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성서본문 호세아서 14:4-6 
설교일 2021-03-07 
설교장소 구미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성서 본문

 

내가 그들의 반역하는 병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겠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이제는 다 풀렸다.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릴 것이니, 이스라엘이 나리꽃처럼 피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 나무에서 가지들이 새로 뻗고, 올리브 나무처럼 아름다워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향기롭게 될 것이다.

 

호세아서 14:4-6

 

들어가는 말씀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제 봄이 되었지요. 꽃이 피기 시작하고,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완연합니다. 코로나 방역이 아직 한창이지만 그래도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일일 확진자 수가 4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지난 주일에 저는 지금이야말로 기뻐할 때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기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끊임없는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써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행복한 일상을 이어나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내 산의 엘리야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그랬는데, 여러분, 기도가 무엇인지는 다 아시지요? 하나님과의 대화 아닙니까? 대화도 종류가 많지요? 무언가 못된 짓을 해서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것도 대화입니다. 기쁨에 겨워서 서로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는 것도 대화입니다. 상대가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것도 대화입니다. 군대 지휘관이 병사들을 앞에 두고 찌렁찌렁 큰소리로 명령을 내리는 것도 대화입니다.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지만 슬픔에 짓눌려서 목구멍에서 말은 안 나오고 그저 눈물만 펑펑 쏟고 있는 것도 대화입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저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대화이지요. 하나님과의 대화가 기도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이 가운데서 어떤 대화가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하나님과 어떤 모양으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기도 하나를 보겠습니다. 엘리야 예언자 잘 아시지요?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예언자 아닙니까? 엘리야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과 한판 떴지요? 하나님과 바알 신 가운데서 누가 참 신인지 내가 보여줄게, 그러면서 제단을 쌓지 않았습니까? 바알 신을 섬기는 예언자들이 제단 앞에서 난리굿을 폈습니다. 한창 가물 때니까 비를 내려달라고 그런 거지요. 그러나 하늘에서는 일언반구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뒤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했지요. 그랬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바알 예언자들을 일망타진했습니다. ,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을 이겼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었습니다. 대결에서 졌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깨갱, 하면서 물러나야 하는데, 오히려 엘리야를 잡으라는 수배령을 전국에 내렸습니다. 저놈 죽여라, 그거였지요.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어느 동굴 속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

 

엘리야가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는데, 이게 뭡니까, 저는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잠깐 기다려 봐, 내가 내려갈게. 이제 됐다 싶어서 엘리야는 기다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크고 강한 바람이 몰려와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오시나 보다 했지요. 그렇지만 그 바람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아하, 이제야 오시나 보다, 그렇지만 그 지진 속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이번에는 불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그 불 속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이 지나가고 난 뒤에, 뭔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작고 부드러운 소리였습니다. 용케도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동굴 어귀에 섰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엘리야야, 고생이 많지? 이제 내가 길을 알려줄게. 하나님은 이런 모양으로 엘리야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대책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뭔가 요란하게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줄 알아요. 광풍 속에서 말씀하시는 줄 압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딸이 쩍쩍 갈라지는 그 틈새로 말씀하시는 줄 압니다. 또는 큰불이 활활 타는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줄 알아요. 그런데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이 어떻게 견딥니까? 하나님은 그런 폭군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아주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씀하십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신앙인들은 뭔가 드라마틱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어떤 극적인 일이 생겨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에서 벗어나고 거기서 주인공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를 바랍니다. , 그런 인생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소용돌이를 겪고 나면 허탈해질 때가 많습니다. 연극이 끝났을 때, 관객이 우렁찬 박수갈채를 보내지만, 극장 문이 닫히고 정적이 일면, 정작 주인공 배우는 공허함에 빠지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집에 있던 맏아들

 

큰 사고를 만났지만, 하나님께서 구출해주셔서 무사했다, 중병에 걸렸지만,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 절체절명의 큰 위기에 빠졌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살아났다, 등등, 우리는 이런 상황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교통사고가 나서 구사일생 살아나는 것도 좋지만 애초에 사고 없이 일상을 유지하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큰 병에 걸려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주시는 것도 좋지만, 평소에 밥 잘 먹고 아무 탈 없이 사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본의 아닌 실수로 인생 종 칠 뻔했을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기사회생하는 것도 좋지만, 처음부터 실수 안 하고 무탈하게 사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누가복음서에 보면 탕자 이야기가 나오지요? 부잣집 둘째 아들이 재산을 챙겨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 재산 다 날려 먹고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때 아버지가 어떻게 했습니까? 호되게 꾸지람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잔치를 열고 그 후레자식을 환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둘째 아들이 용서를 받고 아버지 집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거 아닙니까?

 

이 이야기에서도,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형이었습니다. 저놈의 자식은 매일 뺀들거리기만 하더니, 급기야 재산까지 들고 나가서 사고를 치고 이제야 돌아왔네, 그런데 아버지가 잔치까지 열어주신다?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심사가 잔뜩 뒤틀렸습니다. 툴툴거렸지요. 그럼 나는 뭐야? 매일 뼈 빠지게 일만 하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사고도 안 쳤는데,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는 친구들과 파티하라고 염소 안 마리도 내주지 않으시더니 사고 친 저놈한테는 잔치를 열어주신다니, 동네 사람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랬겠지요. 맏아들,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해는 하지만, 맏아들이 놓친 게 하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그 집 재산, 어차피 다 자기 것 아니에요? 아쉬운 게 있다면 이번 사건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는 것, 그거 하나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날라리 자식이 사고치고 돌아와서 멀쩡해지는 것도 좋지만, 중간에 사고 안 치고 처음부터 멀쩡한 게 더 좋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아요?

 

맺는 이야기

 

 

예언자 호세아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슬처럼 내린다고 했습니다. 폭풍우처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불처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진처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슬같이 내린다는 거예요. 소리소문없이 조용하게 내린다는 말입니다. 그런 은혜를 우리가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고 나서, 습관이 생겼습니다. 가끔 혼자 말을 해요. 남들이 들으면, 저 사람 왜 저래, 할지 모르니까 혼자 있을 때만 그럽니다. 주로 이런 식이에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 지금 아픈 데도 없고요, 머리도 맑고요,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지요?” 또 컴퓨터를 다루다가 실수했을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 제가 이럴 때도 있어요. 허 참, 바로잡으면 되죠, . 그렇죠?” 그리고 제가 하루에 한 번씩 설거지를 하는데, 그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씻어야 할 그릇이 많네요. 이게 다 우리가 많이 먹었다는 소리겠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설거지는 머리 안 써도 되는 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머리 써야 하는 일은 피곤하면 못 하는데, 이건 아무 때나 손만 움직이면 되니까 좋잖아요, 그죠?” 이게 제 기도입니다. 소리를 질러가면서 하나님 주시옵소서, 외치는 것도 기도인 건 맞지만, 늘 그렇게 기도할 수는 없잖아요?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했는데, 저는 이런 식으로 기도합니다. 글쎄요, 밥 새워 가면서, 금식까지 해가면서, 간절하게 울고불고 매달리면서 기도해야 할 때가 올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없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지진이 없더라도, 불이 없더라도, 폭풍우가 없더라도,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조용조용, 조곤조곤, 끊임없이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미세하면서도 부드러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101 양심을 깨끗하게 만드는 제물
1100 벌거숭이가 됩시다
1099 칼 이야기
1098 머리로 알기 vs 몸으로 알기
1097 예배와 봉사, 무엇이 먼저인가?
1096 고향으로 가자
1095 "애써 주님을 알자!"
1094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093 의로운 백성, 비틀거리는 백성
1092 생각에서 행동까지
»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
1090 새내기들의 다짐
1089 하나님 어머니
1088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1087 주머니가 구멍난 까닭
1086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1085 노예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1084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1083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1082 “신을 벗어라!”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