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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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6-05-21 16: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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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이사야서 14:8 
설교일 2006-05-21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도
네가 망한 것을 보고 이르기를
‘네가 엎어졌으니,
이제는 우리를
베러 올라올 자가 없겠구나’
하며 기뻐한다.

(이사야서 14:8)


■ 들어가는 말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세 가지고 분류해서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다시 한 번 더 짚어 보면, 첫째, 제발 세상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을 것 같은 사람이 있고, 둘째, 있어도 좋고 없어져도 별로 아쉽지 않은 사람이 있고, 셋째, 그 사람이 있으면 편안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나의 빈 공간이 너무나 커져버리는, 그런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구약성경 본문에 보니까, 산속의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이 기뻐서 노래를 부릅니다. “네가 엎어졌으니, 이제는 우리를 베러 올라올 자가 없겠구나!” 여기서 ‘너’는 바빌론을 말합니다. 바빌론이 망하니까, 거기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까지 기뻐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바빌론에 대해서 얼마나 원한이 맺혔으면 이런 노래까지 나왔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설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마태복음서 5장의 ‘산상수훈’인데, 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 받은 자녀라는 겁니다. 평화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오늘은 사람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빌론이라는 나라는 평화보다는 전쟁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기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에, 바빌론이 망해서 없어졌을 때 사람과 자연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본문을 거울삼아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걱정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고 편안함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 존재 자체로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제 어미가 안 보이면 당연히 묻습니다. “어머니는요?” 그러면 저는 농담삼이 이렇게 대답하지요. “왜? 젖 먹으려고 그러니?”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아이들은 어디 나갔다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엄마를 찾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집안 어딘가에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심리일 겁니다. 특별한 볼일이 없어도 엄마가 집에 있다고 하는 것, 곧 엄마는, 그 존재 자체로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볼일은 없지만 엄마가 집안에 없으면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은 평소, 별 문제가 없을 때의 이야기이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아이가 뭔가를 잘못했다든지, 아니면 세대차이나 다른 문제 때문에 부모와 갈등이 있다든지 하면, 부모는 그 존재 자체가 아이에게는 부담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겨서 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합니다. “얘, 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이렇게 말하고 둘이 마주 앉으면, 평소에 가정이 아무리 민주적인 분위기였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관계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 단둘이 마주 대했을 때, 누가 더 불편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당연히 부하직원의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국가 청렴위원회와 구미 부패방지 시민 네트워크가 주관해서 “청렴한 구미 만들기 실천 협약식”이라는 행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 구미 시장 후보를 비롯해서 이번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거의 다 참석하였습니다. 제가 지금 그 내용을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주최자와 참석자의 대비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쪽은 국가 청렴위원회와 부패방지 구미시민 네트워크이고, 다른 한 쪽은 지방선거 후보자들입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각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는데, 후보자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참석 안 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절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주최자가 무슨 불이익을 줄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자들은 은근히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존재 자체의 위협’입니다.

이거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와 성도의 관계에 있어서, 목사가 여러분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와 신도가 마주앉으면 신도의 입장에서 보면, 목사의 존재 자체가 이미 뭔가 불공평한 겁니다. 목사는 매주일 설교를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것도 하나의 특권인데, 그걸 좋게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만, 100퍼센트 하나님의 말씀만 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미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한다든지, 무슨 의논을 한다든지 할 때, 거기서부터 한 쪽에서 불공평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할 때, 가급적이면 여러분에게 말을 많이 하도록 진행을 하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부담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여러분에게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드려서, 목사와 신도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존재자체’의 불공평’을 줄여보자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취지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아무리 평등하게 민주적으로 대화하자고 하더라도, 자식은 부모로부터 밥을 얻어먹고, 학비를 얻어서 공부하고, 생활 전체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자식에게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어야 하는데, 가끔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달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2. 이제 두 번째 이야기, 아름다운 생각이 편안함을 낳습니다.

흔히 사람을 가리켜서 ‘영물’(靈物)이라고 합니다. 귀신같은 데가 있다는 말이지요.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귀신도 못 알아듣는다”고 하지요. 이것은 웬만하면 말로 표현하라는 뜻에서 하는 이야기지, 정말로 말 안하면 못 알아듣고 못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말 안 해도 어지간한 것은 다 알아차립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눈치가 공인 4~5단쯤은 되지 않습니까? 이거 서양 사람들은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말끝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이런 말을 달고 사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이런 좋은 말은 많이 하는 것이 좋기는 하겠습니다만, 제가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이미 웬만한 것은 느끼고 안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상대를 미워하면, 아무리 안면을 조작하고 표시를 안 내려고 해도 이미 텔레파시로 다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내 앞에서 결코 편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안 보인다고 전달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냄새와 같은 것입니다. 향수가 있으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냄새는 온 천지로 풍겨나가지 않습니까? 내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나쁜 냄새가 나게 되어 있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미움의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일일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시지 않더라도, 이미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동으로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예쁜 생각을 하면 예쁜 냄새가 풍겨 나갑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동정심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동정심과 연민의 냄새가 풍겨 나갑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상대가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대면하면 편안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려면, 그 사람이 안 보는 데서라도, 생각부터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람을 위로하는 마음,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3. 셋째, 말과 행동으로 편안함을 주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존재 자체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지 말아야 하고, 생각으로도 위압감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증오의 마음이 있더라도 속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속에 품고 있는 마음과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 지원 연설을 하러 단상에 올라가다가 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검찰에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이 항의집회를 하던 중에도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집회 중에, 한 지지자가 검찰에 대해 항의 성명서를 발표하려고 하는 순간, 한 사람이 저지를 했습니다. ‘네가 여태 한 일이 뭐 있는데, 네가 발표하려 하느냐? 이건 내가 해야겠다!’ 그러면서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고, 말을 안 들으니까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칼로 머리를 찔러버리고 말았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듯이, 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모양으로든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예쁜 생각,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모양으로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과 마음은 말의 씨앗이고, 행동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 드렸지요? “표현하지 않으면 귀신도 못 알아듣는다!” 속으로 아무리 아름답고 예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면상대는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을 가지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차 말씀하셨지요. “서로 사랑하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무작정 내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고 그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무작정 달려가서 껴안고 뽀뽀를 한다고 합시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잘못하다가는 뺨 맞을 일이지요. 나의 말에서, 나의 행동에서 상대가 편안함을 느낄 때, 그것이 사랑의 말이고, 사랑의 행동입니다.

■ 맺는 말씀

이제 정리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혹시 상대에게 불편함이나 위압감을 주지는 않는지 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만한 위치에 있다면 가급적이면 상대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평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남이 보지 않는 데서도 예쁜 생각, 아름다운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모를 것 같지만, 아무도 없는 데서 생각한 것, 혼자 마음먹은 것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과 행동을 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인지, 그리고 행동인지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결코 ‘있어서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아름답고 예쁜 생각을 마음에 꼭꼭 담아서,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행동을 하는 귀한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축복합니다.
1042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1041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1040 하나님께 영광 사람에게 평화
1039 하나님께 복종하는 행복
1038 하나님 어머니
1037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1036 하나님 닮았네
1035 하나 됨을 위하여
1034 하나 됨,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
1033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1032 필요에 따라 나누자
1031 필요에 따라
1030 피리를 불어도, 애곡을 하여도
1029 피 이야기
1028 품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한 가
1027 폭풍전야, 그리고 평화의 아침
1026 폭력 쓰는 사람들의 특징
1025 포악한 자들아, 노래를 그쳐라!
1024 폐 끼치는 사람, 덕 끼치는 사람
1023 평화의 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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