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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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시편 103:3-5 
설교일 2013-02-10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주님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분,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해 주시는 분,
사랑과 자비로 단장하여 주시는 분,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 주시는 분,
네 젊음을 독수리처럼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시편 103:3-5>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우리는 계사년(癸巳年)을 맞이하였습니다. 올해는 연휴가 짧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소중한 설 명절입니다. 설날을 맞이하여 주님 앞에 한 자리에 모인 여러분 모두 위에,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만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명절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부모, 형제자매, 일가친지들이 모여서 대화의 꽃을 피우는 것만큼 우리에게 덕이 되는 일도 드뭅니다.

■ 왜 대화인가?

오래 전 13세기 때 이야기입니다만, 신성로마제국에 프리드리히 2세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인간의 본래 언어가 뭐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라마다 언어가 다 달랐지요. 황제는 이처럼 언어가 나뉘기 전 ‘자연 그대로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기 여섯 명을 한 방에 넣어 놓고, 아기들을 키울 유모들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유모들에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아기들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되, 절대로 아기들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황제는, 사람의 본래 언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험은 황제가 기대한 결과를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언어로든지,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기서 끝났으면 그래도 다행일 텐데, 여섯 아기들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다가 결국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545쪽. 참 무모한 실험이었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런 겁니다. 젖과 잠만으로는 아기가 자라지 않는다는 것, 아기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좋은 대화

아기들뿐만이 아닙니다. 성인들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감옥 안에서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쓰신 황대권 선생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분이 독방 생활을 오래 하셨지요.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독방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서는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옆방 사람과 큰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간수 몰래 쪽지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원천적으로 대화가 차단된 곳입니다. 하루는 이분이 독방에 앉아 있는데 거미 한 마리가 눈앞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걸 손바닥에 올려놓고 10여분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생명의 존엄함을 발견했습니다. 방 안을 다시 보았더니 파리, 모기, 사마귀, 송충이, 바퀴벌레, 쥐새끼, 구더기, 거기다가 온갖 미생물까지 눈에 뜨였습니다. 그는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생은 그것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하러 왔니? 심심해? 그럼 나랑 놀자!” 하면서 중얼거리기도 하고, 팔을 갖다 대서 모기한테 피도 빨게 하면서 그것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오랜 독방생활을 이겨냈습니다.

■ 최상의 대화

지지고 볶고 싸우든 어쩌든, 우리에게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그게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5:23에 보면 “북풍이 비를 일으키듯, 헐뜯는 혀는 얼굴에 분노를 일으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다짐을 합니다. ‘상처 받지 말자, 이해하자, 사랑하자, 인내하자…’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그래서 잠언 18:14에서 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정신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 정신이 꺾인다면,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상대방의 말 때문에 아플 때, 사람이 정신력으로 그것을 이겨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봅시다. “주님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분,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해 주시는 분, 사랑과 자비로 단장하여 주시는 분,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 주시는 분, 네 젊음을 독수리처럼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시편 103:3-5). 이보다 더 좋은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나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데도 힘을 써야 하지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시편 118:8-9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높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 맺는 이야기

오늘 제 이야기를 마치면서 신동엽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새해 새 아침은〉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를 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 신동엽(최성수 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실천문학, 2004), 58쪽.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를 아끼는 분들의 눈빛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서, 금가루를 뿌린 것 같은 새 아침을 열어가고, 만사대통의 새해를 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20130214 N.
2. 20130219 Y.
3. 20130407 PJI.
1041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1040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1039 하나님께 영광 사람에게 평화
1038 하나님께 복종하는 행복
1037 하나님 어머니
1036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1035 하나님 닮았네
1034 하나 됨을 위하여
1033 하나 됨,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
1032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1031 필요에 따라 나누자
1030 필요에 따라
1029 피리를 불어도, 애곡을 하여도
1028 피 이야기
1027 품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한 가
1026 폭풍전야, 그리고 평화의 아침
1025 폭력 쓰는 사람들의 특징
1024 포악한 자들아, 노래를 그쳐라!
1023 폐 끼치는 사람, 덕 끼치는 사람
1022 평화의 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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