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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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야고보서 1:2-4 
설교일 2013-02-24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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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본문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보서 1:2-4>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드리는 ‘진급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지나고 3월이 되면 우리 교회에서도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거나 생애 첫 일자리를 얻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침 올해는 초ㆍ중ㆍ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세 사람이 대학에 입학을 하고 한 사람이 취업을 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성공적으로 인생의 한 단계를 잘 마무리하고 새 출발을 하는 이 네 사람과, 이 사람들을 이렇듯 훌륭하게 키워내신 부모님들과 가족들, 그리고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 함께 기도하며 후원한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빌며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이야기의 제목을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붙였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야고보 사도의 말입니다. ‘성숙한 사람!’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생각도 깊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 힘든 일이 생기거든 기뻐하십시오!

‘성숙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야고보는 이렇게 서두를 꺼냅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야고보서 1:2). 여기서 우리말로 ‘시험’이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인데요, 원래 ‘유혹’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할 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거기서 쓰인 낱말입니다. 예수님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야고보는 시험 곧 유혹에 빠지면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사실 예수님의 말씀과 야고보의 말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유혹이 왔을 때, 거기에 빠져버리는 것은 안 되지만,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서 그것을 이겨낸다면 기쁘지 않겠는가,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문맥을 보면 여기서 야고보가 사용한 ‘유혹’이란 말은 ‘시련’이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유혹의 경우도 그렇지만, 시련이 왔을 때 그것을 이겨낸다면 그 뒷맛이 얼마나 짜릿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어느 신병 훈련소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은 어머니가 날 낳으실 때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메고 있는 군장의 무게는 아버지의 어깨보다 가볍다”(트위터에서 @scqwer36 님의 글. 2013.2.16. 19:44).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아마도 군대 문제일 것입니다. 엄청난 시련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웬만하면 안 가고 싶은 곳이 군대입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김대중 정부 때부터 15년 동안 총리후보자와 그 아들 35명의 병역사항을 조사해봤더니 민주당 정권에서 총리와 아들 중 면제 비율은 15.8%였고, 새누리당(한나라당) 정권에서는 면제 비율이 무려 46.1%나 됩니다. 새누리당 정권의 경우 거의 반 정도가 면제를 받은 셈이지요. 이번 새 정부 국무위원 후보자들도 본인이나 아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말썽이 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요, 교육부장관으로 내정된 서 아무개 씨 같은 경우, 1975년에 신체검사를 받을 때 양쪽 눈의 시력이 모두 0.5였고, 거기다가 색깔을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색맹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충역 판정을 받았지요. 그런데 4년 뒤인 1979년, 공무원으로 임용될 때 자료를 보면 색맹이 아니라 색약으로 나왔고, 시력도 각각 1.2와 1.5였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그림이 보이지 않습니까?

■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꼼수를 써서 시련을 회피했던 사람들은 요즘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힘든 세월을 보내기는 했지만, 정상으로 병역을 필한 사람들은 떳떳하게 활보할 수 있습니다. 시련을 이겨낸 보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들에게 덕이 되지 않는 일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시련이 오거든,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쁘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창조해놓으신 원리를 보아도 이 말씀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사람의 몸을 보면 뼈대가 몸 안에 있지요? 그리고 그 뼈대를 근육과 피부가 감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곤충이나, 가재나 게 등 갑각류(甲殼類) 동물들을 보면 뼈대가 겉에 있습니다.

그러면 뼈대가 몸 안에 있는 것이 나을까요, 겉에 있는 것이 나을까요?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뼈대가 몸 바깥에 있는 것들은 몸 겉이 꼭 껍질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게 외부의 위험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지요. 그런 것들의 경우 살은 껍질 속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살은 대개 물렁물렁하고 거의 액체 상태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그 껍데기를 뚫고 외부에서 어떤 뾰족한 것이 들어오게 되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입니다. 그런 반면, 뼈대가 몸 안에 있으면 물렁물렁한 살이 외부의 모든 위험과 맞닥뜨립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상처가 생깁니다. 그렇지만 이 약점이 곧 장점이기도 합니다. 손이나 발에서 보듯이, 우리 살은 액체상태가 아니라 근육 형태를 띱니다. 섬유질의 저항력이 상당히 커지지요. 살이 진화하는 것입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416쪽. 생각 같아서는 사람도 겉이 단단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뼈대를 속에 두셨다는 게 뭘 말하겠습니까? 시련을 잘, 그리고 오랜 시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사람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피부는 웬만큼 찔려도 금방 회복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픔’의 복도 주셨기 때문에 더 심하게 다치지 않도록 피할 수도 있습니다. 설령 아픔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그 아픔이 사라지기까지 거기에 집중할 수 있지요.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주신 안전장치입니다.

■ 기다리며 관찰하십시오!

이제 ‘기다림’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남성들에게 물어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여자를 대하는 일’ 또는 (표현이 마땅하지는 않지만) ‘여자 다루기’라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자들의 마음은 파상적(波狀的)이라고 합니다. 물결처럼 움직인다는 말이지요. 기분이 잘 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옆에 있는 여자의 기분이 꿀꿀해지면, 함께 있는 남자는 당황합니다. 어떻게든 빨리 문제를 해결해서 여자의 기분이 더 저조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은 여자들이 맨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자들이 그렇게 하면, 여자들은 다시 올라오기 위한 발판을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심연 속을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여자가 삐져 있거나 불평을 하는 것은, 남자보고 자기가 추락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그저 자기 말을 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자는 자기가 끝까지 내려갔다가 바닥을 디디고 다시 올라올 때까지 지켜보며 참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멍청해서, 너무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자기들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람이 밀려드는 물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치고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478쪽.

이것은 여자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남자든 여자든 원리는 똑 같습니다. 우리가 열이 날 때 약을 먹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몸에 열이 나면 무조건 약을 먹으려고 하지만,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약을 먹으면 열이 내리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열을 내리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우리 몸에 열이 난다는 것은 몸이 전쟁 중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외부에서 세균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놈들을 태워 죽이려고 몸을 덥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약을 먹어버리면 우리 몸 자체의 전투력을 확 떨어뜨려버리게 되지요. 웬만하면 우리 몸이 세균과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본인이든 상대방이든 컨디션이 저하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열이 나는 것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태우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경우, 내려갔던 기운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올라갔던 열도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오히려 아무리 아파도 열이 나지 않는 몸입니다. 그리고 기분이 언제나 한결같은 여자입니다. 그건 문제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 맺는 이야기

이제 새로운 학교로 진학하는 사람들과,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사람들과, 그들을 후원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저는 유대 속담 하나를 소개해드리면서 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울어라.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 웃어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다 그렇게 내공이 높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못하지요. 시련이 오면 기뻐해야 하지만, 겁부터 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하지만, 불안해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런 때는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쏟으십시오. 그건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웃으십시오. 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열은 내려갑니다. 때가 되면 꼬여 있던 문제들이 풀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을 오묘하게 만들어 두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모두 아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모두, 시련이 오면 오히려 기뻐하고, 엉킨 일이 있으면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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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1016 먹을 만큼씩만 거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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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힘내라, 꼴찌!
1013 날 수 계산법
1012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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