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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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7-12-16 17: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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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1:46-55 
설교일 2007-12-16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대림절 


■ 성서 본문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1:46-55〉


■ 들어가는 말씀

옛날, 나사렛이란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에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반듯한 사람이었고,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듣는, 참한 아가씨였습니다. 이 아가씨에게는 약혼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배가 불러오자 약혼자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호적 조사령이 내려진 때라, 약혼자는 고향에 호적 하러 가야 했습니다. 혼자 남게 될 이 아가씨는 남자가 없는 동안 어떤 어려움을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자기 약혼녀를 데리고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만삭의 배를 해가지고 어렵사리 남자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는 무사히 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문제였습니다. 배는 살살 아파오는데, 몸을 풀 곳이 없었습니다. 호적 하러 온 사람들이 밀려들어서 여관마다 손님으로 꽉 찼기 때문입니다. 돈이라도 충분했다면 모르겠는데, 간신히 여비만 마련해서 온 터라, 도저히 방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겨우 남의 집 외양간을 하나 빌려 거기서 아기를 낳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기는 무사히 낳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나사렛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심상치 않은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그들은 나사렛으로 가지 않고 이집트로 가서 살다가 몇 년 후에 돌아옵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지만, 다 자라서 청년이 된 아들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아들이 예언자가 됐다고 하기도 하고 미쳐서 돌아다닌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짬을 내어 동생들을 데리고 집 나간 큰아들을 찾아가서 만나기는 했지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 아들이 급기야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당한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십자가 위에서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린 이 여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리아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해석’은 다 빼고 그의 일생을 간략하게 뼈대만 말씀드렸는데, 정말 기구한 팔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불렀다던 노래가 하나 전해져오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서 1장 46절부터 5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 노래를 보면, 마리아는 자기를 일컬어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48) 했지요. 아니, 그렇게 험한 인생을 살았던 분이 어째서 그렇게 행복하다고 했겠습니까? 저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첫째, ‘하나님의 선택’이 마리아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는]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52-53). 하나님은 세상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다 두고, 평범한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권세 있는 집안의 아가씨들을 다 두고, 가난한 집의 딸인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여자를 선택하셨습니까? 당신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으로 내려 보내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내려 보낼까 생각하던 하나님은 아주 ‘정상적인’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여자의 태에서 태어나도록 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조금 더 ‘폼 나게’ 하시려면, 알에서 깨어나게 하실 수도 있었고, 바위를 갈라 그 안에서 나오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서 하강하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신화적인’ 방법을 버리고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리아를 불러서 쓰셨습니다. 가장 귀한 몸을 담을 그릇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 세상 여자들 가운데서 선택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처녀가 임신하는’ 황당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자기가 어떤 몸이라는 것을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8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노래한 것처럼, “주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장소로, 예루살렘의 화려한 저택이 아니라, 시골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로, 궁궐에 사는 헤롯을 택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시골 목수 요셉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 클레오파트라 같은 여자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촌 아가씨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기구한 팔자를 타고 태어났지만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도 귀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마리아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 ‘받아들임’의 마음이 마리아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여인들 가운데서 너는 복이 있다.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누가복음서 1:28).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날 보고 기뻐하라니, 복이 있다니….’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30-33).

시집도 안 간 처녀에게 이렇게 황당한 일이 있습니까?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34).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했습니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보아라, 그대의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하였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36-37).

여기서 마리아의 인간성의 진수가 나옵니다.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알면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마리아는 받아들였습니다. 자기 일생을 망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마리아는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의 아들, 소년 예수가 열두 살 되었을 때, 명절이 되어 온 식구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예수가 없어졌습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성전에 가보니 예수는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누가복음서 2:49). 다른 사람들은 ‘참 별난 애도 다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5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때때로 이렇게 황당한 일을 요구하십니다. ▶부유하게 잘 살던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두말 않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집안의 귀염둥이로 잘 자라던 요셉을 고생길로 내몰았습니다. 요셉이 자기 인생을 비관했다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형들에게 밉보여 머나먼 타국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거기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주인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썼지만, 받아들였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요셉은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초야에 묻혀서 잘 살고 있던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는 팔십이었습니다. 한때 회피해보려고도 했지만, 결국 모세는 이 막중한 임무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황당한’ 요구를 하실지 모릅니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주시면서 ‘받아들이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만일 우리에게 닥치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주는 것이라면 불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자녀를 잘못 되도록 버려두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겪는 황당한 일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들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아멘’ 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며 먼 훗날, 아하, 하나님께서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면서 행복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믿음이 마리아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이 미쳐서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생들을 데리고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예수가 있다는 집까지 갔더니 사람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깥에 선 채로, 사람을 들여보내서 예수를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마가복음서 3:33).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34-35).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이 심심찮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가 또래 아이들의 엄마보다 나이가 많을 때, 아이의 학교에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워진다고 그러지요. 혹시나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을까 염려되기 때문일 겁니다. 제 어머니도 저를 늦게 낳으셨기 때문에, 친구들이 어머니를 보고 ‘너희 할머니냐?’ 하고 묻는 말이 가장 싫었습니다. 어머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자녀가,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를 어머니로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일입니다. 어느 드라마에서 보니까 어떤 학생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기 싫어서, 자기 어머니를 소개하면서, ‘파출부’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 어머니의 심장은 찢어지듯 아프지 않겠습니까?

아들 예수를 찾아갔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로부터 눈길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상황이 그렇게 돼서 제대로 대접도 못해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범상한 아들이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로서 무엇보다도 가슴 찢어지는 일은,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기 눈으로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보통 죽음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는 아들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살인죄인과 함께 사형 형벌을 받는 아들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코앞에 와 있던 예수님은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 하나를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복음서 19:26).

이쯤 되면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을 것도 같은데, 성경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의 죽음조차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어서 그랬겠습니까? 아들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어머니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그 죽음이 보통 죽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담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죽음이 많은 사람을 살리는 거룩한 죽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세 높은 할머니였지만, 아들이 고통 받는 형장에서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맺는 말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결코 행복하다고 하기 어려운 험한 인생을 살았던 마리아였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이천 년이 지나고 보니까 그의 행복이 더욱 빛이 납니다. 마리아가 이처럼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에게는 ‘받아들임’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에게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든지, 어떤 역경을 주시든지, 무조건 감사하며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황당하게 여기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목적이 있어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누렸던 행복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령 안에서, 벅찬 감동이 되어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1081 혁명
1080 헤롯 콤플렉스, 요한 콤플렉스
1079 헛똑똑이와 속똑똑이
1078 헛된 기도, 참된 기도
1077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1076 행복해지는 셈법
1075 행복해지는 기도
1074 행복해지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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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 행복한 변신
» 행복한 마리아
1069 행복하게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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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 행복을 부르는 말, 불행을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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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5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1064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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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2 한울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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