각하지요. 엄마의 말대로 잘 움직이는 아이가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스스로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엄마입니다. 아이를 노예로 만들기 딱 좋은 엄마입니다. 아이들이 집중할 때는 집중하는 것을 도와줘야 합니다.

아이들을 보고 흔히 주의가 산만하다고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딴 짓하는 아이가 있다고 합시다. 선생님이 볼 때는 자기 말에 귀를 안 기울이니까 주의가 산만하다고 낙인을 찍지만, 아이 편에서 볼 때는 그게 아닙니다. 지금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자꾸 자기를 묶어두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오늘날의 ‘교육’이라는 것이지요.

자, 그러면 집중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어린이가 집중력이 있다는 것과, 어린이가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은 무슨 관계이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지요(마태복음서 5:3). 마음이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찾고 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서 5:6).

배가 고파서 빡빡 울면서 젖을 찾는 아기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찾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아이의 집중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다른 말은 아무것도 안 들립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 줘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직 젖을 물려야 해결이 됩니다. 어린이의 이런 집중력이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자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오늘도 저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상당히 여러 번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지상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이 세상 역사가 끝나는 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만, 우리가 지금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우리들의 일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곧 행복한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인가? 어린이 같은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린이처럼 되면 됩니다. 어린이 같이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오늘 저는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꿈을 우리는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꿈도 어린이는 꿀 수 있습니다. 어린이 같은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 꿈이 황당하지 않습니다. 현실이 되는 꿈입니다. ▶둘째, 연약한 모습, 곧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다고 한탄하지요.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실망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른들의 생각입니다. 어린이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셋째, 뒤 돌아보지 않는 집중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사람에게 맡기고 나를 따르라, 하셨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꿈을 가집시다. 유연해집시다. 집중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 행복의 나라, 기쁨의 나라, 감사의 나라는 우리 차지가 될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어린이와, 어린이를 주님 안에서 양육하는 부모님들과, 어린이의 심성을 회복하기 원하는 우리 모든 사람 위에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241 일어나, 화해의 대로를 열게 해주십시오!
240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239 매순간 예수님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238 메리 크리스마스!
237 서울의 별, 베들레헴의 별
236 별을 보는 사람들
235 터질듯 한 벅찬 가슴
234 내 안에 계신 예수님
233 예수님의 신부
232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평화
231 아기야, 칼이 되어라!
230 베들레헴의 작은 길
229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
228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227 예수님처럼
226 촛불 네 개
225 동방에서 온 박사들
224 "나에게 두려움 없다!"
223 방은 없었지만…
222 "빛 가운데로 함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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