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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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15-17 
설교일 2006-02-05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이사야서 1:15-17)


■ 들어가는 말씀

《설득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직접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성공의 열쇠는 ‘설득’에 있다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설득을 잘 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 성공할 수 있고, 신나게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을 잘 설득하면 편안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친구를 잘 설득하면 즐겁게 인생을 살 수 있고, 고객을 잘 설득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설득할 수 있다면?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설득하는 일, 곧 기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평소에 늘 기도하시는 분들은 누가 뭐라고 하든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렇게 하는 여러분은 이미 복 받은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바르게 기도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만,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으시고 ‘내가 하는 기도가 옳은 기도인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평소에 기도하는 습관을 아직 못 가지신 분들도, 마음으로는 늘 기도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그런 분들은 오늘 말씀을 계기로 해서, 오늘부터라도 기도하는 생활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 받는 신앙인의 대열에 꼭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권투 선수가 가장 힘들 때는 주먹으로 상대를 힘껏 때려주었을 때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얻어맞았을 때도 아니라고 합니다. 언제 가장 힘들고 기운 빠지느냐 하면, 힘을 다해 상대를 쳤는데, 상대가 피해버려서 헛손질을 했을 때라고 합니다. 야구 선수가 가장 맥 빠질 때도, 잔뜩 공을 노리고 배트를 힘껏 휘둘렀는데, 헛스윙 스트라이크를 먹었을 때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겠습니다만,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는 인생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생에서 헛손질, 헛발질은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고 살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인가 부탁을 할 때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김이 새버립니다. 소심한 사람들은 부탁도 하기 전에, ‘저 사람이 거절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미리 겁부터 먹습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뭔가 열심히 기도한 것 같은데,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삶에 변화도 없고, 그러면 피곤해서 기도할 맛이 안 납니다. 기도하는 재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신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게 되고, 그런 생활이 이어지다 보면 우리 삶이 신앙하고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당연히 행복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자, 그러면 헛손질, 헛발질 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안 들어주시면 안 들어주시는 이유라도 깨우쳐주시는, 그런 신나는 기도생활을 하기 위해서 오늘 세 가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둘째,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가? 셋째,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1. 먼저, 첫째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원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매우 진노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 말씀인 이사야서 1장의 이야기가 그 내용입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는 특별히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폭탄선언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더 이상 들어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대단히 무서운 선언이었습니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우리 사람으로 치자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이런 말씀을 하신다면 그야말로 황당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귀한 시간 내서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안 듣겠다고 하시는데, 모여서 아무리 떠들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오늘 예배에 참석한 청소년들에게, 쓸 만한 비법 한 가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부모님들을 대하는 노하우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님들에 대해 아마도 불만이 많을 겁니다. 저도 청소년 시절에 그랬고, 이 자리에 계신 어른들도 다 그랬을 겁니다. 수천 년 전의 조상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에게 불만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지극히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이건 꼭 알아 두세요. 여러분들의 부모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서, 여러분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분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대부분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MP3 플레이어를 하나 갖고 싶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건 알지만, 그런 요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서 “아버지, 저 MP3 필요한데요.” 이렇게 말하면 십중팔구 실패합니다. 그러면 대뜸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 압니까? “넌 돈 달랄 때만 나한테 볼일이 있지?” 실제로 말은 안 하더라도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참새를 잡고 싶다고 그냥 아무 때나 총을 쏴대면 웬만해선 참새 못 잡습니다. 어딘가 앉아 있을 때를 포착해서 정조준 한 다음에, 마음을 집중해서 방아쇠를 당겨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야 성공률이 월등하게 높아진다는 말이지요.

먼저 부모님이 여유 있는 시간을 찾아야 합니다. 무슨 생각에 깊이 빠져 있다거나, 일에 바빠 정신없을 때는 참새가 날아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 때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신문을 보고 있을 때라든지, 소파에 앉아서 손톱 손질을 하고 있을 때라든지, 그런 ‘정지 상태’를 찾아야 합니다. 그 때 접근해서, “아버지(또는 어머니), 녹차 한 잔 타 드릴까요?” 이렇게 작전을 개시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래? 우리 아들(또는 딸)이 타오는 녹차 한 잔 마셔 볼까?” 이렇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속으로 생각하시겠지요. “저 녀석이 무슨 요구사항이 있지?” 마음의 준비를 하시게 하는 겁니다. 녹차 한 잔을 타 와서 대령하면 천천히 맛을 보실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대개의 경우 “너 무슨 할 말 있니?” 이렇게 물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묻지 않아도 이미 요구사항을 들을 준비는 다 된 겁니다. 이 때 본론을 말씀드리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성공률이 50% 이상은 됩니다. 기한을 한 6개월 정도 잡으면 성공률은 90%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걸 잘 몰라요. 막무가내로 저 필요한 것 아무 때나 요구하면 성공률은 10%도 안 됩니다. 이게 지혜로운 아이와 미련 곰탱이 아이의 차이점이지요.

자, 그럼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엄청 열을 받고 계십니다. 그것도 다른 일 때문이 아니라 자식들 때문에 그러신 겁니다. 이런 와중에서 백번 기도한들 들어주시겠습니까? 턱도 없는 말씀이지요. 더군다나 “나는 너희 기도를 듣지 않겠다”라고 직설법으로 선언하지 않으셨습니까?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열을 받으셨는가,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뒤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 씨’가 아니라 ‘친절한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분이에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백성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손을 씻기 전에는 절대 기도를 못 들어주신다는 것이지요. 손에 피를 묻힌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까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도 똑 같습니다. 하나님께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단 정지, 곧 STOP을 잘 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바쁘거나 우울할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바쁘시지도 않고 기분 나쁘실 때도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일단 정지해서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면 하나님은 언제나 들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사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뭔가 말씀을 드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공연히 이리저리 헤매며 살고 있습니다. 틈나는 대로 복잡한 생활에서 정지하여 우리 안테나를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2. 두 번째 이야기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안 들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다고 하신 이유가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것인데,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살인을 했다는 표현입니다. 살인을 한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 잘 아시지요? 그 이야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고 했는데, 저는 어릴 적에 이게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두 형제를 차별하시는가? 하나는 받으시고, 하나는 받지 않으시는 이유가 뭔가 하고 의문이 생겼었습니다.

이야기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 ▶가인이 화가 나서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벌을 주셨다. 이렇게 된 내용입니다. 이 순서로만 보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가인을 미워하신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을 아무나 죽일 수 있습니까? 이거, 아무나 쉽게 못하는 짓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직접 안 나와 있지만, 가인 속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괜히 가인의 제물을 안 받으신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제물을 안 받으신 것뿐입니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제물은 안 받으십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들은 척도 안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제 예수님의 말씀도 이해가 갑니다. 마태복음서 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마태복음서 5:21-24).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형제를 욕하거나 미워하면 살인한 사람과 똑 같이 지옥불 속에 던져진다, 곧 살인과 미움은 ‘Equal,’ 똑 같은 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좀 가닥이 잡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나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가? 이렇게 생각이 든다면, 내 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이걸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말씀 드렸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어떤 인물을 떠올려보십시오.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면 여러분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생각해서 그가 잘 못되는 게 고소하다고 생각하면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거부터 바로잡아야 여러분이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께 통할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사야가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정답이 있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말씀 이사야서 1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한 마디로 말하면 정의를 찾으라, 곧 옳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옳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억압 받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고아와 과부, 곧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 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기도에 대해서 중요한 말씀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 우리가 요구사항을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마태복음서 6:8),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입니까? 일일이 다 말씀 안 드려도 알아서 다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자격만 갖추면, 이제부터는 콩이야, 팥이야, 이거 달라, 저거 달라,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자격! 그것은 약자를 보살피는 사람, 고아의 편을 들어주고, 과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권력만 추구하는 사람, 높은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그런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상대도 해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대변해야 합니다.

■ 맺는 말씀

이제 정리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차피 신앙생활을 하는 것, 좀 신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기도가, 그냥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공허한 소리가 되지 않고, 복이 철철 넘치는 응답이 되어 돌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지혜롭게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을 향하여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성능 좋은 브레이크를 꼭 가져야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접근했으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손에 피를 묻히는 것, 곧 미워하는 마음을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만 피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상대해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사람,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달라고 하지 않아도, 흔들어 넘치게 복을 퍼부어 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람이 되어서 부담 없이 하나님을 설득하고, 신바람 나는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62 한울교회
1061 한 몸이기에
1060 한 몸이기에
1059 한 많은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1058 하늘나라의 노동복지
1057 하나에 대하여
1056 하나님의 후회
1055 하나님의 한 가족
1054 하나님의 집에 갈 때에
1053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1052 하나님의 이름으로
1051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평화
1050 하나님의 약속
1049 하나님의 손수건
1048 하나님의 본심
1047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건물
1046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심
1045 하나님을 찾는 열정
» 하나님을 설득하는 방법
104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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