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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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잠언 26:1 
설교일 2005-05-29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본문 말씀

미련한 사람에게는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마치 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과 같고,
추수 때에 비가 오는 것과 같다.

(잠언 26:1)


■ 들어가는 말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뵙게 돼서 정말 행복합니다. 모처럼 쉬는 휴일인데, 직장생활 하는 분들은 늦잠도 자고 싶었을 테고, 개인적인 일을 하시는 분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누굴 좀 만나야 할 일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디 놀러라도 가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 다 물리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모이셨으니 참 훌륭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을 이렇게 불러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참 명예로운 분들입니다.” 명예롭다고 하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 이름을 높여서 칭찬하고 기릴 만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성도로서, 주일 아침에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주님의 전에 나와서 이렇게 멋있게 예배를 올리니, ‘성도’라는 이름에 참 걸맞은 일이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명예로운 자리에, 명예롭게 참여하고 계신 겁니다.

오늘 저는 ‘영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합니다. 오늘 잠언 본문에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지요? 여기서 영예란, 영광스럽고 명예롭다는 말인데, 잠언에서는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해 말했지만, 이 시간 저는 그것을 뒤집어서 “영예에 어울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영예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마지막으로, 영예에 어울리는 사람이 어째서 행복한 사람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첫째, 영예가 어울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봅시다.

오늘 잠언 말씀에서는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해 말했는데, 어떤 사람에게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는가 하면, 한여름에 내리는 눈 같은 사람, 그리고 추수 때에 내리는 비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이 안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나라에는 한여름에 눈 올 일은 없겠습니다만,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늦은 봄이나 초가을에 서리가 내리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때 아니게 서리가 내리면 농작물이 결딴이 나지요. 추수 때 비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수 때는 곡식이 바싹 말라 있어야 하는 법인데, 추수철에 비가 계속 내리면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안 나타나고, 빠져야 할 자리에는 주책 떨며 꾸역꾸역 찾아다니는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영예가 안 어울린다는 것이지요. 영예는 관두고 어디 가서 욕먹고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영예가 어울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은 사람,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 사람에게 시원한 냉수 한 잔과 같은 사람, 병이 나서 몸져누운 사람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약과 같은 사람, 배가 고파서 죽기 직전의 사람 앞에 차려진 밥 한 상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가서 어정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나타나서 제 구실을 다하는 멋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존귀한 사람이요, 영예가 어울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면, 둘째,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우리가 가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알아봅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가 어디인지만 생각하면 우리가 어디에 가 있어야 할지 금방 답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곳, 우리가 있는 곳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도 간단합니다. 나쁜 짓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필요한 곳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이 사셨습니다. 오늘 신양성경 본문, 빌립보서 2장에 보니까, 바울 사도께서 빌립보 교회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6-8).

여기서 ‘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완전히’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사람과 같이 되셨고, 사람 중에서도 ‘종’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종이 되신 걸로도 모자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뭐가 부족하신 분입니까? 병 고치는 기적 하나만으로도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분 곁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인기 있는 분이셨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정치적인 임금도 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길로 가시는 것을 마다하셨습니다. 그분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으로 가셨고, 그분이 세상 영화를 누리는 길이 아니라 그분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 길도 그냥 쉽게 가신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하시면서 가셨다는 말입니다.

이런 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11절까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내가 필요한 곳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영예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필요로 하시는 곳, 가장 천하고 낮은 곳으로 가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가장 존귀하게 높이셨습니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어느 곳이 나에게 더 돈이 많이 들어오고, 어느 곳이 내 이름을 더 낼 수 있느냐, 생각하기 전에, 진정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 주님께 여쭈어보는 것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선택할 때, 어디로 가야 내가 좀 더 편하게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느 교회가 나의 손길을 더 필요로 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임지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로 가야 좀 더 편하게, 좀 더 대접 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느 곳의 어떤 사람들이 나의 보살핌을 더 필요로 하는가 하는 것을 따져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3. 그러면 셋째, 내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내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어째서 행복한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집니까? 옷을 잘 입으면 행복해집니까? 좋은 집에 살면 행복해집니까? 좋은 자동차를 타면 행복해집니까?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행복해집니까? 물론 이런 일들이 있으면 잠깐 동안은 행복할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주는 행복이고, 세상이 주는 행복은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못합니다. 세상이 주는 물은 금방 목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영원이 이어지는 행복입니다.

평소에는 매번 30점에서 40점으로 왔다 갔다 하며 점수를 받아오던 아이가 학교에서 70점을 받았습니다. 이 아이는 시험지를 들고 가장 먼저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칭찬해주는 순간, 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거꾸로, 엄마가 반찬을 맛있게 준비해서 밥상을 차렸습니다. 보기에도 탐스럽게 식구들이 그 밥을 맛나게 먹으면서 엄마의 요리 솜씨를 친찬합니다. 이 때 그 밥상을 준비한 주부는 누구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몇날 며칠을 고생하며 씨름하던 문제를 드디어 해결했습니다. 가장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합니다. 전화기 저쪽에서 이 소식을 들은 아내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하며 “여보, 고생했어!” 하는 음성을 듣는 그 순간이 남편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진정한 기쁨, 진정한 행복이란 어디에서 옵니까? 어떤 일을 두고 ‘내가’ 기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그 기쁨이 훨씬 더 큰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내가 수고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기뻐한다면, 이에서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필요한 곳으로 가는 것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기쁘고 더 행복한 것입니다. 거기서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맺는 말씀

지금까지 저는 영예가 어울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영예를 얻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어째서 진정 행복한 일인지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 여러분은 개밥의 도토리처럼, 필요치 않은 곳에 가서 비비적거리며 살기보다, 약방의 감초처럼, 꼭 필요한 곳에 감으로써, 영예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곳,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분을 꼭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진정한 기쁨, 진정한 행복이란 나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때 찾아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어디를 가시든지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은혜로우신 주님,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저희를 높여주는 것보다 주님께서 저희를 높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저희의 손길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감으로써,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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