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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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7:1-4 
설교일 2013-06-23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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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일들을 일으키는 사람은 화가 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큰 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 주어라. 그가 네게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하오' 하면, 너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

<누가복음서 17:1-4>


■ 들어가는 이야기

엊그제 21일이 하지(夏至)였습니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었지요. 그날부터 낮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더위가 본격적으로 맹위를 떨치겠지만, 그건 땅에 남아 있는 열기 때문이고, 사실은 그날부터 가을이 시작된 겁니다. 이제부터 더운 것은 태양이 뜨거워서가 아니라 땅이 뜨거워서입니다. 아무튼 이 여름과 잘 친해져서, 이번 가을에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크게 결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금부터 63년 전, 요즘처럼 무덥던 6월의 마지막 주일 새벽에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만 3년을 처절하게 싸웠지요. 그런데 그 전쟁의 상처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은 6월 25일을 앞둔 주일을 ‘민족화해주일’로 정하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 죄

민족의 화해를 말하기에 앞서서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참 인자한 분이지요. 웬만한 것은 다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결코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하신 죄가 단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마태복음서 12:31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무슨 신성 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그들은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도 용서해주셨습니다. 살인강도 짓을 하다가 십자가 위에서 처벌을 받는 남자도 용서해주셨습니다. 물론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죄를 뉘우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또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온전하게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기본이념은 ‘약자 보호’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서 17장의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큰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져 죽어라!” 하셨습니다. 그냥 나가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물에 빠져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목에다가 맷돌을 달고 빠져 죽으라고 했습니다. 행여 물위로 떠오를 수도 있으니, 단단히 조치를 해서 확실하게 죽으라는 것입니다. 직접 “죽어라!”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그렇게 죽는 것이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거나 이거나 같은 말이지요. 도대체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누가복음서 17장 2절입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큰 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성경 각주에 잘 나와 있습니다. ‘죄 짓게 하는 사람’입니다. 잘났든 못났든 남을 죄 짓게 하는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이겁니다.

■ 용서

여기서는 남을 죄 짓게 하는 것이 큰 죄라고 했지만, ‘남을 죄 짓게 하는 것’은 ‘남을 죄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파스칼이 쓴 ≪팡세≫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밖에는 없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의인들과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죄인들.” ― 파스칼(김형길 역), ≪팡세≫(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341쪽. 세상에 큰 죄들이 많지만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남들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큰 죄 중에 큰 죄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하나님의 딸들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아들딸들을 두고 ‘나쁜 놈’ ‘나쁜 년’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내 눈에는 아무리 밉게 보여도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마태복음서 5:22에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형제자매를 욕하는 것이 도덕적으로도 나쁜 일이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감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쁜 짓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늘 착각하고 삽니다. 자기는 옳고 남은 다 틀린 줄 알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늘 옳은 줄 알고 삽니다. 우익이나 좌익이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머릿속에 ‘반공’ 이념이 세뇌돼서, ‘공산주의’ 하면 무조건 때려잡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 대화

이래서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남과 북은 5천 년이나 이어온 한 민족입니다. 북쪽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의 형제자매들이라는 말입니다.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할 뿔 달린 괴물들이 아니라 우리와 한 피를 나눈 거레입니다. 남이 북을 욕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북이 남을 욕하는 것도 성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됐으니 네가 먼저 머리 숙이고 와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누가복음서 17:4-5에서 예수님은 또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 주어라. 그가 네게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하오’ 하면, 너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는 “형제가 죄를 짓거든”이라고 했지만, 사실 예수님께서 쉽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형제가 죄를 지었다고 네가 생각하거든”이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속뜻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네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찾아와서 잘못됐다고 하거든 용서해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서에 보면 이보다 더 어마어마한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마태복음서 18:22). 이게 무슨 뜻입니까? 숫자를 세서 7×70=490, 딱 그만큼만 용서하라는 말입니까? 아니지요. 무한히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건 결국 ‘너는 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네가 판단하지 말고 너는 무조건 용서하라’ 이겁니다. 이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하고 말고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니까, 너는 문제 삼지 말고, 그 사람이 대화하자고 하면 무조건 응해라, 이런 겁니다.

■ 맺는 이야기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부터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잘했고 너희는 잘못했으니, 너희는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 하는 자세로 나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근 남북대화를 약속했다가 깨졌습니다. 대화 상대의 격이 안 맞네, 하는 것이 이유라고 하지만, 근본 문제는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백 번, 천 번, 내가 옳고 저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더라도 반드시 거꾸로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내가 나쁜 놈이고 저 사람이 옳을 수도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너는 잘못했고, 나는 잘했으니까 내가 너를 용서할게!’ 이것은 교만입니다. 맷돌 짊어지고 바다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42 오직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241 일어나, 화해의 대로를 열게 해주십시오!
240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239 매순간 예수님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238 메리 크리스마스!
237 서울의 별, 베들레헴의 별
236 별을 보는 사람들
235 터질듯 한 벅찬 가슴
234 내 안에 계신 예수님
233 예수님의 신부
232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평화
231 아기야, 칼이 되어라!
230 베들레헴의 작은 길
229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
228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227 예수님처럼
226 촛불 네 개
225 동방에서 온 박사들
224 "나에게 두려움 없다!"
223 방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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