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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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13-05-19 13: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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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0:14-18 
설교일 2013-05-19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사용처 1. 20200517 일 한울교회 주일예배 설교. 


■ 성서 본문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음성을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요한복음서 10:14-18>


■ 들어가는 이야기

이제 내일모레면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듭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렇지 않습니다만 한낮에는 마치 한여름처럼 덥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변함없는 믿음을 유지함으로써, 추우나 더우나 변함없이 내리시는 주님의 은총을 듬뿍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빕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은 다 아시지요. 그러나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는데, 그게 왜 나를 위한 거야?’ 오늘 요한복음서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걸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는데, 그 이유가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이 말씀은 피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는 뜻입니다.

■ 마사다 요새 이야기

이스라엘에 사해(死海)라는 바다가 있는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옛날 이 사해 근처에 군사요새가 있었는데, 그곳을 역사가 요세푸스는 ‘마사다 요새’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주후 70년에 나라가 망해서 2천 년 동안이나 나라 없이 살았지 않습니까? 그때 이스라엘이 로마군에게 멸망당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 제 10군단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1천여 명은 끝까지 남아서 싸웠습니다. 이들이 쫓기다, 쫓기다 최후의 항전을 벌인 곳이 ‘마사다 요새’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빗물을 받아 마시면서 3년 동안이나 버팁니다. 그랬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로마군에게 토벌되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을 빼앗기기 전날 밤, 유대인 결사대를 지휘했던 엘르아살 벤 야일은 군사들에게 비장의 마지막 연설을 합니다.

“여러분, 죽음이 재앙이 아니라 산다는 것이 재앙입니다. 용감한 사람에게나 겁이 많은 사람에게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우리가 항복해서 로마 사람들의 노예가 되는 치욕을 당할 것입니까? 우리 아내들이 욕을 당하고 우리 자녀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자유가 있고, 우리 손에 칼이 있을 때에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자유롭게 결정합시다. 우리 아내와 자녀들에게 둘러싸여 영광스럽게 자유인으로 죽읍시다.” 결국 그들은 제비뽑기로 열 명을 가려내서 그 열 명이 나머지 1천여 명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 열 사람 가운데서 다시 뽑힌 사람이 아홉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최후에 남은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새벽녘에 로마군은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저항이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며 요새에 올라가보니, 거기에는 천여 명의 시신들만 쌓여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자유를 빼앗고자 쳐들어왔던 로마 군인들은 이 모습을 보고 통쾌한 승리감보다는 오히려 허무한 패배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 델리마쿠스 이야기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델리마쿠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수도사였습니다. 중앙아시아 출신이라는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정확한 정보는 없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오는데, 이 사람은 로마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나이가 많아 늙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노구를 끌고 몇 달이 걸려서 로마까지 갔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원형경기장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원형경기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으로 꽉 찼습니다. 거기서는 검투사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펜싱’이라고 해서 가짜 칼을 들고 경기를 하지만 당시에는 진짜 칼을 들고 싸웠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며 환호성을 질렀지요. 자기들의 쾌락을 위해서 사람이 칼에 맞아 죽어나가는 것은 상관없다는 태도였습니다.

델리마쿠스는, ‘사람의 목숨을 놀이 감으로 삼다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 잔인무도한 검투를 멈추어라!” 사람들은 ‘웬 저런 미친놈이 있나’ 하면서 ‘와!’ 웃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장하준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0년 전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100년 전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이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그걸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이 미친놈 취급을 받았지요. 어쨌든, 그래도 살인 검투가 끝나지 않자 델리마쿠스는 계단을 걸어서 밑에 있는 경기장으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검투사들이 칼을 휘두르는 가운데로 몸을 던지면서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 잔인무도한 검투를 멈추어라!” 한 검투사가 그의 가슴을 칼로 찔렀습니다. 그가 쓰러져 죽자 떠들던 관중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그날의 검투에서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델리마쿠스만 죽었습니다. 델리마쿠스는 바보 같은 짓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날로부터 로마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검투 경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광주 이야기

어제는 광주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그날은 주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 3학년이었고, 교회 봉사를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광주 소식을 들었습니다. 광주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는데, 그건 언론이 통제된 상태에서 그냥 하는 소리였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이 나라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두환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력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모조리 금지시킨 채 가택에 연금시킨 뒤, 나라를 통째로 들어먹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두환의 폭거에 항거해서 광주에서는 민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광주는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밖에서 광주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광주 사람이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통신도 차단되어 있어서 광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광주사람들 외에 다른 지역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뒤에 밝혀진 일입니다만, 광주 시민들이 어쩌다 보니까 광주를 장악한 것입니다. 그들은 광주를 ‘해방 광주’라고 불렀습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었습니다.

계엄군이 전 도시를 차단했는데 그 광주에서 매점매석이 한 건도 없었습니다. 총기가 수천 점이 풀렸지만 그 광주에서 강도 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시민군들이 실탄을 장전해 들고 다니고 수류탄을 들고 다녔어도 총기 사건이 한 건도 없었습니다. 가게 털렸다는 데도 없습니다. 딱 두 곳, KBS하고 MBC가 불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텔레비전에서 보도하는 것이, 사실과는 다르게 완전히 거꾸로 이야기하니까, 방송국 두 군데를 불태워버린 것입니다. 그밖에는 파괴된 곳이 없습니다. - 한홍구,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한겨레출판(주), 2009), 356쪽. 그러나 5월 27일 시민군은 계엄군의 공격을 받아 처참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당시에 금남로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은 사람 가운데 류동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모다 한 학년 아래인데요, 1979년에 한신대에 입학한 사람입니다. 계엄군이 몰려올 때, 이 친구가 전남도청으로 가려고 하자 부모들이 강하게 말렸습니다. 그곳에 가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 아버지가 목사였는데(광주신광성결교회), 아무리 목사라도 자기 아들이 죽음의 자리로 간다는데 누가 말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류동운은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청으로 갔습니다. 최후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습니다. 도청으로 떠나기 전날,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하여 한줌의 재가 되려 합니다. 이름 없는 강물에 나를 뿌려 주십시오.”

■ 맺는 이야기

실제 광주에서는 5월 하순이 되면 한 집 건너 한 집에 제사가 있다고 할 정도로 아직까지 그 아픔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분들이 흘린 피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만큼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에서 죽어 피를 흘렸지만, 그 피는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 상황을 막았습니다. 생명을 구한 피였습니다. 마사다 요새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1천명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유대인들은 2천 년 동안이나 나라를 잃고 살았지만, 아직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로마의 경기장에서 몸으로 칼을 받으면서까지 미친 짓을 막아낸 델리마쿠스가 있었기에 칼부림의 경기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피 흘림은 비극입니다. 암흑의 시기에 깨어 있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피 흘림을 막기 위하여 자신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를 맞이한 1천 명의 피가 그런 피였고, 델리마쿠스가 흘린 피가 그런 피였고, 33년 전 광주의 피가 그런 피였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바로 이런 소중한 진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후로는 더 이상의 불행한 피 흘림이 없기를 바라면서,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1062 한울교회
1061 한 몸이기에
1060 한 몸이기에
1059 한 많은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1058 하늘나라의 노동복지
1057 하나에 대하여
1056 하나님의 후회
1055 하나님의 한 가족
1054 하나님의 집에 갈 때에
1053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1052 하나님의 이름으로
1051 하나님의 영광, 사람의 평화
1050 하나님의 약속
1049 하나님의 손수건
1048 하나님의 본심
1047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건물
1046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심
1045 하나님을 찾는 열정
1044 하나님을 설득하는 방법
104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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