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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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마태복음서 3:13-17 
설교일 2013-01-13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 성서 본문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마태복음서 3:13-17>


■ 들어가는 이야기

새해 들어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이 13일이니까 2013년을 맞이한 뒤 벌써 두 주 정도 지났지요. 그 동안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는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세상일은 믿음대로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올해는 복 받는 해’라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믿고 있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분 모두가, 집에서도 복을 받고, 나가서도 복을 받고, 잠잘 때도 복을 받는 멋진 삶을 이어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세례

오늘 마태복음서의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요한이 예수님 앞에서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14) 하며 사양하는 장면도 인상적이고,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15)라며 설득하시는 예수님도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16) 라는 마태복음서 기자의 보도를 눈여겨보고 싶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이 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하늘이 어떻게 열렸을 것 같습니까? ‘하늘’ 하면 우리는 끝없는 공간과 우주를 연상하지요. 왜냐하면 지구는 둥글다는 것, 자전한다는 것, 그리고 태양의 주위를 일 년에 한 바퀴씩 돈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구는 평평하고 세상은 세 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공간이 한 층이고, 땅 밑 세상이 또 한 층이고, 우리가 사는 공간 위에 ‘하늘’이라는 또 한 층의 세상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걸 ‘궁창’(穹蒼)이라고 불렀습니다. 궁창에는 문들이 있는데, 이 땅에 비가 내리는 것은 그 문이 열려서 하늘 위의 물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절이니까, 성경에서 하늘이 열렸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의 문이 열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비가 와야 하는데, 이번에는 비가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의 머리 위로 내렸다고 했습니다.

■ 하늘 문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옛날 과학지식이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화’(神話)라고 생각하고 무시해버리거나 옛날에 나온 동화쯤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읽고 지나치면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근본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으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실제로 하늘에 문이 있다고 믿는 것이 좋겠습니까? 둘 다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신화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것은 성경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고, ‘성경이니까’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재해석’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맞게, 우리 상식에 맞게 다시 풀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삼층으로 되어 있다고 믿던 시절에는 하나님이 하늘 곧 궁창 위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지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어떻습니까? 궁창이라는 게 있습니까? 없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셨습니다. 원래부터 하나님은 우주를 삼층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고 아는 것처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의 인식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하늘이 열렸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단순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습니다.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 광야

자, 어쨌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것을 계기로 하늘이 열리는 것을 체험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통하게 된 것을 아셨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과 통하게 되었으니까 이제 예수님에게 잘 먹고 잘 사는 일만 남았을까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거의 다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만,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에서 보듯이,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늘 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이제 잘 먹고 잘 사는 일만 남았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그 다음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불행 끝 행복 시작’의 나라로 가셨습니까? 아니지요. 광야로 가셨습니다. 광야는 모세가 젊은 시절 훈련 받았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고생했던 곳입니다. 엘리야가 도망가서 살았던 곳입니다. 요한이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곳입니다. 광야는 훈련의 장소입니다. 고행의 장소입니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낙원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어린 아기가 엄마의 젖을 떼는 것과 같습니다. 태아는 엄마의 자궁 안에서 9개월 동안 머뭅니다. 거기가 가장 안전한 장소지요. 그러나 아기가 자궁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세상의 이치가 아닙니다. 때가 차면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온 젖먹이는 일 년 남짓 지나면 부모의 팔이나 등을 떠나서 스스로 걸어야 합니다. 아기들은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품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정 기간 자라면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고립되어야 합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부모의 슬하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자신의 힘을 가지고 당당하게 세상과 겨뤄야 합니다. ― 이브 파칼레(하태환 역), ≪걷는 행복≫(궁리출판, 2001), 44쪽.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독립적인 신앙인으로서 실전에 투입된다는 것입니다. 운전면허를 안 받으면 편하지요. 그러나 학원에서 연습을 하고 운전면허를 받는다는 것은 차를 몰고 복잡한 거리로 나올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거리에 나오면 사고도 날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리로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 맺는 이야기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를 거쳐 세상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평화가 훈풍처럼 세상을 감싸는 나라 아닙니까? 우리도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과 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통하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만 더 전해드리고 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복음서 6:31-33).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결해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세례를 받고 광야를 거쳐 세상으로 파견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침입니다. 정의의 일꾼, 평화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구원과 땅으로부터 오는 축복이 영원토록 크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42 가을 보약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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