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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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7:21-23 
설교일 2007-07-29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태복음서 7:21-23〉


■ 들어가는 말씀

지난 19일, 분당 샘물교회 소속 신도 스물 세 명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탈레반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인질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무사하게 풀려나기를 바랐습니다만, 7월 25일에는 일행 가운데서 배형규 목사님(42)이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스물 두 사람만이라도 아무 일 없이 귀국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어떤 일이 터지고 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제가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이 보통이듯, 이번에도 이런 큰 사건이 터지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문제를 지적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에 우리 정부와 국민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문제점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일도 게을리 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일은 당했지만,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당연히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분들이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 간 목적이 ‘봉사활동’이라고 했습니다. 가족들과 샘물교회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렇게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거기 간 분들의 직업 구성을 보아도 그 말이 크게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우리가 봉사활동이나 자선, 또는 구제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오늘은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조용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태복음서 6장 1절부터 4절까지 말씀입니다.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그렇게 하듯이,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자선합네, 봉사합네, 하면서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선행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행을 하더라도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은 참 무서운 분입니다. 그래, 그렇게라도 선행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사람은 ‘위선자’라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지난 2005년 11월 21일 월요일 새벽,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에서 할머니 두 분이 낡은 여행가방 하나씩을 들고 육지로 나오는 배를 탔습니다. 일흔 한 살의 마리안느(Marianne Stoeger) 할머니와 일흔 살의 마가렛(Margreth Pissarek) 할머니였습니다. 이분들은 1962년, 각각 스물여덟,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소록도에 들어와서 43년간 소리 없이 한센 병 환자들을 섬기던, 오스트리아 출신 수녀님들이었습니다. 소록도를 떠나면서 이분들은 짤막한 편지 한 장만 남겼는데, 이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사는 여러분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늘 말해 왔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이곳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우리가 부족해서 그동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서는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이분들은 40여 년 동안, TV도 없이 작은 장롱만 있는 방에서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새벽 5시면 일어나서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생애를 바친 그분들이었지만, 떠날 때는 공연히 환송회다, 뭐다 하며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남몰래 도망치듯,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를 타고서도 소록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곳은 그들의 한평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이었지만 그분들은 ‘소문내기 싫어서’ 남몰래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 간 어떤 분이, 출국하기 전에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단기선교’를 떠난다고 공개를 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는, 이런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프간 여행 자제 요망. 최근 아프간 탈레반이, 수감 중인 동료 석방을 위해 한국인들을 납치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 여러분께서는 아프간 여행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천공항 테러 보안대책협의회 회장.” 그런데 이분들은 그 경고판 앞에서 손가락을 펴서 V자로 승리 사인을 표시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이 터지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일이 벌어지고 보니까 이 사진이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 젊은이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사들의 잘못이요, 지도자들의 책임입니다.

■ 상식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을 보고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Crazy Korean Christian Mission in Afganistan” 곧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하는 미친 한국 기독교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된 동영상인데, 얼마 전까지 유 튜브(You Tube)에 올라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삭제되고 없습니다. 물론 이 동영상은 이번에 피랍된 분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이른바 ‘선교’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과자든 뭐든 아이들에게 나누어줬겠지요.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불러 모아 찬송을 가르치고, 구호를 따라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지어다. 할렐루야. 아멘!”(×4)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救主)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救主) 되십니다.” “…(?) 깨끗해지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들에게, 따라하도록 시킨 겁니다.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만일 이 어린이들의 부모나,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도대체 한국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마태복음서 7:21). 그런데도 이분들은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이 예수님만 부르면 구원 받고 천국 가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짓을 하겠지요.

이렇게 하는 것은 구제가 아닙니다. 선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과자 부스러기 던져주고 강아지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개 취급 받는 것 아니에요? 그런 땅에서 여태까지 한국 사람들이 머리 들고 다녔던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마가복음서 12:17). 여기서 황제란 로마 황제 가이사를 말하는 것이지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예수님의 눈에도 로마 황제가 결코 예뻐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적극 만류하지 않으신 것은, 황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엄연한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실체를 인정하자는 것이지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존재하는 실체를 무작정 때려 부수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지난해 여름, 부산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부산 경남 지역 연합집회였는데, 이명박 장로님께서도 이 집회에 영상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봐서, 상당히 비중 있는 큰 집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 집회 동영상을 보고 저는 또 다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명박 장로님의 영상메시지가 끝나고, 집회 인도자가 통성기도를 인도하는데,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낯이 뜨거웠습니다.

집회 인도자의 선창 구호는 이랬습니다. “강서구의 사찰(35개)이 무너지게 하시옵소서!” “이번에는 금정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사찰(94개)이 무너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이번에는 부산진구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진구의 삼광사에는 33만의 신도가 있습니다. 이 땅 가운데 있는 모든 사찰(129개)이 무너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주여!”

아마도 이 집회가, ‘어게인 1907’이라고 해서, 1907년에 평양에서 있었던 집회를 계승하자는 뜻으로 열린 것 같은데, 지금부터 딱 100년 전에 평양 집회의 주제는 ‘부흥운동’이 아니라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일제 강점 하의 교회와 민족의 위기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서, 이 결과로 찾아온 선교의 위기에 대해서, 그리고 지도자와 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서 회개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도, 1907년의 운동을 재현하자고 하면서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찰이 무너지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미친 짓’입니다. 부흥귀신이 붙어버린 겁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이슬람 사원에 몰래 들어가 찬송을 하고 예배를 보고 나서, 그걸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좀 잠잠합니다만, 일부 목사들이 도둑처럼 밤에 다니면서 단군 상의 목을 자르고 입상을 넘어뜨려놓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상을 깨부수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짓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을 줄 알고 그 옛날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복음서 7:23). 예수님 얼굴에 먹칠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이겠습니까?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복음을 들이미는 것은 ‘폭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가리켜 ‘기독교 테러리즘’이라고 하고,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을 ‘기독교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디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지,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찾아가서 깨부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이 우리의 원수인 것도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자녀들인 우리 동기간들에게, 부모의 이름을 들이대며 테러를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두고 어찌 부모가 기뻐하겠습니까?

■ 맺는 말씀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번에 아프간에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낸 분당 샘물교회와 가족들이 아직까지도 미숙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납치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부의 늑장대응을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이 출국하기 전에, 제발 떠나지 말라고 수십 차례나 만류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로 인해서, 따뜻한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비난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또 지난 26일 가족들이 탈레반에 대한 호소문을 언론에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탈레반 여러분, 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고 헤아려 주십시오. 여러분도 가족들이 있을 겁니다. 제발….” 남은 가족들의 아픔이야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만, 그럴수록 더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탈레반을 향하여 ‘가족’ 운운하는 것은 걸맞지 않은 태도입니다.

탈레반 무장군인들이 지금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습니까? 예전에 우리나라의 빨치산처럼 가족들 다 버리고 오로지 신념 하나로 산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미군 때문에 가족들 다 잃고 홀로 남아 투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족을 들먹이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어서 걱정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성숙해져야 하겠습니다. 철없이 엄벙덤벙 덤빌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상식을 가지고, 그리고 ▶제발 다른 문화, 다른 종교 사람들도 좀 존중해 가면서 선교를 하든, 봉사를 하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시면서 우리를 외면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파한다고 하면서 예수님께 욕을 보인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꼴입니까?

아무쪼록, 아직 살아 있는 스물두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빠른 시간 안에, 건강한 모습으로, 꼭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222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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