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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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6-11-26 15: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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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도행전 2:43-47 
설교일 2006-11-26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사도행전 2:43-47)


■ 들어가는 말씀

지난 주일에 우리는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교회 부흥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루에 삼천 명씩이나 회개하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것은 초대교회의 시스템이 아주 이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고, 성도들은 성도들의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첫째,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말씀을 배우는 일에 ‘몰두’하였다고 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이 중요한 차이점을 보이는데, 그것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즐긴다는 것이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지겨워한다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 듣기를 기뻐하고, 성경공부 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둘째,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함께 밥상을 나누는 것은 가정의 기반이기도 하고, 교회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밥을 잘 나누어 먹을 때, 가정이 행복하고, 교회가 부흥합니다. 밥을 골고루 잘 나누어 먹을 때 나라도 부강하게 됩니다. ▶셋째, 초대교회의 교우들은 서로 사귀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도의 교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형제자매 사이에 서로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성도들끼리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넷째, 초대교회의 교우들은 전심전력으로 기도했습니다. 개인은 기도하는 만큼 행복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만큼 부흥합니다. 나라도 기도하는 만큼 발전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말씀 듣기에 몰두하고, 음식을 나누기를 기뻐하고, 서로 화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힘써 기도한다면, 교회는 부흥하지 말라고 해도 자동으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의 심보’입니다.

오늘도 초대교회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하루에 삼천 명이나 회개한 ‘대사건’ 이후에도 구원 받는 사람들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그것도 그냥 늘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 참 솔깃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부흥은 교인 수가 늘었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인’과 ‘구원 받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교인은 하나님 나라의 구경꾼이고, ‘구원 받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식구입니다. 식구는 책임도 있고 보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경꾼은 책임도 없고 상도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에는 구경꾼이 없고 모두 가족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요즘 교인들 가운데서는 가족이 되기는 싫어하고 구경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수천 명이 모여도 하나님 나라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저 예수님을 구경만 하려고 합니다.

자,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떻게 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갔는가, 오늘 본문말씀인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다.” 간단합니다. 옛날 장터에서 소리 지르던 약장사들처럼 교회에서도 ‘쇼’를 하면 구경꾼은 몰릴지 모르지만,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식구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하나님 나라의 식구, 곧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쇼’를 해서 될 일이 아니고, 먼저 믿는 성도들이 그들의 ‘호감’을 사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까, 그것도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다.” 여기서 ‘그래서’라는 말에 주목합시다. 정담은 그 앞에 나와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들이 사람들의 호감을 샀는지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 1. 재물에 대한 태도.

첫째, 초대교회 교우들은 멋진 물질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에서 45절까지 말씀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는 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공동소유’에 ‘공동관리’가 원칙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그것은 4장 34잘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신명기 15장 4절에 보니까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초대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가진 재산을 다 내놓고, 공동으로 관리하자, 이렇게 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의 근본정신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적어도 정치적 공산주의는 지구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공동소유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른 제도였던 데 비해, 정치적 공산주의는 ‘하나님 없는’ 제도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정치적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공동생산’ ‘공동소유’ ‘공동관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오래 가지 못하였고, 성공했다고 판단할 만한 사례를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이런 제도는 그저 ‘꿈’에 불과한가,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성경에 나오는 이와 같은 아름다움 모습을 우리는 상상만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제도 속에서 살고 있든, 아니, 인류가 역사적으로 여러 제도를 시도해보며 살아 왔지만, 성경의 근본 물질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확실히 인정하면 제도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오면서 쥐고 온 것도 아무것도 없고, 이 땅에서 스스로 만든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는 무엇이든 ‘내 것’을 주장합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원래 이 세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가 손으로 무엇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해놓으신 것을 이용해서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서 우리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데, 그것은 나머지 십분의 구가 내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십일조를 바쳤으니까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쓰자, 그게 아니라,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내가 가진 나머지도 다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쓰겠다고 각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뇌물’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상징적으로 십분의 일을 드려서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이 말씀은 ‘십일조 〓 복 받는 종자돈’이라는 등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내 모든 물질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온전한’ 삶의 태도를 가져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복을 달라고 하지 않아도 복은 자연스럽게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 2.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

둘째, 초대교회 사람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니까 그들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였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아까 말씀드린 십일조 이야기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안식일을 정하고 일주일에 하루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은 ‘너희들의 모든 시간은 다 나의 것이다’ 하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내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해서 보이는 행동입니다.

재물은 십분의 일을 드리라고 했는데, 시간은 칠분의 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주일예배만 한 시간 드리고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아주 못된 버릇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날마다’ 모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모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편의를 봐주셔서 일주일에 하루만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걸로 인정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날이라고 하더라도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반도 안 됩니다. 기껏 몇 시간이에요. 그래서 죄송스런 마음으로 수요일에 한 번 더 모이는 겁니다.

■ 3. 사람을 대하는 자세.

셋째, 초대교회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었고,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공동식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만, 그것만 가지고는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함께 먹고 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도 껄끄럽고 호감이 안 가는 상대를 가리켜서 ‘밥맛’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일종의 반어법이지요. 밥맛이 없다는 것을 줄여서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마주 앉아서 함께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그 사람은 아주 편한 사람이라는 뜻도 됩니다.

처음에는 생소하다가도 두 사람이 함께 마주앉아 자연스럽게 밥을 먹는 관계가 되었다면, 그것은 대단한 발전입니다. 거꾸로, 함께 밥 먹는 자리를 피한다면, 그것은 ‘나는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하는 표시입니다. 우리가 수요일마다 집집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일이고, 거룩한 일입니다. 이것도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소중한 일입니다.

■ 맺는 말씀

저는 오늘 초대교회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 곧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물질과의 관계를 아주 잘 이룬 사람들이었습니다. ▶첫째, 그들은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재산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고, 사도들은 그것을 적절히 분배해서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전 재산을 다 하나님께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전 재산을 바친다는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합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날마다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날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주일의 교회생활을 통하여 우리 모든 시간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해야겠습니다. ▶셋째, 그들은 사람들과 어울려 밥 먹기를 기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함께 공동생활은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한 식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집집이 돌아가며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그 생각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이렇게 하니까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란다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버리고 그들과 무작정 어울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적이지만 훌륭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나와는 다른 편이지만, 군인으로서 훌륭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이롱’ 신자로 보이는 순간, 그들에게 호감을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을 구원 받게 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걸 오늘 말씀에 적용시키면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대충대충 신앙생활을 해서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호감을 살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예배와 모임에 출석하고, 철저하게 성도들과 교제하고,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할 때, 비로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들이 구원 받는 길을 우리를 통해 안내 받게 됩니다. 교회의 부흥은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약장사처럼 쇼나 이벤트를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길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는 것,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것, 그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하는 것, 외길일 뿐입니다.

초대교회에 임하셨던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오늘 우리 안디옥교회에도 임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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