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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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사도행전 19:11-20 
설교일 2007-01-28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어서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손수건이나 두르고 있는 앞치마를 그에게서 가져다가, 앓는 사람 위에 얹기만 해도 병이 물러가고, 악한 귀신이 쫓겨 나갔다. 그런데 귀신 축출가로 행세하며 떠돌아다니는 몇몇 유대 사람조차도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힘입어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고 말하면서, 악귀 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귀신을 내쫓으려고 시도하였다. 스게와라는 유대인 제사장의 일곱 아들도 이런 일을 하였는데, 귀신이 그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서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짓눌러 이기니, 그들은 몸에 상처를 입고서,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다. 이 일이 에베소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에게 알려지니, 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신도가 된 많은 사람이 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자백하고 공개하였다. 또 마술을 부리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책을 모아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 책값을 계산하여 보니, 은돈 오만 닢에 맞먹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사도행전 19:11-20)


■ 들어가는 말씀

이탈리아의 니콜로 파가니니, 하면 ‘바이올린의 귀신’으로 통하지요. 이 양반이 천하에 둘도 없는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자기 연주에 대해서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는가 하면…. 한 번은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한 여가수가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다른 사람을 통하여 파가니니에게 전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파가니니는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절돼 안 돼! 결혼이라니, 평생 공짜로 내 바이올린 연주를 듣겠단 말이야? 얌체 같으니라고. 안 되지.”

오늘 저는 파가니니나 바이올린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의 귀신’이라고 했는데,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얼핏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바이올린의 귀신’ 하면 그만큼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다는 뜻이지요. 무엇인가를 기가 막히게 잘 알아맞히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귀신 같이 알아맞힌다’고 합니다. ‘귀재’(鬼才)라는 말도 ‘귀신같은 재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 1. 귀신의 위력

귀신이라는 게 보통 존재가 아닙니다. ‘귀신도 탄복할 만큼’ 뛰어난 존재가 귀신이에요. 마가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일 먼저 선포한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마가복음서 1장 11절에 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두 번째로 인정한 게 귀신이에요.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가복음서 3:11) 하고 외쳤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다음 쯤 가는 게 귀신입니다.

오늘 신약성경 본문에 보면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이 지니고 있던 손수건을 가져다가 아픈 사람에게 대도 병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귀신 들린 사람에게 대면 악한 귀신들이 물러갔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사이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엑소시스트들 가운데서도 예수의 이름을 팔아 귀신을 물리치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스게와’라는 유대인 제사장이 있었는데, 이 양반이 아들이 일곱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팔아 귀신을 쫓아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귀신이 보니 같잖은 거예요. 도나 개나 다 덤벼들어서 자기를 물리치려고 하니 귀신도 열을 받았습니다. 귀신이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그러면서 귀신이 컨트롤하고 있던 사람을 시켜서 그 아들들을 짓눌러버렸습니다. 그 아들들은 ‘엇. 뜨거!’ 하면서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갔지요.

어설프게 해서 귀신이 안 물러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잖아요? 귀신 하나를 몰아내고 집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으니 일곱 귀신이 몰려와서 거기에다가 든든하게 터를 잡았다는 거예요. 귀신 우습게 알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만큼 지혜도 많고 내공도 높은 게 귀신입니다. 그러니, 박수다 무당이다 하며 귀신 편 들어주고 먹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귀신이 그렇게 물렁물렁하면 세상이 이렇게 험하지도 않지요.

귀신이란 놈은 사람을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무당들이 무당이 될 때, 자의로 되는 사람도 있지만, 신이 들려 어쩔 수 없이 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사람 한 번 찍으면 꼼짝없이 귀신에게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귀신이 찍은 사람은, 귀신이 찍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무지하게 큰 아픔을 줍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대요. 약을 써도 안 되고 병원에 가도 안 된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낫는가,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고 ‘신 내림’을 받으면 그제야 낫게 된답니다. 그 길로 그 사람은 ‘안수 받고’ 무당이 되는 것이지요. 귀신이 찍었다면, 귀신한테 붙어야 일단은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한평생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아야 합니다.

■ 2. 오늘날의 귀신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렇다고 21세기에는 귀신이 손 놓고 노느냐, 다 은퇴를 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귀신이 귀신같은 것은, 이놈들이 참 위장을 잘 한다는 겁니다. 옛날 귀신들은 그래도 귀신 티라도 내고 다니는 것들이 많았는데, 요즘 귀신들은 영악해서 티도 안 내고 다닙니다. 이마에 귀신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놈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웬만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귀신인 줄 못 알아보게 하고 다닙니다. 옛날처럼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가서 소리라도 지르게 하고, 발작이라도 일으키게 하면 잡아내기라도 좋을 텐데, 요즘 귀신들은 얼마나 음흉한지 모릅니다.

옛날에는 ‘깡패’라고 해서, 깡패 티를 내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우리 동네에서 서울로 가출했다가 나중에 깡패가 됐다는 사람을 여럿 봤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길거리 나가 보세요. 누가 깡패인지 식별할 수 있나…. 웬만큼 전문가가 아니면 못 잡아냅니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그 때야 본색을 드러내지만 평소에는 아무 표시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깡패가 없어졌습니까? 아니지요. 표시가 안 나게 활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귀신도 그렇습니다. 요즘 귀신들은 잘 표시가 안 나요. 철저하게 위장을 하고 다닙니다. 그렇지만 방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다가 사람을 찍습니다. 그렇게 찍은 사람에게는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을 하지요. ‘우리 패거리에 들어오면 배고플 일이 없어.’ ‘우리와 함께 일하면 폼 잡고 다닐 수 있어.’ ‘우리가 너를 보호해줄 거야. 어떤 놈이 너한테 까불면 우리가 가만 안 둘 거야.’ ‘단 조건은 하나 뿐이야. 두목을 배신하지만 않으면 돼.’

깡패 집단하고 똑 같습니다. 깡패들도 두목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 집단 안에서 보호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귀신에게 찍힌 사람도 귀신 말만 들으면 귀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 안에서는 어느 정도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이건 무지무지하게 힘듭니다. 예전 깡패가 됐던 우리 동네 청년을 보니까,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모른답니다. 서울서 내려와서 몇날 며칠을 끙끙 앓으며 매 맞은 데를 치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요즘에는 어떤 귀신 집단들이 있을까, 제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귀신집단은 깡패집단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일단 힘이 있습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귀신집단은 당장에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패거리 안에 들어가면 우선은 편안할 수 있습니다. 안 들어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상당히 고민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면 그 패거리 안에 들어가면 뭐가 문제가 되느냐, 깡패 집단이나 귀신 집단이나, ‘정의’나 ‘대의’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길이냐, 어느 길이 정당한 길이냐, 그런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편인가, 아닌가, 그것만 따집니다. 우리 패거리, 우리 편 사람이 한 짓이면 뭐든지 다 용납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저쪽 편, 저쪽 사람이 하는 짓은 무조건 응징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깡패집단과 귀신집단의 특징입니다.

■ 3. 우리의 선택

제가 보기에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귀신들이 득시글거립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거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마가복음서 13장 22절에 보면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사람들을 홀리려 할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누굽니까? 귀신들의 세력이지요.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까지 홀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소속을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이 어설프게 하다가 귀신에게 당했지 않아요? 차라리 귀신 편이었으면 임시로라도 보호를 받았을 텐데, 예수의 제자도 아니고 귀신의 졸개도 아니니까 귀신에게 짓눌리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귀신의 졸개가 되면 무사할 수 있는가, 우선은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망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이천 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온 세상을 감싸고 있지만, 귀신의 무리들은 수도 없이 출몰했었지만 멸망의 역사를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나타나기는 무진장 나타나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활동은 하지만, 결절적인 순간에 모두 망하고 마는 것이 귀신 세력이고, 깡패 집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점령했던 여호수아가 죽을 때가 다 돼서 백성을 다 모아놓고 다짐을 받으려고 합니다.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우상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결정을 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대충대충, 적당히, 이런 정신은 없습니다. 철저히 소속을 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귀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 알지요. 그러나 실천이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고, 어느 길이 정의의 길인가, 어느 쪽이 옳은 곳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께서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서 7장 13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귀신의 문은 우선 들어가기는 넓고 편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문은 우선 들어가기가 좁습니다. 그 쪽으로 가는 사람도 적습니다. 외롭습니다. 힘이 듭니다. 기운이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영원한 행복과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숫자 놀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엘리야 당시에 바알 귀신을 섬기는 예언자는 800이 넘었지만 하나님의 예언자는 엘리야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옳았고, 결국 엘리야가 승리했습니다. 세례요한 당시에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세례요한은 홀로 광야에 나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바알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넓은 문과 큰길로 갔지만 엘리야는 죽음을 무릅쓰고 좁은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이익과 편안함을 위해서 넓은 길을 택하였지만, 대제사장의 아들 세례요한은 정의를 위해서 척박한 광야의 좁은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좁은 길을 간 엘리야가 옳았고, 돌밭 길을 간 세례요한이 훌륭하지 않았습니까?

■ 맺는 말씀

예수님은 성도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 근사하게 생긴 넓은 문으로만 꾸역꾸역 몰려가려고 합니다. 그 대열에서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그런 우리들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내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그렇게 일렀거늘, 그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단 말인가’ 이렇게 한탄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귀신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은 힘들어도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귀신들이 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분명히 답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예수의 제자다!” 무작정 대세를 따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귀신이 가는 넓은 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222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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