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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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지기 2009-12-20 14: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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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예레미야서 23:5-8 
설교일 2009-12-20 
설교장소 구미안디옥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대림절 


■ 성서 본문

내가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하나 돋아나게 할 그 날이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는 왕이 되어 슬기롭게 통치하면서,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보아라, 그 날이 지금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 집의 자손이 쫓겨가서 살던 북녘 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이 고향 땅에서 살 것이다."

<예레미야서 23:5-8>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 곧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촛불 네 개가 다 켜졌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바로 우리 곁에 와 계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예레미야서 5장의 말씀을 본문으로 “그 날이 오고 있다!”라는 주제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 날”이 언제인가, “그 날”이 어떤 날인가, 예레미야 예언자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날

예레미야의 말에 따르면 그 날은 새로운 왕이 오시는 날입니다. 새로운 왕은 어떤 왕인가, 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 슬기롭게 통치하면서,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새로운 왕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시키는 왕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과연 공평한 세상인가, 여러분은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한 가지만 이야기해 봅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가장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이 교육 문제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가지고 있습니까? 요즘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학원에 보낸다고 등골이 빠지고 있지요. 부자들도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분들은 아이들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고액과외까지 전혀 부담 없이 시키고 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하고 안 부잣집 아이들하고 누가 더 유리합니까? 어떤 아이들이 이른바 특목고나 자립형 사림고등학교에 많이 들어갑니까? 어떤 아이들이 이른바 명문대학에 많이 들어갑니까? 이건 결코 공평한 게임이 아닙니다.

요즘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부자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하는 것은 운명이지만, 부자 장인을 얻는 것은 능력이다.” 부모가 부자냐, 아니냐에 따라 아이들의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공평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보니 자기 부모가 부자가 아니에요. 이거 무를 수 있습니까? 그 아이들이 무슨 책임입니까? 전생에 죄 지은 게 많아서 그렇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이들에게 공평한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나라에서 아이들 교육을 모두 책임져 주면 되겠지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보십시오. 프랑스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도 그런 곳이 많습니다만, 대학 등록금이 없어요. 꿈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가난한가요? 아닙니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더 높아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나라에서 부담하면서도 우리보다 더 잘 먹고 산다는 말입니다.

■ 우리가 구원 받는 날

6절에 보면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공평해지면 백성들이 구원 받는다는 겁니다. ‘구원’ 하니까 아직까지 죽어서 천국 가는 걸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도 물론 구원이겠습니다만, 그것만이 구원인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이 공평해지는 것,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 있는 것, 그것도 중요한 구원입니다. 그런데 부자들과 특권층들은 백성들이 구원 받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예레미야가 자꾸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예레미야를 잡아서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게 하나 있어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대개 그렇습니다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지요?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들을 많이 펴고 있지요? 기업이 잘되면, 부자들이 잘 살게 되면, 없는 사람들도 떡고물 정도는 주워 먹을 수 있을 것 아내냐, 그런 논립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서민들이 먹고 살기가 좀 나아질 거다, 그 이야기지요. 그런데 서민들이 정말 기 펴고 살려면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게 최우선 과제가 아닙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조금은 낫겠지만 그것이 근본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라의 정책이 공평해지면 경제가 어려워도 서민들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오늘 교육 이야기부터 꺼냈으니까 교육 문제를 계속 해봅시다. 경제가 어려워졌지요. 만일 이 시점에서 아이들 학원비 걱정, 과외비 걱정, 수업료 걱정 안 한다면 그렇게 어렵겠습니까? 뭐가 어려울 게 있습니까? 지금 정책이 제대로 된 나라들이 그래요. 경제가 어려워도 서민들이 힘들지 않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경영자들이 힘들어야지, 왜 서민이 힘들어야 합니까?

지금 사대 강 삽질한다고 생돈을 수십조 원 퍼붓겠다고 하지요. 그거 한다고 서민경제가 나아집니까?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런 데 돈 쓰지 말고, 종합부동산세니, 양도세니 하는 부자 세금 깎아주지 말고, 그런 돈만 모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전 국민을 대학까지 무상교육 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깨어 있어라!” 하시지 않습니까? 이건 잠자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권력자들이 달콤한 말로 꾀더라도 속지 말고 두 눈 똑 바로 뜨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입니까? 그런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은 안 듣고, 부자들과 특권층들이 국민을 속이는 말만 듣고 있습니다.

■ 옛 이야기 하는 날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시행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 문제를 더 해결해야 합니다. ‘대학 평준화’를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대도시들에서는 ‘고교평준화’가 이루어져 있지요. 시험 치지 않고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걸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고교평준화’를 하면 전체 학력이 떨어진다고 난리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이번에 수능성적분포 발표한 것 보니까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의 학력 차이가 없습니다. 기득권자들이 거짓말 한 게 또 들통이 난 겁니다.

아까 유럽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프랑스에 가보면 대학 이름들이 없습니다. 파리 1대학, 2대학, 3대학…, 이런 식이에요. 1대학은 명문대학이고 15대학은 따라지 학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학력이나 명성이나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대학 이름들은 각기 가지고 있지만 거기도 대학별로 서열은 없습니다. 전국 어느 대학교를 나왔든지 취직하는 데,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아이들 학원 보낸다고, 과외 시킨다고 돈 안 써도 되는 거예요. 우리처럼 ‘서울대’ 출신은 대접 받고 ‘서운대’ 출신은 무시당하는 일이 없다는 겁니다.

6절에 보니까 예레미야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라고 부를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해서 생고생을 하고 살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니, 이제는 살판이 났다는 말입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옛 시절을 회상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한 말입니다. 구원의 날은 기쁜 마음으로 ‘옛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 날입니다. 고생하는 이야기는 고생할 때는 괴로운 이야기지만, 고생이 끝나고 나중에 같이 하게 되면 그것처럼 즐거운 이야기도 없습니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군대 이야기 많이 하지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그런 고생을 훌륭하게 잘 마쳤다는 뿌듯함이 배어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가끔 하지요.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서 산에 가서 풀뿌리 캐 먹고, 나무껍질 벗겨 먹고 살았지.’ 참 슬픈 이야기지만, 하루 세 끼 밥 잘 먹고 살게 된 시점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추억’입니다. 추억이란 즐거운 것 아닙니까?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학교들이 서열이 있어서 서울대 나온 사람과 서운대 나온 사람이 차별이 많았지.’ ‘예전에는 아이들 학원 보낸다고, 과외 시킨다고, 대학 등록금 낸다고 고생이 많았지.’ ‘예전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업체들 직원들이 고생이 많았지. 지금 생각하면 참 서러운 세상이었어. 안 그래?’ 이런 이야기들을 즐겁게 할 날이 와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날이 곧 주님께서 오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날은 이 땅에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바로 그 날입니다.

■ 맺는 말씀

오늘 저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과, ‘대학 서열과 폐지’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게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우리가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는 현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아이들 교육비 쓰는 것을 다른 데 쓴다면 우리 살림이 얼마나 윤택해지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런 날을 우리 눈으로 보고, 그날, 옛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살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얼른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242 가을 보약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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