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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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누가복음서 6:20-26 
설교일 2010-10-10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에는, 너희는 복이 있다. 23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누가복음서 6:20-26>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도 이렇게 주님께서 마련하신 기쁜 잔치에 참석하신 여러분 위에 성령님의 능력과 새 기운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웃을 일이 많았습니까? 웃을 일이 많았던 분들에게는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웃을 일이 별로 없었던 분들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예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여러분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기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 메시지는 이겁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웃게 되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난한 사람’이 웃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마태복음서 5장에 나와 있는 ‘팔복’을 인용합니다. 거기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절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했고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것만 하더라도 책으로 수백 권, 수천 권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 말씀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인 누가복음서 6장을 보니까 똑 같은 말씀인데도 앞부분의 ‘마음이’가 빠져 있습니다. 그냥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6장 20절입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심령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해석이 전혀 필요 없게 됐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아주 단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릴까봐 예수님께서는 더욱 확실하게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21절입니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이것이 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 사람들의 의견

어제 말씀을 준비하면서 트위터에다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행복한 점은 무엇일요?” 그랬더니 5분도 되지 않아서 수십 명이 답을 달았습니다. 우선 ‘라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라면 한 개에 얼마쯤 합니까? 천원쯤 한다고 합시다. 돈 천원으로 한 끼 끼니를 때우는데, 그것도 맛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 답에 대해서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부자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게 행복일 듯. 부자들은 가난하다는 게 뭔지 알지 못해요.”

지난 7월에 어떤 국회의원(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1박 2일 동안 서울 동자동 쪽방 촌에서, 참여연대가 진행하는 ‘릴레이 최저생계비 체험’에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6,300원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프로그램인데, 체험을 마치고 공개한 수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체험자들은 먹을 것을 사는 데 돈을 다 썼지만 나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사회기부도 했다.” 그는 4,680원으로 쌀, 미트볼, 쌀국수, 참치 캔을 사서 끼니를 해결했고 1,000원은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약을 사 먹였으며, 600원으로 신문을 사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단돈 6300원으로 황제와 같은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 가난한 사람의 행복

한 사람이 한 달에 189,000원으로 사는 것이 최저생계비인데, 그 돈으로 단 하루를 살아놓고는 ‘황제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을 하니, 실제로 1년 365일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곳곳에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이분은 사과문까지 올려야 했습니다. 어떤 다른 정치인에게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을 때 그는 “한 70원쯤 하나요?” 하고 대답한 일도 있었지요. 또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어떤 후보는 배추 한 포기 값이 얼마나 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30,000원쯤 하지 않나요?”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배추 한 포기가 정말로 30,000원을 하면 난리가 날 겁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 그런 날도 오지 말라는 법은 없겠습니다만, 그때는 배추 한 포기에 1~2천 원쯤 할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저는 부자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형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만일 부자라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백 번 생각해도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말 잘못했다가 욕을 먹지만, 저는 그런 욕은 먹지 않아도 됩니다. 요즘 국회 청문회 나오는 사람들 보세요. 누구 한 사람 뺄 것도 없이 고위 공직에 오르겠다는 후보자들은 한 결 같이 범죄의 백화점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저나 여러분은 청문회 아니라 그보다 더한 데 나가더라도 걸릴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 맺는 말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서 19:23-24). 처음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다가 그 뒤에는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로 지나갑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본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어린이를 보고 순결하다고 하는 것은 어린이의 몸 지체가 여리기 때문이지 그 심지가 고와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아우구스띠누스(최민순 역), ≪고백록≫(성바오로 출판사, 1979), 9쪽. 천국은 힘센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난하게 사는 법을 익히기 전에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딱 한 가지입니다. 천석꾼 만석꾼이 되더라도 가난한 식탁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되더라도 돈 천원으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말씀처럼 웃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은 가난하지만 그것도 감사하게 여기며, 앞으로 부자가 되더라도 끝까지 웃을 수 있는 멋진 부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222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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