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환의 항암일기

혈액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증상과 치료과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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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요한복음서 12:24-25 
설교일 2013-04-21 
설교장소 한울교회 
설교자 전대환 
설교구분 주일 
사용처 1. 20240421 한울. 

■ 성서 본문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25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요한복음서 12:24-25>


■ 들어가는 이야기

어제 아침에는 눈이 펑펑 오더니, 오늘은 햇볕이 쨍쨍합니다. 낮에는 좀 더울 것 같다는 예보도 있었습니다. 겨울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는 요즘입니다. 이런 급격한 기후변화 가운데서도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서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말씀 서두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반복되어 있지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매우 의미심장하게 하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기에 이렇게 강조에 강조를 하셨을까요? 요지는 ‘우리가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고린도전서 15:31). 물론 이 말은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협을 당합니다’ 또는 ‘나는 날마다 죽음을 경험합니다’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바울은 목숨을 내놓고 살았습니다. ‘나 죽었소!’ 하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날마다 죽은 듯이 지냈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죽은 듯이 지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탈무드에 아주 적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랍비가, 제자에게 죽음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그를 무덤에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저 무덤들을 향하여 박수를 쳐보아라.” 제자가 열심히 박수를 쳤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들에게 욕을 퍼부어보아라.” 제자가 있는 욕, 없는 욕을 해댔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 맞다. 그게 죽은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죽어지낸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날마다 죽은 듯이 살면, 서운할 일도 없습니다. 속상할 일도 없습니다. 불평할 일도 없습니다. 원망할 일도 없습니다. 죽은 듯이 사는 사람은 옆에서 환호하며 박수를 쳐도 흥분하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욕을 바가지로 해대도 냉정할 수 있습니다. 함께 부대끼며 사는 사람이 아무리 나를 부당하게 대우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내가 쏟은 정성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는 날 동안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오래오래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죽은 뒤에도 한이 없습니다. 우리 전통방식으로 말하자면 원귀(寃鬼)가 될 일도 없습니다.

■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요즘, 싸이의 신곡이 유행이지요. 조용필 씨도 오랜만에 신곡을 냈는데, 그것도 싸이의 노래 못지않게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글쎄요, 이 노래들이 얼마나 오래 인기를 누릴 수 있을지는 지나봐야 알겠습니다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팝송이 하나 있습니다. 폴 사이먼(Paul Simon)이 작사 작곡을 하고 사이먼앤 가펑클(Simon & Garfunkle)이 불렀던 「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노래입니다. 우리말로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그대 지치고 서러울 때 / 두 눈에 어린 눈물 씻어 주리라 / 아 고난이 와도, 오 물리치리라 / 외로운 그대 위해 /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 그대 괴롭고 외로울 때 / 그대 지친 영혼 위로하리라 / 아 재난이 와도, 오 물리치리라 / 외로운 그대 위해 /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이게 ‘팝송’입니다. 우리말로는 ‘유행가’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이 노래에는 심오한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신앙까지 들어 있습니다. 요즘 얼마나 세상이 험합니까? 날만 새면 비보가 들립니다. 어디서 테러가 있었다. 지진이 일어났다, 사고가 터졌다… 등등, 우리는 엄청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너를 위한 다리가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경험을 했습니다만, 다리도 끊어질 때가 있지요. 지진이 나거나 폭풍이 몰아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졸지에 당하는 재난도 있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 나는, 네가 건너는 다리가 되어 주겠다, 아니 재난이 오더라도 물리쳐주겠다, 합니다. 그 정도로 나는 너를 위해 헌신하겠다, 이 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혹시 재난이 와서 다리가 파손되는 일이 있다고 할 때, 다리는 ‘아, 내가 이렇게 부서지는구나, 세상 엿 같다!’ 하겠습니까, 아니면 ‘아, 내가 부서지면 그동안 나를 믿고 이 수렁을 건너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지?’ 하는 걱정이 앞서겠습니까? 후자이겠지요.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밀알’이 되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지난달에 3.1절이 지나갔습니다만, 1919년 삼일운동 당시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했지요. 33명이 거의 종교인이었고, 기독교와 천도교 인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유일한 불교인이 만해 한용운 선생이지요. 민족대표들 가운데서 상당수가 초심을 잃고 변절을 했는데, 한용운 선생은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다가 해방도 보지 못하고 1944년에 타계하셨지요. 이분은 승려이면서 시인이었는데, 그분의 시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용운 선생의 시 가운데 「나룻배와 행인」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 나는 당신을 안으면 /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당신은 물만 건너면 /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은 알아요. /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폴 사이먼은 ‘나는 너를 위한 다리가 되겠다’고 했는데, 한용운 선생은 ‘나는 당신을 위한 나룻배가 되겠다’고 합니다. 요즘은 나룻배가 거의 없어졌습니다만, 제가 일곱 살 때, 의성 탑리라는 곳에서 선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의성에서 선산으로 오려면 낙동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 때에는 선산이든 구미든 낙동강에 다리가 없었습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저 아래 천평으로 돌아서 왔는데, 트럭에는 아버지 한 분만 타셨고 나머지 식구들은 지금의 일선교 건너편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뱃사공 아저씨가 삐거덕 삐거덕 노를 젓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배를 타보는 터라, 배 앞에서 잠시 망설였습니다. ‘여기에 신발을 벗고 타야 하나, 신고 타야 하나?’ 판단이 안 섰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신을 신고 배를 타는 것을 보고 저도 따라 하기는 했습니다만, 순간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배를 탈 때 사람들은 흙 묻은 신을 신고 탑니다. 그래도 나룻배는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강을 다 건넌 뒤에도 사람들은 사공한테는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배한테는 일언반구 고맙다는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이게 나룻배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서러울 때가 있지요. 괴로울 때가 있지요, 속이 썩어 문드러질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이 한 마디를 마음속으로 주문처럼 외어보십시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그러면 놀랍게도 분노가 가라앉습니다.

■ 맺는 이야기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요한복음서 12:24). “하나님, 저를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기도가 가장 행복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달라, 달라, 보채는 기도보다, 이런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기뻐하시겠습니까? ‘아하, 쟤가 이제 철이 좀 들었구나. 큰일을 맡겨도 되겠어.’ 이런 생각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날마다 죽어지내는 것’입니다. 폴 사이먼의 노래처럼 ‘험한 세상에서 너를 위해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용운 선생의 시처럼 ‘당신을 위한 나룻배’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행복한 밀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하며 축복합니다.

241 가을 밤 외로운 밤
240 가을 밤
239 가시밭의 백합화
238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지 마라!
237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236 가난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35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234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십시오!”
233 “하나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232 “하나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231 “평화가 있어라!”
230 “청춘을 돌려다오!”
229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228 “주님보다 앞서 가서”
227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226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주신 기쁨”
225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224 “일출봉에 해 뜨거든”
223 “이러지 마라, 나는 네 동료다!”
222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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