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전대환 채널 바로가기

성서본문 사도행전 8:4-8 
설교일 2006-12-24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런데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무리는 빌립이 행하는 표징을 듣고 보면서, 그가 하는 말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귀신들린 많은 사람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장애인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성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

(사도행전 8:4-8)


■ 들어가는 말씀

오늘 사도행전 본문은 마지막 말에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에는 기쁨이 넘쳤다”(사도행전 8:8).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올 겁니다. 어째서 그 성에는 기쁨이 넘쳤는가? 오늘은 어째서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넘쳤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 1. 사마리아 성에 간 빌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절망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자들은 다시 모여들었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정도 이 땅에 머무시다가 다시 사라지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라지신 것은 아니고, 우리 안에 영원히 머무시게 된 것이지요. 성경에서는 이 일을 ‘승천’이라고 표현합니다.

어쨌든, 육신의 예수님을 떠나보낸 제자들은 그 후 오순절에 성령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 믿음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비겁했던 사람들이 용감해졌습니다. 겁이 많던 사람들이 용기 충천했습니다.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다투던 사람들이 섬기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소심하고 쩨쩨하던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대담해지게 되었습니다. 자, 이렇게 되니까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교회’가 생겼습니다. 이 교회는 날로 부흥해 갑니다. 교회로 모인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자기 가진 것을 다 내놓고 공동생활까지 합니다. 매일 모여서 말씀을 듣고 음식을 나눕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당시의 초대교회는 그야말로 성령의 용광로였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미움도 녹아 없어집니다.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차별도 없어져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따로 없이 모두 어울려 성전에 들어가서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은 모두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지요? 이렇게 멋지고 좋은 일이 그냥 계속될 리가 없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이 사람들을 그냥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시 양반층이 교회를 미워한 것은 ‘예수’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미워하여 극형에까지 처했던 예수를 따르며 신도들이 기뻐하니까, 그게 기분 나쁘다, 이겁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것이 신호탄이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예수 믿는 사람이면 무조건 잡아 죽여라, 이렇게까지 되었습니다. 여기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 사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이지요. 일이 이렇게 되니까 예루살렘에서는 더 이상 신앙생활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때부터 사도들은 각처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빌립 집사도 그래서 북녘 땅 사마리아로 가게 된 것이지요.

■ 2. 그들은 왜 기뻐하였는가?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왜 기뻐했겠습니까? 그 답이 사도행전 8장 5절에 나와 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바로 이겁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곳,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분’ 곧 메시야입니다. 메시야란 요즘 말로 하자면 ‘완벽한 해결사’입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에서 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했는데, 이분이 곧 그리스도, 메시야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마음 상한 사람들이 활짝 웃게 됩니다. 포로들은 자유를 얻습니다. 갇힌 사람들은 석방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평생 한 속데 살던 사람들은 보복의 날을 꿈꾸게 됩니다. 슬퍼하던 사람들이 위로를 받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의 이 말씀을 가장 먼저 읽으셨습니다(누가복음서 4:18).

빌립은 이 예수를 사마리아 성에 전파하였고,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때, 사마리아 성을 떠돌던 악한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물러갔습니다. 많은 중풍 병 환자들이 벌떡 벌떡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지체장애인들이 시원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 3. 구미를 기쁘게 하려면?

초대교회의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때,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우리도 빌립만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우리가 사는 구미, 여러분은 밖에 나가면 어떤 소리를 듣습니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는 죽겠다는 소리밖에 없습니다. 장사가 잘 안 된다, 직장이 불안하다, 먹고 살기 힘들다, 도대체 되는 일이 없다…. 우리 교회 지붕에도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만, 구미 시내만 해도 십자가는 얼마나 많습니까? 십자가가 그렇게 많은데, 들려오는 소리는 왜 죽겠다는 소리밖에 없습니까? 이건 우리가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곳에는 기쁨이 넘쳐나야 하는데, 기쁨의 웃음소리는 고사하고 오히려 신음소리만 들려오니,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가 반성해야지,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가 반성하고 가다듬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오늘은 한 가지만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사마리아 성처럼 우리 구미가 기쁨으로 넘치려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가 먼저 기뻐해야 합니다. 빌립처럼 중풍 병 환자를 일으키고, 지체장애인들을 기적으로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기쁨으로 넘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란 데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하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상놈의 도시’였습니다. 당시 남쪽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시다가 어떤 여자한데 ‘물 좀 달라’ 하시니까 여자가 그랬잖아요? ‘유대 사람인 당신이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이 정도로 사마리아는 무시당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이런 사마리아를 기쁨의 도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빌립이 분위기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항상 피동적입니다. 마지못해 남 따라하는 사람이에요. 뭐든지 앞장서서 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다릅니다. 빌립을 보면 알 수 있요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없는 사마리아를 기쁨으로 넘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봅시다. ‘내 마음에 과연 기쁨이 넘치고 있는가?’ 여러분 모두 지금 이 시간에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겠습니다만, 혹시 그게 아니라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똥만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의 영이 가득 차 있다면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이 나를 가난해서 풀려나게 해주시고,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데, 기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심리학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평소에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연할 걱정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기가 미움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도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고, 성인들도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랍니다. 그게 심하면 우울증까지 간다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지 않아요? 외아들까지 바쳐가면서 사랑하셨지 않아요?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설령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람들도 우리를 미워하지 않아요.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요즘 같이 자기 살기도 바쁜 세상에 뭐 할 일이 없어서 남을 그렇게 미워합니까? 혹시 모르지요. 내가 남을 미워한다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남들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문제를 깊이 연구한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틈만 나면 기뻐하라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1절,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2장 18절,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3장 1절, “끝으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장 4절,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항상 기뻐하십시오.” 베드로전서 1장 6절, “여러분이 지금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지요(마태복음서 5:11-12).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지난 주일에 우리가 함께 생각했던 말씀 아닙니까? 모욕을 받고 비난을 받더라도 기뻐하라는 겁니다.

■ 맺는 말씀

소돔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멸망시키려 하실 때 아브라함이 애원하며 기도했지요. ‘의인 쉰 명이 있다면 그래도 멸하시겠습니까?’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내려가다, 내려가다, 결국 열 명까지 에누리를 했지만 그것도 모자라 소돔성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도덕적으로 결점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잘 소통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러니까 소돔 성이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잘 통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없었기 때문에 망했다는 말입니다.

다들 죽겠다, 죽겠다, 소리칠 때, 기쁨이 넘치는 사람 열 명만 있으면 그 집단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기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하여 기쁨에 넘치는 사람 열 명만 있으면 우리 구미는 살 만한 도시가 됩니다. 그 큰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단 몇 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소금이 있기 때문 아닙니까? 빌립 한 사람이 사마리아 성 전체를 기쁨으로 넘치게 했듯이, 그리스도에 미친 사람 한두 명만 있으면 교회가 삽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몇 명만 있으면 이 도시가 삽니다. 이 나라가 삽니다.

이제 우리는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여서 함께 바보가 되지 말고, 그 어떤 절망적인 자리에 가서도 성령이 충만한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제아무리 악하고 어두운 곳이라고 하더라도, 비록 그 곳이 아골 골짝 빈 들이라고 하더라도, 비록 그 곳이 소돔 같은 거리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기쁨으로 찾아 가아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우리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든지, 어디든지 천국처럼 밝게 변화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41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1040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1039 하나님께 영광 사람에게 평화
1038 하나님께 복종하는 행복
1037 하나님 어머니
1036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1035 하나님 닮았네
1034 하나 됨을 위하여
1033 하나 됨,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
1032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1031 필요에 따라 나누자
1030 필요에 따라
1029 피리를 불어도, 애곡을 하여도
1028 피 이야기
1027 품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한 가
1026 폭풍전야, 그리고 평화의 아침
1025 폭력 쓰는 사람들의 특징
1024 포악한 자들아, 노래를 그쳐라!
1023 폐 끼치는 사람, 덕 끼치는 사람
1022 평화의 주, 예수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