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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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시편 133:1-3 
설교일 2010-06-20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기념주일 


■ 성서 본문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시편 133:1-3>


■ 들어가는 이야기

지금부터 60년 전, 1950년 6월 25일에 우리나라에서 큰 전쟁이 터졌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나이가 40쯤 된 분들은 부모님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전쟁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총회에서 정한 민족화해주일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남과 북이 화해해서 함께 민족의 번영을 이루어가자는 뜻에서 정해진 주일입니다.

■ 전쟁의 참상

요즘 젊은이들은 전쟁이 실감이 안 나겠지요. TV나 영화 또는 컴퓨터 게임에서 구경은 해보았을 겁니다. 어린이들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청소년쯤 된 사람들은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던 것을 TV로 보았을 겁니다. 그 당시에 텔레비전에서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거의 중계하다시피 방영을 했었지요. 기자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상황을 지도와 그림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설명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전쟁의 참상을 얼마나 깊이 있게 느꼈을까 생각해 보면 회의가 듭니다.

지도에서 보는 전쟁, 화면에서 보는 전쟁과 실제 전쟁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과 인간적인 삶 자체를 파괴하는 괴물입니다. 전쟁의 기본은 우리 편과 적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가르는 것입니다. 그 양분법 앞에서는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흑이 아니면 백입니다. 중도적 입장은 기회주의일 뿐이고, 객관적 입장은 방관주의일 뿐이고, 종교적 사고는 허무주의일 뿐이고, 개인적 판단은 이기주의일 뿐입니다. ― 조정래, ≪태백산맥 8≫(한길사, 1989), 120쪽. 오로지 죽기 아니면 죽이기인 것이 전쟁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리니, 정의니 하는 것은 감자 껍질만도 못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60년 전의 전쟁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피난민들의 봇짐 속에는 남루한 담요와 몇 벌의 수저, C-레이션 깡통 속에 몰래 숨겨둔 우유 가루는 있었어도, 책 한 권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그 6월의 전쟁은 우리에게 짐승처럼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유탄에 맞지 않기 위해서 한 마리 구렁이처럼 뱃가죽을 흙에 대고 기어가는 포복의 기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울부짖고 할퀴어지고 물어뜯고 더러는 헐떡거리다 눈치 빠르게 도망치는 짐승들의 뜨거운 숨결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전쟁입니다. ― 이어령(李御寧), ≪말≫(문학세계사, 1988), 234-235쪽.

■ 피는 물보다 진하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시인 유안진 선생께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분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헤어져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부인과 어린 딸을 버려두고 예쁜 색시를 얻어서 따로 나가 살았답니다. 그러니 그 딸은, 아버지가 얼마나 밉겠습니까? 그래서 딸은 어려서부터 자기 아버지를 저주하고 증오하며 자랐습니다. 그는, 자기에게는 아버지가 없다고 부르짖으며 아버지의 존재를 부인하고 거부했습니다.

그렇지만 딸은 아버지라는 호칭 이외에는 달리 부를 호칭도, 표현할 방법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딸은 가끔 자기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 그 친구의 아버지도 딸을 딸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30여 년 간 아버지의 노릇을 못해 주었어도 그는 딸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느끼고 아파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천지가 개벽이 된다 해도 고쳐지거나 지워질 수 없는 관계, 그것이 핏줄이라는 것입니다. ― 유안진 이향아 신달자, ≪지란지교를 꿈꾸며≫(정민미디어, 2004), 36쪽.

■ 화해의 대로를 열어라!

누가 뭐래도 남과 북은 한 핏줄이고,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아무리 미워도 동족입니다. 우리끼리 싸워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겠습니까? 당연히 전쟁 특수를 누릴 수 있는 그런 나라들이겠지요. 전쟁이 일어나면, 옆에서 도와주는 척하면서 실리를 챙길 사람들만 웃을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희생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전쟁의 희생보다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레위기 25:35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동족 가운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희의 곁에 살면, 너희는 그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너희는 그를, 나그네나 임시 거주자처럼, 너희와 함께 살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 북쪽 사람들이 정말 처지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망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만에 하나 지금 당장 북 정권이 망하고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점진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양쪽의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체제가 다릅니다. 이것부터 좁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꾸 왕래를 해야지요. 실제로 북쪽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못 통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우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일단 ‘전쟁 끝’을 선언하자는 말입니다. 이게 거의 다 된 단계였는데, 요 몇 년 사이에 허물어져버렸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당분간 딴 살림을 차리고 살더라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른바 ‘1국가 2체제’를 해보자는 것이지요. 그런 식으로 신뢰를 쌓아 가다가 때가 되면 통일을 하자는 것이 6.15와 10.4선언을 통하여 양쪽에서 합의한 내용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남쪽에서 손을 내밀면 됩니다. 6.15와 10.4선언을 지키라는 것이 북쪽 사람들의 요구거든요.

■ 맺는 이야기

방금 말씀드린 일들만 차근차근 진행이 돼도 경제 죽는다고 난리를 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시편 133:1-3절을 봅시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화목하게 살면 기름이 뚝뚝 흐르는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온 산에 이슬이 내리듯 풍성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의 비극이 빠른 시일 안에 끝나서 온 민족이 함께 하나님 앞에 감사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42 가을 보약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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