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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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1-04-17 18: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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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가복음서 11:1-10 
설교일 2011-04-17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사순절 

■ 성서 본문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곧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은 가서, 새끼 나귀가 바깥 길 쪽으로 나 있는 문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풀었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새끼 나귀를 풀다니, 무슨 짓이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제자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 타셨다.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마가복음서 11:1-10>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기 위에서 처형되기 한 주간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생각하고, 그 이후에 받으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평화의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분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환영은 잠깐이었고, 곧바로 고난의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고난의 끝은 ‘죽음’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일생도 그와 같습니다. 처음에 태어날 때는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환영은 잠시 뿐, 곤 고난의 세월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 환영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의 상황을 잘 아시지요?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종합병원 분만실이 아니었습니다. 고래 등 같은 부잣집 별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호사스러운 것은 관두고 여염집 안방이기만 해도 다행이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몸을 풀 곳이 없어서, 마리아는 짐승들이 사는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도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들에 있는 목자들이 달려와서 축하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와서 예물을 드리며 경배했습니다. 하늘에서 천군천사들이 합창을 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했습니다. 출발은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아마도 세상에 태어나는 거의 모든 아기들이 처음에는 이와 같이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때로는 핏덩이를 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이고, 저나 여러분이나 환영을 받으며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백일이 됐을 때 떡을 하고, 돌이 됐을 때 동네방네 사람들 다 불러다가 잔치를 하는 것은 세상에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해마다 생일이 되면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주고, 하는 것, 그것은 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환영합니다!’ 하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 고난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 환영을 받았지만, 제 발로 걷게 되고 철이 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아기에게 자꾸 말을 시킵니다. “엄마, 해봐!” “아빠, 해봐!” “이모, 해봐!” “할머니, 해봐!” 등등, 아기가 말을 한 마디씩 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까지만’입니다. 그 이후부터 아이들은 ‘떠들지 말라!’는 말만 들으며 자랍니다. 어른이 되면 ‘말조심해야 한다!’ 하고 배웁니다. 나이가 들면 ‘늙은이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충고를 듣습니다. 어려서는 공부에 시달리고, 자라서는 격무에 시달리고, 인간관계 때문에 속상하고, 돈 때문에 불안하고…. 참 딱하고 딱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 것뿐이면 다행이겠습니다만, 사람에게는 그런 일상적인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모함을 받아 곤경에 처하고, 정의와 대의를 외치다가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도 핍박을 받으니까 이런 한탄을 합니다.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예레미야서 15:10). 그것도 모자라서 예레미야는 이런 말까지 합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이 복된 날이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의 아버지에게 ‘아들입니다, 아들!’ 하고 소식을 전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한 그 사람도 저주를 받았어야 했는데. 바로 그 사람은 주님께서 사정없이 뒤엎어 놓으신 성읍들처럼 되어서, 아침에는 울부짖는 고통 소리를 듣고, 대낮에는 전쟁의 함성을 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모태에서 죽어, 어머니가 나의 무덤이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영원히 모태 속에 있었어야 했는데. 어찌하여 이 몸이 모태에서 나와서,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나의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이러한 수모를 받는가!”(예레미야서 20:14-18). 처절한 절규입니다.

■ 죽음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사람의 삶입니다. 고난의 종착지는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마지막 한 주간은 우리 삶의 축소판입니다. 예수님께서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처럼 우리도 환영을 받으며 세상에 태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이후로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 던져진 그 순간부터 고난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고난 끝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결국은 죽음으로 일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소설가 서정인 씨가 자기 작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법 앞에서 만민은 불평등해도,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다.” ― 서정인, ≪모구실≫((주)현대문학, 2005), 374-375쪽.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란 죽기 전에는 생물학적으로 똑 같고, 죽은 뒤에는 화학적으로 똑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죽음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은 세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자살, 둘째는 타살, 셋째는 명이 다해서 죽는 것입니다. 자실한 사람의 대표적 인물로는 가룟 사람 유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승인 예수님을 은 삼십 냥에 팔아넘겼는데, 예수님이 유죄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고야 그는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돈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죄 없는 피를 팔아 넘김으로 죄를 지었소.”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그대의 문제요” 하고 말하면서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의 손에 숨이 끊어지는 타살의 경우 그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또 하나, 명이 다해서 죽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늙어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다 명이 다한 죽음이지요. 어쨌든 사람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 맺는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교훈이 없습니다. 축복해드릴 말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개 환영 받으며 태어나서, 고생하면서 살다가, 어떤 모양으로든 죽게 된다는 것, 그것이 제가 말씀드린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님조차도 그렇게 살다가 가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전도서의 저자가 거듭해서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신다”(전도서 12:13-14). 사순절 마지막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맞이하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날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생각합시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101 힘쓰는 사람이 얻습니다!
1100 힘내라, 꼴찌!
1099 힘내라, 꼴찌!
1098 히든카드
1097 흰 옷을 입을 사람들
1096 희소식을 전하는 사람
1095 희망을 전하는 사람
1094 희망 전도사
1093 희망 있는 사람이란?
1092 흥하려면 겸손해지십시오!
1091 흥미진진한 때
1090 흙수저 출신이 성공하려면?
1089 흑자 살림살이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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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 고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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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 호감을 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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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 혁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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